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이웃이자 핵심 우방국 캐나다에서 긴장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캐나다가 ‘미군 침공’을 가정한 국방 시나리오까지 검토한다는 소식은 미·캐나다 동맹을 당연시하는 북미 지역의 상식을 뒤흔들고 있다. 그러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이 두 나라 사이에는 실제로 전쟁이 있었다. 묻혀 있던 전쟁의 기억이 고개를 들면서 양국 관계가 새로운 시험대에 올랐다.
◆트럼프, 또 “미국의 51번째 주(州)” 모욕
캐나다가 중국과의 관계 강화에 나서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발끈했다. 한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미국의 51번째 주(州)’라는 용어를 다시 꺼내들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4일(현지시간) “캐나다가 중국과 협정을 체결한다면 미국으로 들어오는 모든 캐나다 상품과 제품에 즉각 100% 관세가 부과될 것”이라고 압박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자신의 소셜미디어(SNS) 트루스소셜에 “카니 주지사가 캐나다를 중국이 미국으로 상품과 제품을 보내는 ‘하역항’(Drop Off Port)으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는 크게 실수하는 것”이라며 이같이 적었다.
‘카니 주지사’는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를 가리킨 표현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2기 출범 때부터 캐나다 병합 야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면서 ‘미국의 51번째 주’라는 의미로 캐나다 총리를 ‘주지사’로 불러왔다.
트럼프는 당선인 시절 캐나다를 “미국의 51번째 주”, 쥐스탱 트뤼도 당시 총리를 “주지사”로 부르며 캐나다 병합 야욕을 표면화했다. 트뤼도 퇴진 후 마크 카니 체제가 들어서자 트럼프 대통령은 한동안 이 표현을 접어두는 듯했다. 그러나 캐나다가 중국에 접근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이런 ‘모욕적 언어’를 다시 꺼내들었다. 카니 총리는 이런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 “정상적이지 않다”고 직격했다.
◆정규전 대신 ‘게릴라전’으로 맞선다
이런 언어는 단순한 말실수가 아니다. 캐나다를 동등한 주권국이 아닌, 미국의 영향권 안에 있는 대상으로 바라보는 ‘돈로주의’(Don-roe Doctrine)를 여실히 보여준다. 캐나다 입장에선 안보와 주권의 근간이 흔들리는 상황이 됐다. 이에 캐나다는 그 전에는 상상히기 어려웠던 최악의 시나리오까지 상정하는 단계에 들어섰다.
캐나다는 국방비 증액과 함께 미국의 침공 가능성까지 상정한 국가 대응 모델을 100년 만에 처음으로 마련했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와 캐나다 언론 글로브앤메일에 따르면 캐나다는 미군이 공격해오면 정면 방어 대신 비정규전을 펼칠 계획이다. 정규군(7만1500명)에다 예비군(3만명)을 합쳐도 약 10만명 수준인 캐나다군으로는 200만명이 넘는 미군을 정규전으로 막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매복, 사보타주, 드론 공격, 히트앤런 방식의 소규모 게릴라전이 핵심이다.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당시 무자헤딘 반군, 그리고 탈레반이 미군을 상대로 사용한 전술을 참고한 모델로, 미군 인명 피해를 극대화하는 것이 목적이라는 설명이다.
징병제는 배제했지만, 창설을 추진 중인 40만명 규모의 자원 예비군이 점령 상황에서 무장·방해 공작에 동원될 가능성도 거론된다.
캐나다는 1930년대 미국과의 충돌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선제 군사행동 구상을 마련한 전례가 있다. 그런 캐나다가 이번에 미국의 자국 침공을 가정한 대응 모델을 수립한 것은 10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라고 글로브앤메일은 전했다.
◆전쟁의 기억, 다시 소환되다
캐나다가 1867년 독립 국가가 된 이후 두 나라가 전쟁을 벌인 적은 없다. 하지만 그 전에 미국이 캐나다를 공격한 적이 있었다. 미영 전쟁(1812~1815년) 때였다.
미국은 영국과 전쟁을 벌이면서 당시 영국 식민지였던 캐나다 지역을 침공했다. 선전포고를 한 이는 4대 대통령 제임스 매디슨이었지만, 실제 전쟁을 밀어붙인 동력은 의회 내 ‘매파’(War Hawks)였다. 그들은 캐나다 점령을 통해 변경 지역에서 인디언들을 선동하는 영국 세력을 축출하면서 영토를 확장하겠다는 야심을 품었다.
전략은 단순했다. 오대호 일대의 디트로이트-나이아가라-몬트리올로 이어지는 축선을 따라 공격하면 영국령 캐나다는 쉽게 무너질 것이라고 계산했다.
1813년 4월 27일, 미군은 온타리오 호수를 건너 요크(오늘날 토론토)에 상륙해 포트 요크(Fort York)를 공격했다. 포트 요크는 1793년 영국이 만든 요새였다. 당시 미군 병력은 약 1700명으로, 영국군과 캐나다 민병대, 원주민을 합친 요크 방어군 약 700명을 크게 웃돌았다.
영국 측은 병력 열세를 인식하고 지연전과 철수를 선택했다. 요크 방어군은 후퇴하면서 요크 외곽에 있던 화약고를 폭파시켜 접근하던 미군에 큰 피해를 입혔다.
요크는 결국 미군 수중에 떨어졌다. 그러나 문제는 점령 이후였다. 전사자가 많았던 미군은 분풀이를 했다. 요새 뿐 아니라 의회 건물, 총독 관저 등을 불태웠다. 도시는 거의 전소됐다. 일부 병사는 약탈에 가담했다. 이는 캐나다 주민들의 반미 감정을 극대화시켰다.
이 사건은 강력한 보복의 명분을 제공했다. 1814년 영국군이 워싱턴 D.C.를 점령해 국회의사당과 대통령 관저(백악관) 등을 불태울 때, 영국 측은 ‘미군의 요크 방화’를 보복 사유로 들었다. 요크의 불길이 결국 워싱턴의 불길로 되돌아온 셈이었다. 이후 대통령 관저는 재건됐다. 방화로 그을린 외벽을 흰 페인트로 칠하면서 대통령 관저는 ‘백악관’(The White House)으로 불리기 사작했다.
미영 전쟁은 명확한 승자 없이 끝났다. 국경선은 바뀌지 않았다. 그러나 그 의미는 결코 작지 않았다. 이 전쟁은 캐나다 정체성의 중요한 기원이 됐다. 미영 전쟁은 캐나다인에게 ‘미국의 침공을 막아낸 역사적 경험’으로 남았다. 미국인에겐 ‘두 번째 독립전쟁’으로 기억된다.
미영 전쟁의 역사를 떠올리는 이유는 지금 동맹의 언어가 균열을 내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51번째 주”, “주지사” 발언은 힘의 질서를 상기시키는 신호다. 이제 캐나다는 더 이상 미국을 ‘의심할 필요 없는 이웃’으로만 바라볼 수 없게 됐다. 캐나다의 ‘안보 시계’가 200여 년 전의 과거로 되돌아가고 있다. 북미 질서가 이전과 다른 국면에 들어섰다.
박영서 논설위원(pys@dt.co.kr)실시간 주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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