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관 국립산림과학원장
대형 산불의 시대가 본격화되고 있다. 지난 2025년 3월 영남권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산불은 건조한 기상과 강풍이 맞물리며 ‘초고속 확산’과 ‘장기화’라는 새 로운 양상을 보여줬다. 극한 기상 조건에서는 단순히 화선(火線)이 늘어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올해에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 7일 경북 경주와 포항에서 산불이 잇따라 발생해 산림당국이 총력 진화에 나섰고, 경남 함양과 괴산에서도 산불이 발생했지만 진화됐다. 산림당국은 매우 건조한 대기 상태가 이어질 것으로 보고 주의를 당부하고 있다.
불티가 바람을 타고 멀리 날아가 새로운 산불을 만드는 비화(飛火)가 빈번해지며, 생활권과 기반 시설을 끊임없이 위협하고 있다. 산불은 더 빨라졌고, 위험 양상 또한 한층 복잡해졌다. 이제 계절적 변수가 아니라상시적 위험으로 관리돼야 할 재난임을 보여준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현장 경험과 투지만으로는 대형 산불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다. 이제 핵심은 ‘현장 의사결정 속도’를 높이는 것이다. 인명과 재산 피해를 최소화하려면, 선제적 위험관리와 함께 판단에서 실행까지의 과정이 지체되지 않는 구조적 체계를 갖춰야 한다. 그 중심에는 데이터 기반의 현장 운영이 있다.
기상 예보부터 산불 상황도 공유, 확산 예측에 따른 자원 배치, 주민 대피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이 하나의 유기적인 흐름으로 연결돼야 한다. 여러 기관이 동시에 대응하는 대형 산불 상황에서 정보의 단절은 실행 지연으로 이어지고, 이는 곧 피해로 직결된다. 첨단 과학기술을 활용한 신속한 대응 체계가 반드시 필요한 이유다.
이 시점에서 국립산림과학원의 역할은 분명하다. 산불을 단순한 연구 대상으로 보지 않고, 현장의 정교한 대응을 가능케 하는 ‘현장 지원기관’으로서 거듭나는 것이다. 연구실에서 머무는 기술이 아니라 현장에서 살아 움직이는 기술로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실질적 기반을 제공해야 한다.
이를 위해 국립산림과학원은 지역별 기상 조건, 연료 특성, 지형 요인 등을 과학적으로 분석하여 전국의 산불 위험 징후를 ‘국가산불위험예보시스템’을 통해 실시간으로 제공하고 있다. 특히 한국방송공사(KBS), 국방부, 기상청, 한국전력 등 유관기관과 정보를 긴밀히 공유함으로써 강풍·건조 지역을 사전에 식별하고, 대형 산불 가능성이 높은 곳에 선제적 예방 활동이 이루어지도록 지원한다.
또한 산불 발생 시 ‘실시간 산불 상황도’를 통해 항공·드론·지상 정보를 한 장의 지도에 통합하여 공유하고 있다. 이는 현장 지휘부와 유관기관이 상황을 동일하게 인식하여 신속하고 일관된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돕는다.
아울러 발화지의 위치와 지형, 산림 상태, 기상 조건을 바탕으로 시간대별 산불 확산 경로를 예측·분석하고 있다. 이 데이터는 현장 상황실에 제공되어 진화 자원의 효율적인 배치와 주민 대피 전략 수립에 핵심적 역할을 한다. 헬기 투입이 어려운 야간에는 열센서드론을 활용해 화선과 잔불 위치를 탐지하며, 위성·항공·드론의 다중 관측 자료를 결합해 연무나 어둠 속에서도 화선 변화를 신속히 파악하여 골든타임을 확보하고 있다.
대형 산불의 시대에 서 우리가 선택할 길은 명확하다. 경험에만 의존하는 대응을 넘어, 데이터 중심의 과학적 관리 체계를 상시 가동하는 것이다. 산불이 빨라졌다면 우리의 의사결정은 그보다 더 빨라져야 한다. 그 속도를 만드는 힘은 첨단 과학기술이며, 기술이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할 때 비로소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담보할 수 있다.
국립산림과학원은 앞으로도 ‘과학 기반 현장 지원’이라는 방향성을 분명히 하며, 예보에서 예측까지 전 과정을 하나로 잇는 지원체계를 강화해 나갈 것이다. 산불을 이기는 유일한 길은 빠르고 정확한 현장 판단과 실행이며, 그 출발점은 과학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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