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앰네스티, 北 탈출민 25명 인터뷰 증언 소개

‘반동사상문화배격법’ 따라 자의적 수색·처벌에 부패

“국제인권법 위반, 아동권리 침해 北정권 답변 없어”

국제앰네스티 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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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김정은 정권이 남한 TV 프로그램을 시청한 주민들을 적발해 최고 사형에 처하면서도, 뇌물로 처벌을 무마하는 관행이 만연해 있다는 국제 인권단체 보고서가 나왔다.

국제 비정부기구(NGO) 국제앰네스티는 4일 증언을 종합해 북한에서 한국 TV 프로그램을 시청하다가 적발된 사람들이 공개적 망신, 수년간 노동교화형, 나아가 처형까지 당할 수 있으며 특히 뇌물을 제공할 경제적 형편이 안 되는 빈곤층이 가장 가혹한 처벌을 받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 2025년 한해 동안 북한 탈출 인사 25명을 대상으로 개별 심층인터뷰를 진행한 결과다.

북한에선 외국매체를 금지하는 이른바 ‘반동사상문화배격법’ 위반으로 처벌이 집행되고 있지만, 모호한 법 규정 아래 재력과 연줄로 처벌이 좌우되는 부패한 체계라는 게 주민들의 증언이다. 이에 따라 5~15년의 강제노동을 비롯해 중형부터 사형에 처할 위험이 상존하면서도, 한국 TV 프로그램을 비밀스럽게 시청하는 현상이 북한 사회 전반에 확산된 것으로 전해졌다.

주민들은 가택 수색과 자의적 구금이 언제든 벌어질 수 있다는 상시적 공포 속에서 생활해왔고, 일부는 학령기 아동시절 ‘사상교육’ 일환으로 공개처형을 강제로 목격했다고 한다. 사라 브룩스 국제앰네스티 동아시아 지역 부국장은 “이 증언은 북한이 한국 TV 프로그램을 시청했다는 이유만으로도 목숨을 잃을 수 있는 ‘디스토피아적 법’을 어떻게 집행하고 있는지 보여준다”고 말했다.

브룩스 부국장은 “다만 돈을 지불할 수 있다면 그마저도 피할 수 있다”며 “북한 당국은 국제법을 위반하면서 정보에 대한 접근을 범죄화하고, 처벌을 두려워하는 사람들로부터 당국자들이 이익을 챙기도록 방치하고 있다. 이는 억압에 부패가 덧씌워진 구조로, 재력과 연줄이 없는 사람들에게 가장 심각하게 피해가 집중된다”고 했다. 표현의 자유 범죄화와 부패를 지적한 것이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2월 1일 평안북도 압록강 위화도지구 신의주온실종합농장 건설에 공헌한 과학자·기술자, 중앙 및 현장지휘부 일꾼들을 만나 기념사진을 찍었다고 조선중앙TV가 2일 보도했다.<조선중앙TV 화면·연합뉴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2월 1일 평안북도 압록강 위화도지구 신의주온실종합농장 건설에 공헌한 과학자·기술자, 중앙 및 현장지휘부 일꾼들을 만나 기념사진을 찍었다고 조선중앙TV가 2일 보도했다.<조선중앙TV 화면·연합뉴스>

앰네스티에 따르면 인터뷰에 응한 탈북 인사 25명 중 11명은 2019~2020년 북한을 탈출했으며, 가장 가까운 탈출 시점은 2020년 6월이었다. 대부분 탈출 당시 15~25세였다. 2020년 코로나19로 국경이 봉쇄된 이후 탈출은 극히 드문 사례가 됐다. 현지에서 드라마나 영화는 대체로 중국에서 USB에 담겨 밀반입되며 젊은세대는 이를 ‘노트텔’이라 불리는 기기로 시청한다.

2012~2020년 탈북 주민들로부터는 뇌물로 극형이 무마된단 진술이 잇따랐다. “처벌은 전적으로 돈에 달렸다…돈이 없는 사람들은 교화소에서 나오려고 5000달러나 1만달러를 모으기 위해 집을 판다”, “고등학생들이 잡히면 가족이 돈이 있는 경우 그냥 경고만 받는다” 등이다. 당국자 등과의 ‘연줄’도 작용했다고 한다. 5000~1만 달러는 북한 최부유층만이 감당하는 수준이다.

북한 정권은 외국매체 접근 행위를 단속하기 위해 전국적으로 ‘109상무’로 불리는 법집행 부대를 배치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 조직은 영장없이 가택과 거리에서 가방과 휴대전화를 수색한다. 서로 다른 지역 출신 탈북민 15명이 109상무의 존재를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요원들은 “강하게 처벌하고 싶지 않지만, 우리가 살아남으려면 윗선에 뇌물을 바쳐야 한다”고 회유한다고 한다.

외국매체 시청은 ‘공공연한 비밀’이면서도 ‘공개처형’과 ‘참관 강요’로 단속된다. 한 탈북민은 “노동자들은 대놓고 보고, 당 간부는 당당하게 보고, 보위부원은 보이지 않게 보고, 안전원(보안원)은 안전하게 본다. 단속하는 사람들까지 포함해 ‘누구나 다 본다’는 걸 모두가 안다”고 했다. 다른 증언자는 “당국이 ‘모두 오라’고 해서 신의주시에서 수만명이 모여서 (처형을) 봤다”고 했다.

공개처형 참관 강요를 10대 학생 시절 경험했단 진술도 복수로 나왔다. 앰네스티는 “어떠한 경우에도, 어떠한 상황에서도 사형에 무조건 반대한다”며 북한의 법과 관행은 1981년 비준한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ICCPR)을 포함한 국제인권법 위반이자, 1990년 북한도 비준한 ‘아동의 권리에 관한 협약’(CRC)에 따른 아동의 권리까지 침해한다고 지적했다.

앰네스티는 “1953년 정전협정은 한국전쟁을 일시적으로 중지시켰을 뿐, 공식적으로 종결시키지는 않았다. 그 이후 북한과 남한은 법적으로는 전쟁 상태에 있으며, 두 나라는 여전히 깊이 분단돼 있다”고 환기시켰다. 아울러 “앰네스티는 북한 정부에 서한을 보내 이번 조사 결과를 공유하고, 제기된 주장들에 대한 입장을 요청했으나 현재까지 답변은 접수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김성준 기자(illust76@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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