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철 경기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

지난달 25일 이해찬 전 국무총리가 베트남에서 별세했다. 그는 대학 시절부터 민주화운동에 앞장서온 정치인이었다. 1988년 서울 관악구 을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된 이후 20여 년간 의정 활동을 이어가며 서울시 정무부시장, 교육부장관, 국무총리 등을 역임했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의 정권 창출 과정에서도 핵심 역할을 했다.

총리 시절부터 그의 삶은 ‘국가균형발전’이라는 하나의 목표로 수렴됐다. 이 전 총리는 “우리나라는 수도권에 인구뿐 아니라 정치·경제·사회·문화 모든 것이 집중된 나라”라고 자주 토로해왔다. 세종특별자치시 건설, 공공기관 지방 이전, 혁신도시 정책에 앞장선 이유다. 그는 2012년과 2016년 연이어 세종시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됐고, 세종시 전동면 미곡리에 주택을 마련해 15년 가까이 거주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죽음을 추모하는 빈소는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졌다. 세종시에 장례시설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그가 묻힌 세종은하수공원에도, 인근 세종충남대병원에도 장례식장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빈소가 서울에 마련된 것은 ‘더 많은 조문객이 와야 한다’는 후배 정치인들의 판단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명분 뒤에는 죽음을 정치적으로 소비하려는 욕망이 어른거린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은 부동산 시장을 겨냥한 강력한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이 대통령 메시지의 겨냥점은 서울 부동산 소유자, 특히 다주택자다. 이 대통령은 “망국적인 부동산 투기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반드시 잡겠다”며 5월 9일 일몰 예정인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유예 연장은 없을 것임을 거듭 확인했다. 또한 “높은 주거비 때문에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는 수백만 청년들의 피눈물이 보이지 않느냐”는 표현까지 동원했다.

최근에는 비거주 1주택자에게도 경고를 보냈다. 이 대통령은 X(옛 트위터)에 “똘똘한 한 채로 갈아타기요? 분명히 말씀드리는데, 주거용이 아니면 그것도 안 하는 게 이익일 것”이라고 적었다. 1주택자라도 실제 거주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주겠다는 의미다. 이 기준은 이 대통령 본인에게도 해당된다. 이 대통령은 경기 분당에 아파트를 소유한 채 인천 계양에서 전세로 거주하다 청와대로 들어갔다. 또한 홍준표 전 대구시장, 김영록 전남도지사, 김진태 강원도지사 역시 서울에 자가를 두고 지역에는 집이 없다. 서울을 내려놓지 않는 정치인들이다. 그런 점에서 세종시에 실제 거주했던 이해찬 전 총리는 예외적인 존재였다.

서울 주택 매물을 늘리기 위해 보유세를 높이자는 주장도 다시 고개를 든다. 노인들이 세금 부담을 느끼면 서울의 집을 젊은 세대에게 넘기고 서울 밖으로 나갈 수 있다는 논리다. 그러나 정치·경제·교육·문화·의료 인프라가 모두 서울에 집중된 현실에서, 서울 밖의 삶은 선택지로 존재하지 않는다.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 밖에서 살아본 적이 없는 세대도 늘어나고 있다. 이들에게 ‘탈서울’은 상상 밖의 영역이 된다.

서울의 주택난을 서울에서 해결하려면 해법은 없다. 1988년 이후 반복된 신도시 건설 등 서울의 확장 역시 임시처방에 불과하다. 결국 서울에 버금가는 도시가 존재해야 한다. 양질의 일자리, 교육, 문화, 의료 인프라 등이 서울과 경쟁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 국가의 역할이다. 그렇지 않다면 국토균형발전은 구호로 남을 수밖에 없다.

이재명 정부가 내세운 ‘5극 3특’(5개 광역권·3개 특별자치도) 구상도 같은 한계를 안고 있다. 자원을 고르게 나누는 방식은 선거에는 유리할지 몰라도 나라의 미래를 바꾸지는 못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분산이 아니라 집중이다. 서울에 필적하는 도시를 전략적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시급하다.

죽음을 추모하는 방식에서도 서울은 절대적이다. 이 전 총리의 장례식장 풍경은 “서울을 극복하자”고 말해온 정치인들이 실제로는 서울의 인프라에 의존해 살고 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지역에서 사망했음에도 서울대병원, 아산병원, 삼성병원,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빈소를 차리는 사례는 그리 낯설지 않다.

이해찬 전 총리의 빈소가 만약 세종시에 마련되었다면 어땠을까 상상해본다. 많은 정치인과 시민들이 그를 추모하기 위해 세종을 찾았을 것이다. 이동 자체가 조금 불편하더라도 그의 균형발전 철학을 되새기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죽음마저 서울에 종속되는 현실을 넘어서는 것, 그것이 이해찬 전 총리가 주장해온 균형발전의 상징적인 실천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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