헌법 제외한 대부분의 입법 과정 단독 의결 가능
다카이치 유사시 발언에 中압박이 보수 결집시켜
2030세대 중심 ‘전쟁 할 수 있는 정상 국가’ 요구
적극 재정, 엔화 약세…원화 안정 韓 정책에 변수
경제 충격과 역사문제 관리할 韓고난도 외교 필요
일본 집권 자민당이 8일 중의원 선거에서 단독 316석을 확보하며 전후 정치사에서 유례없는 초강력 여당 체제를 구축했다. 단일 정당이 하원에서 개헌 발의선인 3분의 2를 넘어선 것은 태평양전쟁 이후 처음이다. 일본 정국은 물론 동북아 질서 전반에 걸쳐 파장이 불가피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9일 교도통신과 NHK 등에 따르면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가 이끄는 자민당은 전체 465석 가운데 316석을 차지해 압승했다 . 조기 총선 이전과 비교하면 128석이 늘어난 수치다. 이는 1955년 창당 이후 최대 의석 기록이다. 1986년 나카소네 야스히로 정권 시절의 304석을 뛰어넘는 성적이다. 자민당은 헌법을 제외한 대부분의 입법 과정을 사실상 단독으로 밀어붙일 수 있는 힘을 손에 넣었다.
이번 결과를 두고 일본에서는 ‘시대의 전환’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무엇보다 유권자들이 다카이치 총리가 내세운 ‘강한 일본’ 노선에 강력한 지지를 보냈다는 평가가 뒤따른다. 요미우리신문은 선거 직후 해설에서 경제 재건과 안보 불안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주체로 보수 정당을 선택한 표심이 응집됐다고 전했다.
특히 중국의 군사적 팽창에 대한 경계심이 결정적이었다는 분석이 많다. 다카이치 총리가 지난해 대만 유사시를 일본의 존망과 직결되는 사안으로 규정하며 적극적 역할을 시사한 후 중국의 외교·군사적 압박이 이어졌고, 이것이 오히려 보수층 결집과 애국주의 정서를 강화하는 역설적 효과를 냈다는 것이다. 아사히신문 역시 중국을 둘러싼 긴장이 ‘현실적 위협’으로 받아들여지면서 유권자들이 강경한 지도력을 택했다고 평가했다.
다카이치 총리 개인의 인기와 상징성도 압승의 큰 원천이었다. 사상 첫 여성 총리이자 세습 정치와 거리가 먼 평범한 가정 출신의 이력은 변화 이미지를 부각했다. 일본 정치에서 고질적으로 지적돼 온 가문 중심 구조를 넘어섰다는 서사가 젊은 층과 무당층에 호응을 얻었다는 해석이다.
압승을 발판으로 다카이치 정권은 안보와 헌법 문제에서 한층 속도를 낼 가능성이 크다. 중의원 문턱은 넘었지만 개헌을 위해서는 참의원 3분의 2 동의라는 높은 벽이 남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대 여당의 탄생 자체가 논의를 현실 정치의 중심으로 끌어올리는 효과를 낳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최근 2030 세대를 중심으로 ‘전쟁을 할 수 있는 정상 국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흐름 역시 이런 변화에 힘을 보탠다.
외교안보에서는 미일 동맹을 축으로 한 대중 강경 기조가 유지·강화될 공산이 크다. 한미일 안보 협력의 틀 안에서 공조는 확대되겠지만, 한국으로서는 복합적인 셈법을 마주하게 됐다. 이재명 대통령과 다카이치 총리 간 형성된 정상 차원의 신뢰가 안정판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는 반면, 역사·영토 문제는 언제든 돌발 변수로 튀어나올 수 있다. 당장 오는 22일 예정된 ‘다케시마의 날’ 행사에 각료급 인사가 참석할 경우 외교적 파장이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가 외교가에서 제기된다.
경제 분야의 파급력도 만만치 않다. 다카이치 총리가 강조해 온 적극 재정과 감세, 이른바 ‘사나에노믹스’는 대규모 유동성을 전제로 한다. 시장에서는 엔화 약세 기조가 구조화될 가능성에 무게를 둔다. 이는 일본 수출 기업의 가격 경쟁력을 높이는 동시에, 자동차와 기계·화학 등에서 맞붙는 한국 기업에는 부담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원화 가치 방어와 물가 관리라는 과제를 안고 있는 한국 정부의 정책 공간이 그만큼 좁아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안보에서는 손을 잡더라도 경제 등 환율 현장에서는 치열한 경쟁이 불가피하다는 얘기다.
일본이 재정 부담에도 반도체와 인공지능 같은 전략 산업에 공격적 투자를 예고한 점 역시 예의 주시할 대목이다. 공급망 주도권을 둘러싼 한일간 경쟁이 한층 가팔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8일(현지시간)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글을 올려 “그녀는 매우 존경받고 인기 많은 리더”라며 다카이치 총리와 자민당의 압승을 축하했다. 그는 조기 총선 결정이 “대담하고 현명했다”며 “당신과 당신의 연합을 지지한 것은 내 영광이었다”고 밝혔다. 워싱턴이 새 일본 지도부와의 밀착 의지를 분명히 한 셈이다.
미일 협력이 더 단단해질수록 한국의 전략적 선택도 더욱 정교함을 요구받게 된다. 전문가들은 안보 연대의 이익을 살리면서도 경제적 충격과 역사 문제의 파열음을 관리해야 하는 고난도의 외교에 직면했다고 분석한다. 전후 가장 강력한 여당의 출현은 일본 내부의 변화에 그치지 않고,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 전체에 새로운 변화와 숙제를 던지고 있다.
이규화 대기자(david@dt.co.kr)실시간 주요뉴스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