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
주택시장은 개인의 합리적 선택이 집단적 불안으로 쉽게 전이되는 공간이다. 내 집 마련이라는 현실적 판단은 각자에게는 타당하지만, 그것이 특정 시점에 한꺼번에 쏠릴 때 시장은 오히려 긴장 상태로 들어간다. 미시적 합리성과 거시적 안정이 어긋나는 전형적인 역설이다.
미국 경제학자 존 캐서디는 이런 역설을 ‘합리적 비합리성’(rational irrationality)이라고 설명했다. 개인의 선택은 충분히 합리적이지만, 그것이 집단으로 결합하는 순간 시스템 전체에는 불안정한 결과를 낳는다는 것이다. 고전적인 ‘구성의 오류’ 역시 같은 맥락에 있다.
주택시장은 이 역설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시장이다. 한 가구의 안정을 위한 내 집 마련이 모두의 선택이 되는 순간, 가격은 급등하고 불안은 퍼진다. 개인에게는 최선이었던 판단이 집단 전체에는 위험이 되는 구조가 이 시장에서 반복된다.
이 메커니즘은 게임이론의 ‘죄수의 딜레마’로도 설명할 수 있다. 죄수의 딜레마는 경쟁 관계에 있는 사람들이 각자의 처지에서 완벽하게 합리적으로 행동할 때, 집단적 결과가 오히려 하향 평준화되는 상황을 보여준다. 서로 협력하면 모두에게 유리하지만, 상대의 선택을 확신할 수 없을 때 각자는 자신의 이익을 우선하는 선점 전략을 택한다.
주택시장에서도 ‘남들이 사기 전에 내가 먼저 사야 한다’는 판단은 개별적으로는 합리적이지만, 모두가 그렇게 행동하는 순간 시장 전체는 과열과 불안의 늪에 빠진다.
이 과정에서 개인은 더는 고립된 의사결정자가 아니다. 군중 속에 들어가는 순간 판단의 기준은 ‘옳고 그름’이 아니라 ‘함께하고 있는가’로 이동한다. 제러미 스타인 하버드대 교수는 이를 ‘합리적 군중’(rational crowd)이라 부르며 이렇게 설명한다. “아무리 멍청한 짓을 해도 다른 사람들이 똑같이 멍청한 짓을 한다면 당신을 바보라고 할 사람은 없다. 당신의 평판도 크게 문제 될 것이 없다.”
주택시장에서는 가격 급등기에 추격 매수에 나서거나 과도한 대출을 감수하는 선택조차 군중 속에서는 합리적 판단으로 포장된다. 뒤처질지 모른다는 공포(FOMO)가 틀릴 위험보다 더 크게 인식되기 때문이다.
부동산 시장의 기저에는 언제나 불안 심리가 깔려 있다. 주거는 사치재가 아니라 생존과 직결된 필수재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정책 정보를 공공의 관점에서 해석하지 않는다. ‘이 정책이 사회 전체에 어떤 의미가 있는가’보다 ‘나에게 불리하지는 않은가’를 먼저 따진다. 정보는 대의보다 개인적 이해관계에 따라 수용된다. 이 과정에서 합리적 비합리성은 더욱 강화된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이기적이며, 정책은 이 본성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이기심과 욕망을 곧바로 죄악으로 규정하는 것도 위험하다. 자산에 대한 욕망은 자본주의를 움직이는 기본 동력이다. 이를 무조건 억압하거나 도덕적 결함으로 취급할 수는 없다. 문제는 욕망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제도적 질서 없이 집단화될 때 발생하는 왜곡이다. 방향을 잃은 욕망이 시장을 불안정하게 만든다.
그렇다면 해법은 무엇인가. 개인의 욕망을 무조건 통제하는 방식은 답이 아니다. 시장 참여자의 선택을 억압할수록 부작용과 왜곡은 더 커진다. 필요한 것은 통제가 아니라 유도다. 넛지(nudge)처럼 자연스럽게 선택의 방향을 바꾸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특히 주택시장에서는 수요가 특정 시점에 몰리는 병목현상을 완화해야 한다. ‘지금 사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을 ‘기다리면 더 나은 기회가 온다’는 확신으로 바꾸어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시장에 신호를 제대로 보내는 것이다. 공급 확대 의지를 분명히 하고, 단기 처방이 아니라 중장기 방향을 일관되게 제시해야 한다. 정책은 단발적 이벤트가 아니라 누적적 과정이다. 일관성이 축적될 때 비로소 정책은 효과가 발휘된다.
정부와 시장 사이에 신뢰가 구축되지 않으면 정책 실패는 반복된다. 정책 실패의 상당 부분은 정책 내용 자체보다 신뢰의 결핍에서 비롯된다. 신호는 일관되게, 진실하게, 지속적으로 보내져야 한다. 그래야만 시장은 각자도생 ‘죄수의 딜레마’와 ‘합리적 군중’의 함정에서 벗어나 협력의 균형으로 이동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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