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억원짜리 고가 아파트를 여러 채 보유한 사람과, 어쩌다 빌라 한 채 유산으로 받아 전세를 주고 있는 일반 중산층까지 투기세력으로 보고 무조건 팔라고 몰아붙이는 건 억울한 것 이상이네요."
서울에서 다가구주택과 빌라를 임대하고 있는 김모 씨는 집값 급등의 책임을 다주택자에게 돌리려는 정책 기조 속에서 자신과 같은 생계형 다주택자까지 투기 세력으로 묶여 비판받는 현실에 불만을 표했다.
다주택자는 부동산 시장 상승기 때마다 집값 불안의 원흉이자 투기의 주범으로 지목됐다. 이재명 대통령은 여기서 더 나아가 '돈 마귀에 최소한의 양심마저 빼앗긴 것은 아니냐'며 비판의 수위를 더 높였다.
과연 대통령의 표현처럼 한국의 다주택자들은 모두가 마귀에 양심을 빼앗긴 걸까?
단기 시세차익을 노린 투기성 다주택자가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시장에 그런 악인들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다주택자라고 해서 다 같은 다주택자는 아니란 얘기다.
지방에는 소형·노후 주택을 여러 채 보유한 '무늬만 다주택자'인 경우도 적지 않다. 주택 수는 많지만 총자산 가치는 수도권 아파트 한 채에도 미치지 못하는, 정작 가진 주택수는 많아도 투기와는 별개로 보유한 경우도 꽤 된다. 실거주 수요가 적은 지역에서 임대를 유지하며 생계를 이어가는 이들까지 투기 세력으로 분류하는 것은 시장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상속이나 증여로 본인 뜻과 무관하게 다주택자가 된 사례도 흔하다. 부모 사망 이후 지방의 오래된 주택을 물려받았지만, 거래가 여의치 않아 처분하지 못한 채 다주택자로 분류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이외에도 장기간 임대업을 이어온 소규모 임대인, 자녀 교육이나 노후 대비를 위해 주택을 분산 보유한 경우, 재개발·재건축 과정에서 의도치 않게 주택 수가 일시적으로 늘어난 사례까지 고려하면, 다주택자가 된 경로는 투기가 아니어도 다양하다.
반면 도심 인기 지역에서 대출을 활용해 아파트를 여러 채 매입하고, 단기 시세차익을 노린 투기성 다주택자도 분명 존재한다. 다주택 투기를 잡겠다면 규제의 초점은 이들에게 맞춰져야 한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전문가들은 다주택자를 보유 주택 수만으로 획일적으로 규제하기보다, 투기 목적 여부와 임대·실수요 성격, 2주택과 3주택 이상 간 차이를 반영한 유형별·차등적 정책 접근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박합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는 "다주택자라도 2주택자와 3주택 이상 보유자는 구분할 필요가 있다"며 "가족 거주, 직장 이동, 상속 등 실수요적 보유까지 주택수만 가지고 투기와 동일하게 보는 것은 무리"라고 말했다.
그는 "2주택은 과도한 보유로 보기 어렵고, 종합부동산세도 이미 차등 적용되고 있는 만큼, 보다 세분화된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신보연 세종대 부동산AI학과 교수는 "투기성 다주택자는 엄격히 관리·규제하되, 선의의 다주택자는 전·월세 공급을 유도하고, 일시적 다주택자에게는 합리적인 유예를 제공하는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상길 기자 sweatsk@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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