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재준 국민의힘 의원(대구 북구갑)
재난 및 안전관리법 개정안
산불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그리고 그 불길 앞에 가장 먼저 나서는 사람들은 늘 같다. 조종석에 앉아 연기와 열기 속으로 날아오르는 헬기 조종사들이다. 지난해 봄, 산불 진화 현장에서 헬기 추락 사고가 연이어 발생하며 두 명의 조종사가 목숨을 잃었다. 그중 한 명은 대구 북구 산불 현장에서 초동 진화에 투입됐다가 순직한 고(故) 정궁호 기장이다.
분향소를 찾았을 때, 한 가지 질문 앞에 멈춰 섰다. “왜 이런 죽음은 반복되는가.” 이러한 사고는 개인의 불운이나 현장의 실수로 치부돼서는 안 되며, 다시는 반복돼서도 안 된다. 그 각오가 이번 입법의 출발점이 되었다.
산불 대응에서 가장 중요한 단계는 초기 대응이다. 불길이 확산되기 전 얼마나 신속하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피해 규모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된다. 이 초기 대응의 핵심 전력이 바로 산불방지 헬기다. 그러나 그동안 충분히 주목하지 않았던 현실이 있다. 산불이 발생했을 때 가장 먼저 출동하는 헬기의 상당수가 중앙정부 소속이 아니라, 지방자치단체가 임차해 운용하는 헬기라는 사실이다.
문제는 이 헬기들의 상태다. 전국 지자체가 운용 중인 임차 헬기 대부분은 기령 20년을 훌쩍 넘긴 노후 기체다. 평균 기령은 30년을 넘고, 일부 헬기는 60년이 넘은 상태로 여전히 재난 현장에 투입되고 있다. 대한민국이 아직 산업화의 문턱에 있던 시절 도입된 기체가 지금도 가장 위험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고 정궁호 기장이 탑승했던 헬기 역시 수십 년을 운항한 노후 기체였다.
이러한 구조가 유지돼 온 이유는 분명하다. 지자체 임차 헬기의 임차·운영 비용은 전액 지방비로 부담되고 있으며, 중앙정부가 직접 지원할 수 있는 명확한 법적 근거는 사실상 마련돼 있지 않았다. 헬기 한 대를 임차하고 유지하는 데에는 수십억원이 소요된다. 재정 여력이 부족한 지자체일수록 노후 기체를 계속 사용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고, 그 부담은 현장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조종사와 대응 인력에게 고스란히 전가돼 왔다.
이 문제를 개인의 헌신이나 지자체의 책임으로만 남겨둘 수 없다고 판단했다. 산불은 특정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전체가 함께 대응해야 할 재난이다. 최소한 초기 대응에 투입되는 필수 전력만큼은 국가가 책임을 분담하는 구조로 전환돼야 한다. 위험이 집중되는 현장에서 개인의 각오와 희생에 기대는 방식은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이 법안은 지방자치단체가 재난 예방과 대응을 위해 소방 헬기 등 필수 장비를 구입하거나 임차할 경우, 국가가 그 비용의 전부 또는 일부를 예산 범위 내에서 지원할 수 있도록 근거를 마련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아울러 지원 대상 장비에 대해 국가와 지자체가 점검과 관리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 안전 관리 체계도 함께 강화하도록 했다.
이 법은 단순히 예산을 지원하자는 제안이 아니다. 재난 대응 장비를 지방 재정 여건에 따라 좌우되는 선택 사항이 아니라, 국가가 책임져야 할 공공 안전 인프라로 분명히 위치 짓자는 것이다. 법이 통과된다면 노후 헬기 교체에 대한 현실적인 재정 기반이 마련되고, 재난 대응의 출발선이 지역별 재정력에 따라 달라지는 불합리한 구조도 바로잡을 수 있을 것이다.
고 정궁호 기장의 희생은 결코 잊혀져서는 안 된다. 그 희생 앞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같은 질문을 다시 던지지 않아도 되는 구조를 만드는 것, 그리고 그 책임을 법으로 분명히 하는 것이다. 산불 현장에서 시작된 이 입법이 또 다른 비극을 막는 최소한의 장치가 되기를 바란다.본 의원이 대표발의한 이번 법안에는 김승수·임이자·윤재옥·김태호·박정하·김위상·김기현·조지연·박충권·김용태·서일준·권영진 의원 등 12인이 공동발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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