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년 74세… 베트남 현지 병원서 영면

현역 정치선 물러났지만 여전한 영향력

이해찬 전 총리가 지난해 11월 3일 서울 중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처에서 열린 제22기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 취임식에서 취임사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해찬 전 총리가 지난해 11월 3일 서울 중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처에서 열린 제22기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 취임식에서 취임사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의 '멘토'로 알려진 이해찬(사진) 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이 25일 베트남 현지 병원에서 별세했다. 향년 74세다.

1952년 충남 청양에서 태어난 고인은 서울 덕수중·용산고를 거쳐 서울대 섬유공학과에 입학했지만,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아 자퇴한 뒤 이듬해 서울대 사회학과 72학번으로 재입학했다.

대학 재학 시절인 1970년대 초 유신체제에 반대하는 학생운동에 뛰어들었고,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구속돼 중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이후 형집행정지로 석방된 뒤에도 민주화 운동과 지식인 활동을 이어갔다. 1979년에는 출판사 '돌베개'를 설립해 사회 비판 담론 형성에 관여했다.

1980년대에는 복학생협의회 회장을 맡아 김대중 전 대통령과 처음 대화를 나눴고, 1988년 평화민주당 공천을 받아 13대 국회에 입성하며 본격적인 정치인의 길에 들어섰다. 이후 5선 국회의원을 지내며 민주당계 핵심 정치인으로 자리 잡았다.

고인은 김대중·노무현·문재인·이재명 대통령으로 이어지는 민주 진영 집권 과정 전반에 깊숙이 관여한 전략가로 평가받는다. 1997년 김대중 대통령 당선 과정에서는 선거 전략을 맡았고, 집권 이후에는 교육부 장관에 임명돼 대입 제도 개편과 전교조 합법화 등을 추진했다. 이 시기 '이해찬 세대'라는 말이 등장할 만큼 교육 정책에 큰 흔적을 남겼다.

노무현 정부에서는 국무총리를 지내며 강한 책임성과 직설적인 화법으로 주목받았다. 행정수도 이전 위헌 결정 이후 정국을 관리하는 과정에서도 핵심 역할을 맡았으며, 야당과의 거친 설전으로 '버럭 총리'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인 2018년에는 더불어민주당 대표로 선출돼 당 운영을 총괄했다. 재임 기간 '시스템 공천'과 당원 참여 확대를 강조하며 2020년 총선에서 민주당의 압승을 이끌었다. 전 당원 온라인 투표 시스템 도입 등 당 조직의 구조적 변화를 이끈 것도 이 시기의 성과로 꼽힌다.

고인의 정치 인생 후반부에서 가장 중요했던 것은 이재명 대통령과의 인연이었다. 이 대통령은 성남시장 시절부터 고인을 정치적 멘토로 삼았고, 고인은 당내 비주류였던 이 대통령을 공개적으로 옹호하며 정치적 기반 형성에 힘을 보탰다. 이재명 정부 출범 역시 고인의 마지막 정치적 프로젝트로 불린다.

이 수석부의장은 현역 정치 일선에서는 물러났지만,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으로 활동하며 대북·통일 관련 자문 역할을 수행해 왔다.

민주화 이후 민주 진영의 주요 국면마다 영향력을 행사해 온 상징적 인물이 역사의 무대에서 퇴장하게 됐다.

안소현 기자 ashright@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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