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일 산업부장

한 친구가 물었다. 코스피 5000을 찍으면서 주가는 이미 오를 만큼 오른 것 같은데 이제 어디에 투자해야 하냐고. 바로 답을 못 했다. 코스피 5000 시대의 안착이라고 보기에는 불안 요인이 남아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반나절 고민 끝에 답을 찾았다. 여전히 반도체고, 앞으로도 반도체라고.

‘26만 전자’와 ‘150만 닉스’를 보장한다는 뜻은 아니다. 실적만 보면 그럴 가능성이 높아 보이기는 하다. 실적 외에 다른 외부 요인의 영향을 많이 받는 주식 시장의 특성 상 그렇다는 것이다.

잠깐 실적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이달 말 주요 D램 제품 가격은 인공지능(AI) 붐에 따른 반도체 수요 폭증에 힘입어 전 분기보다 2배 이상 치솟았다. 엔비디아의 인공지능 칩, 그리고 금값보다 더 무서운 상승세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실적은 점점 더 가파른 절정을 향하고 있다.

하지만 필자가 반도체를 추천하는 이유는 수익 하나 때문만은 아니다. 국익을 위해서다.

최근 유럽의 위기를 살펴보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로 유럽은 에너지발(發) 경제 위기의 그림자가 서성거리고 있고, 여기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그린란드 병합 위협까지 더해지면서 더 위태로워졌다.

100년 전까지만 해도 세계를 쥐락펴락 했던 유럽 각국은 이제 중국의 손을 잡아야 할 지경에 놓였다. 이미 힘 빠지고 늙어버린 사자이기 때문이다. 그 사자가 그래도 자신을 지키기 위해 한국산 탱크와 로켓을 사 주는 것은 감사하다. 방위력 상실, 인구 저하, 에너지 위기, 유로화 체제의 한계로 인한 내부 분열 등 유럽의 위기에는 여러 요인이 있지만, 진짜 위기는 따로 있다.

바로 산업 측면에서 유럽이 ‘꼭 필요한 하는 이유’를 못 찾겠다는 점이다. 그나마 찾자면 반도체 핵심 장비를 독점 제조하는 네덜란드 기업 ASML의 존재 정도다. 한국 뿐 아니라 미국과 대만, 일본 등 주요 반도체 제조업체들은 초미세 공정 반도체 양산을 위해 ASML의 장비가 꼭 필요하다. 물론 대체할 길이 없진 않지만 비용이나 수율 측면에서 ASML을 넘어설 대안은 최소 수 년 내에 나오기 어렵다.

그런 차원에서 한국의 메모리반도체는 ASML을 뛰어넘어 세계 시장에서 꼭 필요한 존재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세계 시장의 과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데, 대항마는 마이크론과 중국 기업들 정도다.

혹자는 한국의 메모리반도체를 폄하한다. 엔비디아의 AI칩과 비교해 단순히 저장만 하는 소품종 대량양산 메모리반도체는 중국이 금방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미국이나 유럽 역시 안 만드는 것이지 못 만드는 것은 아니라고.

하지만 과연 그럴까. 25년 간 부동의 세계 반도체 1위였던 인텔 역시 삼성전자 등과의 메모리 경쟁에 밀려 결국 낸드 사업부를 SK하이닉스에 매각하기에 이르렀고, 천하의 엔비디아나 퀄컴도 시장의 메모리 공급부족 우려를 진화하기에 급급할 지경이다.

단순히 찍어내기만 하는 사업이었다면 중국이 한국 기술을 빼가려 저렇게 혈안이진 않을 것이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자국에 메모리반도체를 짓지 않으면 10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엄포를 놓지도 않았을 것이다. 만약 전쟁으로 한국의 메모리 생산공장이 멈춘다면 세계 AI 산업은 사상 최악의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그런 우리 반도체를 가장 평가절하 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일부 국민이라는 점이 씁쓸하다. 선거 승리를 위해서라면, 그리고 귀족노조 표심을 잡기 위해서라면 뜬금없이 반도체 공장을 옮기자고 주장하는, 반도체 같은건 아무래도 상관 없다고 생각하는 일부 유력 인사들 얘기다.

우리가 유럽보다 그나마 나은 점이 있다면, 아직은 버티고 있는 대체불가 메모리반도체의 존재다. 그런데 우리는 미국이나 유럽, 대만처럼 국가 전략산업으로 키워도 모자를 판에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겠다는 기세이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국익을 위해서라도 반도체 주식에 투자했으면 싶다. 앞으로 세계는 정보로 싸울 것이고, 그 핵심 인프라는 반도체다.

박정일 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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