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唐)나라 2대 황제 태종이 ‘정관의 치’(貞觀之治)라 해서 태평성대를 이룰 수 있었던 데에는 그의 곁에서 국정을 보좌한 명재상 위징(魏徵, 580~643) 같은 충신들의 힘이 컸다. 태종은 위징을 비롯, 방현청, 두여회, 왕규, 이적, 이적 같은 뛰어난 인재들의 간언을 잘 받아들였고, 이들이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판을 깔아주었다. 그래서 그의 시대에는 “백성들이 길거리에 떨어진 것을 줍지 않았고, 대문을 잠그지 않을” 정도로 안정된 사회를 이루었다.

수(隋)나라 말기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위징은 혼란기에 이밀(李密)의 군대에 참가하였으나 곧 당 고조(高祖)에게 귀순하여 고조의 장자 이건성(李建成)의 측근이 됐다. 건성이 아우 세민(世民,후의 태종)과의 경쟁에서 패하였으나 위징의 인격에 끌린 태종의 부름을 받아 간의대부(諫議大夫) 등의 요직을 역임한 후 재상(宰相)으로 중용돼 13년동안 태종을 보좌했다.

위징은 황제에게 목숨을 걸고 바른말을 하는 간언(諫言)으로 명성이 높았다. 200여 차례 이상 태종의 잘못을 지적하거나 정책을 비판하는 상소를 올렸다. 당나라의 역사가 오긍이 편찬한 ‘정관정요’(貞觀政要)는 태종이 위징을 비롯한 신하들과 나눈 정치적 대화를 모은 일종의 ‘제왕학’으로, 동아시아 군주들의 필독서다. 위징은 생전에 무리한 전쟁을 경계했는데, 그가 죽은 뒤 태종이 고구려 원정에 실패하고 돌아와 “위징이 살아 있었다면 나를 말렸을 것”이라며 후회했다는 기록도 전해진다.

위징이 태종에서 올린 상소문인 ‘십사소’(十思疏)는 국가의 리더가 어떻게 사고하고 행동해야 하는가를 가르치는 전범(典範)이다. ‘십사소’는 제왕이 깊이 생각해야 할 열가지란 뜻으로, 통치자가 욕망을 억제하고 백성을 편안하게 하기 위해 경계해야 할 내용을 담고 있다.

‘십사소’의 상소는 대규모 궁전 건설과 관련이 깊다. 태종은 630년 기주(岐州, 지금의 바오지(寶鷄) 경내)에 있는 인수궁(仁壽宮)을 확장 수축한다. 인수궁은 수 문제(文帝)가 피서용 행궁으로 지은 것이다. 태종은 인수궁을 구성궁(九成宮)으로 이름을 바꾸고 역시 피서용 행궁으로 사용했다. 또 정관 8년에는 장안(長安)의 대명궁(大明宫) 공사에 착수하고, 정관 11년에는 낙양에 비산궁(飛山宫)을 짓는다. 비산궁이 완공되자 태종은 득의만만했다. 이를 보고 위기를 느낀 위징(魏徵)이 올린 게 ‘태종께 간하는, 생각해야 할 열가지 상소’(諫太宗十思疏)다.

나무가 크게 자라기를 바라면 뿌리를 견고히 해야 하고, 물이 멀리 흐르기를 바라면 원천을 깊게 해야 하며, 나라를 평안히 하려면 반드시 덕을 쌓아야 한다. 원천이 깊지 않은데 멀리 흐르길 바라고, 뿌리가 견고하지 않은데 크게 자라길 바라고, 덕이 두텁지 않은데 나라가 평안하길 바라는 것은 불가하다는 말로 시작한 상소는 편안할 때 위태로움을 생각하면서 사치를 경계하고, 덕을 쌓고, 욕망을 억누를 것을 주문했다. 편안할때 위험이 닥칠 것을 생각하라는 유가(儒家)의 ‘거안사위’(居安思危) 정신이 녹아있다.

위징이 밝힌 십사(十思)는 다음과 같다.

첫째, 욕심이 날 만한 것을 보면 만족할 줄 앎으로써 스스로 경계해야 함을 생각하라 (欲有所欲必思知止以安其人).

둘째, 하고자 하는 바가 있으면 멈출 줄 앎으로써 백성을 안정시켜야 함을 생각하라 (欲以干知必思止足以自戒).

셋째, 지위가 높아 위험이 닥칠까 염려되면 겸허하게 자신을 수양해야 함을 생각하라 (處高危則必思謙沖以自牧).

넷째, 가득 찰까 두려우면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어야 함을 생각하라 (懼滿盈則必思江海下百川).

다섯째, 사치하고 싶으면 검소함을 보존해야 함을 생각하라 (樂盤遊則必思三驅以爲度).

여섯째, 마음이 나태해지면 유종의 미를 거두어야 함을 생각하라 (憂懈怠則必思慎始而敬終).

일곱째, 간언이 싫어지면 솔직한 의견을 수용해야 함을 생각하라 (慮壅蔽則必思虛心以納下).

여덟째, 비방이나 칭찬이 두려우면 자신의 행동을 바로잡아야 함을 생각하라 (想讒邪則必思正身以黜惡).

아홉째, 은혜를 베풀 때 사사로움이 생기면 공정성을 잃지 말아야 함을 생각하라 (想逸豫則必思知止以安人).

열째, 행동을 할 때 도리에 어긋날까 두려우면 윗사람의 덕을 높여야 함을 생각하라 (慮壅蔽則必思虛心以納下).

위징은 이 열 가지를 통해, “근본(백성)을 튼튼히 하고 욕망을 다스려 나라의 안정을 영원히 누리라”(欲木之長者, 必固其根本·구목지장자 필고기근본)고 간언했다.

643년 위징이 죽자 당 태종은 “구리로 거울을 만들면 의관을 바로잡을 수 있고, 역사를 거울로 삼으면 흥망성쇠를 알 수 있으며, 사람을 거울로 삼으면 자신의 득실을 알 수 있다. 이제 위징이 죽었으니 거울 하나를 잃고 말았다”며 크게 슬퍼했다. 또 고구려 원정에 실패하고 돌아와 “위징이 살아 있었다면 나를 말렸을 것”이라며 후회했다는 기록도 전해진다.

하지만 이렇게 후회한지 불과 두 해 뒤 태종은 고구려 침공을 다시 강행한다. 그리고 장안 북쪽에 옥화궁(玉華宮)을 짓는다. 위징이 사치를 경계하고 욕망을 억누르라는 상소를 올린 지 십년째 되는 해였다. 이후 태종의 건강은 급속히 악화됐고 장생술에 빠져 온갖 단약을 복용한 결과 52세이던 정관 23년에 세상을 뜨고 만다. 그가 숨을 거둔 장소는 장안 남쪽에 있는 취미궁(翠微宮)으로, 647년에 완공한 피서용 행궁이다.

태종은 위징에게 “군주가 어떻게 하면 명군(明君)이 되고 어떻게 하면 혼군(昏君)이 되오?”라고 물었다. 이에 대해 위징은 “두루 들으면 현명한 군주가 되고, 한쪽 말만 믿으면 어리석은 군주가 되옵니다. 여러 의견을 두루 듣고 받아들이면 권신이 감히 기만할 수 없으며, 아랫사람의 의견이 윗사람에게 전해질 수 있사옵니다”고 했다. 국가의 리더는 거슬리는 말일지라도 국익에 도움이 된다면 기꺼이 듣고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국민과 함께 기쁨을 나눌 수 있다.

강현철 논설실장(hckang@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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