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대만은 한때 아시아의 ‘네마리 용’으로 불렸다. 그런데 지금은 한국은 그 대열에서 탈락한 반면 대만은 고속 성장세를 이어가는 조짐이다. 단적인 수치가 작년 4분기 마이너스 0.3% 역성장과 12.68% 성장으로 대표되는 성장률 격차다. AFP와 블룸버그통신, 대만 중앙통신사(CNA) 등에 따르면 대만 통계당국인 주계총처는 지난해 4분기 GDP(국내총생산) 증가율이 전년 동기 대비 12.68%에 달한 것으로 잠정 집계했다. 이는 블룸버그 전망치(8.75%)와 로이터통신 전망치(8.5%)를 모두 크게 웃돈 것이다. 이로써 대만의 작년 연간 성장률은 8.63%로, 15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도 3만9477달러로 한국을 2003년 이후 22년만에 제쳤다. 반면 한국의 지난해 4분기 성장률은 마이너스 0.3%로 뒷걸음질쳤다. 작년 연간 성장률도 1.0%로, 정부의 소비 쿠폰 지원 등 소비지원책에 겨우 0%대 성장을 면했다.
이런 성장률 격차를 대만의 파운드리 반도체업체 TSMC의 약진 때문만으로 돌리는 것은 단순한 해석이다. 한국도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가 인공지능(AI) 붐에 힘입어 반도체 수출이 폭증하고 있다. 그런데도 성장률은 왜 이렇게 차이가 나는 것인가. 첫째는 AI 생태계 구축의 차이다. 대만은 TSMC를 필두로 한 파운드리 부문에서 압도적인 세계 1위를 수성하며, AI 열풍이 불러온 반도체 슈퍼 사이클을 흡수하고 국가적 AI 생태계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반면 한국은 ‘AI 글로벌 3강’을 내걸고 있지만 아직 걸음마 단계다. 이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기업 활력’의 유무다. 대만 정부는 ‘반도체는 국가의 안보’라는 철학아래 용수·전력 공급부터 세제 혜택까지 파격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우리처럼 반기업 정책을 찾아보기 힘들다. 반면 한국은 최근 반도체 공장을 호남권으로 옮겨야 한다는 얼토당토 않은 주장조차 정치권에서 나올 정도로 기업 경영이 정치에 좌우된다. 각종 규제와 노동 일변도의 정책에 가로막혀 기업하기가 너무나도 힘든 나라다. 노란봉투법, 증시에만 초점을 맞춘 상법 개정 , 노동자에게 일방적으로 기울어진 운동장 등 기업가 정신을 꺾는 과도한 규제와 경직된 노동 시장은 기업들의 역동성을 갉아먹는 고질병이 된 지 오래다. 철강 석유화학 건설 등 구조조정이 시급한 전통 산업들이 속출하고 있지만 구조조정은 더디다. 가계 부채도 사상 최대로 늘면서 민간 소비 또한 제약받고 있다.
저성장이 고착화되고 있는데도 정부는 고통을 요구하는 구조조정 대신 손쉬운 돈살포 대증요법 처방에만 매달리고 있다.정부는 말로만 ‘민간 주도 성장’을 외칠 것이 아니라, 기업들이 마음껏 뛸 수 있도록 규제의 족쇄를 과감히 풀어야 한다. 선진국 기준에서 한참 먼 노동유연성도 높여 기업들이 숨을 쉴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1.0% 대 8.63%는 우리 경제의 현주소를 단적으로 나타내는 숫자다. 뼈아픈 교훈으로 삼아 경제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는다면, 우리 경제의 미래 또한 담보할 수 없을 것이다. 정치 지도자든 국민이든 지금이 대한민국 경제 재도약을 위한 마지막 기회라는 절박함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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