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화 대기자
‘1·29 부동산 공급 대책’에 회의적 시각이 적지 않다. 공공시설과 그린벨트를 활용해 주택을 공급하겠다는 구상이 과연 최선인지 의문이다. 착공까지 최대 3년, 입주까지 최소 5년 이상이 걸린다는데, “지금 불을 끄겠다며 5년 뒤 물을 붓겠다는 대책”이라는 비판이 따른다.
이재명 정부 들어 벌써 네 번째 주택시장 대책이다. 그만큼 시장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얘기다. 임기 내 135만 가구 공급을 약속했지만, 핵심 입법은 국회 문턱에서 번번이 멈춰섰다. 지난해 ‘9·7 대책’을 뒷받침할 법안 23건 중 본회의를 통과한 것은 4건뿐이다. 도심 유휴부지 개발을 위한 특별법 역시 발의만 됐을 뿐 논의조차 되지 않았다.
이번 대책은 구체적인 지역을 제시하고 정부가 주도한다는 점에서 시장에 던진 신호는 확실하다. 정부가 공급 확대 의지를 재확인했다는 점에서 시장심리 안정 효과는 기대할 수 있다. 문제는 당장의 공급 공백이다. 올해 수도권 공공 공급 물량은 3만 가구에도 미치지 못 할 것으로 보이고, 민간 공급 역시 위축되고 있다. 진행 중인 3기 신도시 19만3000 가구 입주 시기는 2029년 이후다. 그 사이를 어떻게 버틸지가 관건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 간극을 ‘기존 주택의 시장 유입’으로 메우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이 대통령은 연일 소셜미디어 엑스(X)를 통해 오는 5월 9일 종료되는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유예를 더는 연장하지 않겠다고 못 박았다. 이 대통령은 “돈 벌겠다고 살지도 않는 집을 수십, 수백 채씩 모으는 바람에 집값과 임대료가 천정부지로 올라 젊은이들은 결혼을 포기하고 출산이 줄어 나라가 사라질 지경”이라며 “몇몇 불로소득 돈벌이를 무제한 보호하려고 나라를 망치게 할 수는 없다”고 했다. “아직 100일이나 남았다”며 정부에 맞서지 말고 팔라고 경고했다.
통계는 대통령의 판단에 일정 부분 힘을 싣는다. 국가데이터처의 ‘2024년 주택소유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주택소유자 1597만명 가운데 238만명(14.9%)이 다주택자다. 서울에만 54만7000명이 두 채 이상을 보유하고 있다. 이들이 한 채씩만 내놓아도 상당한 물량이 시장에 풀릴 수 있다.
다만 대통령의 판단이 전부 옳은 건 아니다. 현실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다주택자가 모두 투기꾼은 아니다. 다가구·빌라·오피스텔을 임대하며 서민 주거를 떠받치는 임대사업자도 적지 않다. 문제는 고가 아파트를 여러 채 보유한 채 임대료를 끌어올리는 일부다. 이들을 겨냥한 정책이라면 더욱 정교해야 한다. 지금처럼 조정대상지역과 토지거래허가구역이 겹쳐 매각 자체가 어려운 상황에서 “팔라”고만 하는 것은 퇴로를 막고 나가라는 것과 같다. 한시적인 토지거래허가제 완화, 가격 인하 매각 시 세제 인센티브, 매수자에 대한 대출규제 완화 같은 출구 전략이 병행돼야 한다.
공급의 핵심 축인 정비사업을 외면해서도 안 된다. 서울 시내 신규 주택 공급의 90%는 민간에서 나온다. 재건축·재개발을 투기라는 이유로 틀어막는 것은 지나친 단순화다. 서울의 남루한 골목과 노후 위성도시에 사는 이들 역시 새 집에서 살고자 한다. 규제를 위한 규제가 아니라, 무엇을 더 잘 작동하게 할지에 초점을 맞춘 정책이 반드시 필요하다.
주택 정책도 차제에 좀 수준을 높여야 한다. 우리는 집을 지나치게 돈의 논리로만 다뤄왔다. 주택은 삶의 질과 연결되는 가장 개성적인 공간이어야 한다. 땅값이 비싼 A지역보다 자연 환경이 좋은 B·C지역에 같은 비용으로 더 나은 주거공간을 만드는 것이 사회 전체로는 합리적일 수 있다. 그린벨트와 도시의 쉼터를 무리하게 헐기보다, 아직 여유가 있는 비아파트 주거지를 새로운 주거공간으로 디자인하는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번 대책은 분명 허점이 많다. 그러나 집값 거품을 더 키워서는 안 된다는 목표는 분명하다. 시장의 관성에 또다시 밀려 정책이 후퇴한다면, 무주택자와 청년들이 그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입법 지연을 방치한 국회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번만은 말이 아니라 실행으로, 규제가 아니라 설계로 정부가 시장을 이겼으면 한다.
이규화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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