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돈로 독트린’, 美 핵심 이익지역 아닌 이란에서 발 뺄 것
美, ‘그랜드 딜’ 호기… 핵협상·미사일사거리 제한카드 꺼낼 것
‘망명’ 팔레비 왕세자, 이란 내 지지세력 없어… 차기 지도자 못 된다
러시아·中 영향력 확대 신중, 이란을 ‘소프트 밸런싱’ 지렛대 활용
중동, 방산 원전 등 韓과 협력 원해… 원유수입 전략적 사고 필요
[]에게 고견을 듣는다
백승훈 한국외국어대 중동연구소 전임연구원
리알화 가치의 급락에 따른 상인들의 시위에서 촉발된 이란의 대규모 유혈 시위 사태가 어떻게 끝날지 초미의 관심사다. 이란 당국의 무력 진압에 따른 사망자수도 1만명을 넘어섰다는 보도도 나온다.
이에 대해 중동 전문가인 백승훈(44) 한국외국어대 중동연구소 전임 연구원은 22일 서울 서대문구 디지털타임스 회의실에거 가진 인터뷰에서 “이란 정부가 시위 진압에 성공한 것으로 판단된다”며 “이란 지도부와 군부내에서도 균열 조짐이 없고 트럼프도 베네수엘라 마두로 대통령처럼 이란의 최고지도자 하메네이 강제 축출에 나서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이어 “이란내에 현재의 집단지도체제를 대신할 정치적 대안 세력이 없다”며 “미국에서 50년 가까이 생활해 이란내에 지지세력이 없는 레자 팔레비 왕세자가 이란의 차기 지도자는 못 될 것”이라고 했다.
백 연구원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돈로 독트린’을 통해 중동과 유럽의 문제는 더이상 미국의 문제 아니다고 선언한 상태”라며 “이란을 향해 강도높게 군사적 개입을 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밝혔다. 다만 이란 정부가 궁지에 몰린 상황을 활용해 핵협상과 이란의 미사일 사거리 제한 카드를 꺼내들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트럼프 입장에선 이란과 ‘그랜드 바게닝 딜’을 할 호기라는 것이다. 또 러시아와 중국은 이란을 ‘소프트 밸런싱’(연성 균형) 지렛대로 활용해왔다며 이란내 영향력 확대에는 신중을 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으로 하마스와 헤즈볼라 등 ‘저항의 축’이 무너져 복구가 쉽지 않을 것이라며, 트럼프 정부가 추진하는 가자 지구 평화 구축을 위한 3단계 협상은 타결되기 쉽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백 연구원은 “중동은 한국을 핵심파트너로 평가하고 방산 바이오의료 원전 등에서 협력 확대를 간절히 원하고 있다”며 호루무즈 해협 봉쇄 리스크로 중동으로부터의 원유 수입을 줄이는 에너지 전략은 재고가 필요하다고 덧붙었다.
백 연구원은 서울 경문고와 한국외국어대 아랍어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국제지역대학원에서 공부한 뒤 외교부 산하 국립외교안보연구원에서 연구원으로 재직했다. 이후 영국 더럼대에서 국제관계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한국외대 중동연구소에서 전임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으며 법무부 난민위원회 자문위원, 한국중동학회와 한국이슬람학회 상임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대담 = 강현철 논설실장
- 최근 이란 내에서 대규모 시위에 따른 유혈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이런 사태가 발생한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입니까?
“경제 침체입니다. 경제 시위가 반체제 시위로 확장된 겁니다. 정상 국가였으면 기업이나 독점 카르텔에 불만이 갔을 겁니다. 하지만 이란은 ‘저항 경제’, 그러니까 1979년 이후 미국의 경제 제재를 받으면서 권위주의 정권의 국가 주도 경제체제가 됐습니다. 이러니 경제 실패의 모든 책임이 정권으로 향하게 되는 구조입니다. 그래서 많은 독재국가처럼 경제 시위로 시작됐지만 결국은 반체제 시위로 확산이 된 것이죠. 1979년 경제 제재이후 경제가 좋지 않았는데 지금 대규모 시위가 발발한 것은 트럼프 행정부의 압박 효과가 큽니다. 트럼프 행정부는 2025년 2기 집권을 하고 나서 ‘맥시멈 프레셔’(Maximum Pressure) 즉 최대 압박 전략을 썼습니다. 트럼프 2기 초기 리알화 환율은 달러당 70만~80만 리알 사이였습니다. 그런데 이란에 대한 경제 제재 수위가 올라가면서 지난 12월에는 달러당 142만 리알까지 올라가니 이란 경제가 버티지 못하는 거죠. 이번 시위도 테헤란의 그랜드 바자르 시장에서 상인들이 이런 환율에선 물건을 사고 팔 수 없다며 점포 폐쇄 시위를 한 게 단초입니다. 리알화 가치가 추락하고 달러가 마르면서 물건을 사고 팔 수 없는 상황이 된거죠. 테헤란에서도 이럴진대 다른 지역은 보나마나 한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이 시위를 급진적이고 전국적으로 만들었습니다. 지난해 12월 이란의 물가 상승률이 42.5%를 찍었습니다. 통화 가치가 떨어져 똑같은 월급을 받아도 실제 구매력은 절반에 그친데다 물가도 42.5% 올라 이중고에 몰린 상황에서 상인들도 물건 유통을 할 수 없게 되자 경제 시위가 일어났고, 그게 순식간에 반체제·반정부 시위로 이어진 겁니다.”
- 이란에선 2022년 9월 ‘히잡 시위’가 발생한 적이 있습니다. 과거 사례와 비교했을 때 이번 시위는 다른 점이 있습니까?
“이란에선 1999년, 2009년, 2019년, 2022년 등 과거 네차례의 큰 시위가 있었습니다. 1999년 정부에 대해 쓴소리하는 진보 언론을 폐쇄해 버렸습니다. 그러자 식자층이나 대학생들이 들고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먹고사니즘의 문제가 아니어서 전국으로 확산되진 않았습니다. 2009년 시위는 ‘녹색 혁명’이라고 해서 부정선거에 대한 비판이었습니다. 당시 개혁파였던 무사비안과 극보수 성향의 아흐마디 네자디 대통령이 붙었는데 부정 선거가 있다고 해서 큰 시위가 있었죠. 이때는 진영론이었습니다.개혁파 세력들이 들고 난 것이라 찻잔속의 태풍이 될 수밖에 없었죠. 2019년은 에너지 연료 가격 상승으로 인한 시위였습니다. 당시 1500명의 사망자가 나왔는데 이란이 석유가 나오는 나라였기 때문에 시위가 사그라들었습니다. 2022년 마흐사 아미니 사건, 히잡 시위는 여성 인권과 관련한 문제였습니다. 이도 여성과 진보 세력의 의제였죠. 하지만 최근의 시위는 먹고사니즘의 문제이기 때문에 폭발력이 강했고, 각 계층이 모두 참여하면서 걷잡을 수 없이 커지게 된 겁니다. 9개 주, 17개 주, 21개 주 이렇게 시위가 확산되다가 이란 전체 31개 주 197개 도시 606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습니다. 이란 정부도 너무 놀라 실탄 사용 진압과 ‘디지털 블랙아웃’ 조치를 취했습니다. 이란 정부가 종종 인터넷이나 통신망을 끊었던 적은 있지만 이런 식으로 오랜 기간 동안 아예 블랙아웃을 만든 사례는 없었습니다.이란 정부도 시위를 아주 심각하게 보고 있다는 뜻입니다.”
- 시위 사망자가 5000명이다 1만명을 훨씬 넘어섰다는 얘기가 나오는데 이란 지도부가 지금처럼 강경 일변도 대응을 지속할 것으로 보십니까?
“당근책이 없었던 건 아닙니다. 보조금을 지급하고 국민 고충 커뮤니티를 열어 얘기를 듣겠다고 했죠. 그런데 이건 미봉책입니다. 미국의 경제 제재가 계속되는 한 ‘언 발에 오줌누기’ 밖에 될 수 없죠. 지금 시위는 치킨게임 양상이 돼버렸습니다. 전국적으로 시위가 이렇게 규합된 것은 역사상 없었던 일입니다. 시위대 입장에서도 이번 기회를 놓치면 끝이다라고 생각하니 극렬하게 결집한 겁니다. 이란 정부 입장에서도 여기서 밀리면 진짜 심각해질 수도 있겠다며 강경 대응을 한거죠. 그래서 이란 정부는 시위대에 대해 ‘모하레베’, 즉 ‘신에 대한 도전’임을 선언했습니다. 이란은 신정 민주주의 체제입니다. 신성을 모독했다는 건 내란죄거든요. 내란죄로 규정하니까 실탄을 지급해 강경 진압한 겁니다. 강 대 강 대립 상황이 됐던 거죠. 가슴 아픈 일이지만 이란 정부가 성공적으로 진압은 한 걸로 보입니다. 미국 또한 더 이상 개입하려는 의지가 없습니다. 트럼프 행정부가 이란 정부의 시위 참여자 사형 집행 유예를 이유로 개입을 주저하고 있지만 집행만 느려진거지 어느 순간 집행이 될 겁니다. 아미니 사건 때도 똑같았거든요.”
- 미국이 어떤 입장을 취하는지가 중동 정세의 관건으로 보입니다. 미국의 대(對) 중동 외교의 목표와 이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은 무엇입니까?
“미국은 지금 발을 빼고 있습니다. 이게 가장 큰 문제입니다. ‘돈로 독트린’(Donroe Doctrine)이라고 하죠. 웨스턴 헤미스피어(Western Hemisphere), 미국의 주 지역인 서방권은 남미를 포함한 아메리카 대륙이라고 선언하지 않습니까? 북미 대륙과 더 붙어 있는 그린란드도 갖겠다고 하고. 트럼프 행정부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이름에 아메리카 중심주의 외교인 먼로 독트린을 합친 ‘돈로 독트린’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이란이나 중동, 그리고 유럽의 문제는 우리의 문제가 이젠 아니다고 선언한 겁니다. 트럼프 입장에선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도 상호방위조약인데 왜 미국만 다 퍼주고,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전쟁에도 유럽은 뭐했느냐, 미국이 무기를 대주고 하는데 유럽은 방위비 부담금도 안 올린다고 하니 미국이 호구인가라는 겁니다. 이런 관계로는 더 이상 갈 수 없으며, 그럴 바에는 미국이 그린란드 갖고 국익을 추구하겠다는 얘기죠. 이런 틀로 봤을 때 중동과 이란은 핵심 이익 지역이 아닙니다. 트럼프 행정부 입장에서는 개입할 유인이 별로 없거든요. 국내 언론에선 미국이 이란에 개입한다는 보도가 많은데 미국이 중동에 개입할 땐 항상 항모전단 2개나 3개를 배치합니다. 이번에는 나중에 아브라함 링컨 항모를 보냈죠. 그런데 중동에 도착하기까지 5일 내지 7일 걸린다고 했는데 이는 진정성 측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개입하려고 했느냐에 퀘스천 마크가 붙거든요. 또한 이란내에서 사형이나 인권 침해가 있기 때문에 개입한다고 했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인권을 그렇게 중시했느냐에 대해서도 회의적입니다. 미국의 군 자산을 써가면서 인권 문제 때문에 개입한다, 그건 아닙니다. 개입하려면 트럼프 행정부가 생각하는 이익에 맞아야 됩니다. 미국이 이란의 최고지도자 하메네이를 베네수엘라의 마두로 대통령 식으로 축출한다면 오히려 이란과 중동 지역의 불확실성은 커집니다. 게다가 미국의 개입에 이란이 강경 대응하게 되면 호르무즈 해협이 막히고 그러면 유가가 올라가게 됩니다. 그래서 사우디 아라비아, UAE, 카타르 등 걸프 국가들이 개입해 사태를 확산시키지 말아달라고 얘기한 겁니다. 이런 맥락을 보면 트럼프 입장에서도 개입해 얻을 수 있는 게 별로 없습니다. 이란과 이스라엘이 12일 전쟁을 했던 작년 6월 을 한번 복기해볼까요. 당시 미국이 B2 전략폭격기와 한번도 실전에 사용하지 않은 벙커버스터를 12기나 사용하면서 이스라엘을 지원해줬죠. 그때 미국내 마가(MAGA) 진영내에서도 트럼프가 이란 사태에 개입하면 지지를 안할 것이라는 목소리가 나왔습니다. 집토끼 내에서도 지지가 흔들리니 이스라엘은 계속 전쟁을 하고 싶어했지만 트럼프가 중단한 겁니다. 그런 트럼프입니다. 그래서 지금 이란에 개입해 불확실성을 키울 가능성이 낮다고 보는 것이죠. 트럼프가 원하는 것은 이란이 궁지에 몰렸을 때 이란 정부를 압박해 미국 입장에서 가장 좋은 핵 협상 플러스 미사일 사정거리 제한 약속을 받는 겁니다. 이란이 갖고 있는 비대칭 미사일 전력은 미국 입장에서 가장 큰 위협입니다. 이스라엘이나 중동에 배치돼 있는 미군 부대를 직접 타격할 수 있는 이란의 미사일 사정 거리를 줄이고 미국이 감시할 수 있게 하면 트럼프 입장에서는 좋은 일인 겁니다. 트럼프는 장기적인 이익을 그렇게 중시하는 사람은 아닙니다.베네수엘라 마두로 대통령을 미국의 국익에 맞게 처단하고, 이란을 압박해 핵 협상 및 미사일 협상을 잘 마무리한 후 11월 중간선거로 가길 원하겠죠.”
- 트럼프 대통령이 베네수엘라처럼 이란 지도부의 교체를 추진할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보시는거군요.
“하메네이를 축출한다고 해 마두로처럼 정권 교체가 되지 않습니다. 이란은 집단지도체제라고 보시면 됩니다. 이란 정부를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몇가지 변수가 충족돼야 됩니다. 하나는 치안을 담당하는 경찰 바시지나 군부 혁명수비대의 이탈입니다. 공군 4성 장군 출신인 이집트 무바라크 전 대통령이 군부를 잘 틀어쥐고 있었는데 군부가 이탈하면서 ‘아랍의 봄’이 시작됐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란의 치안을 담당하는 정부와 군부가 똘똘 뭉쳤습니다. 밀리면 죽는다는 걸 아는 거죠. 둘째는 기득권 세력인 엘리트들의 균열입니다. 군부뿐만 아니라 슈프림 리더 그러니까 최고 지도자와 성직자 등도 균열이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점포를 폐쇄한 대상인들도 사실 혁명수비대와 연결돼 있죠. 물건을 떼려면 국경을 열어주는 게 혁명수비대거든요. 경제 위기는 있지만 이 두 가지 조건이 굳건한 상태에서 이란이 체제변화가 있으려면 외부적인 요소가 필요합니다. 하나는 미국의 강력한 압박, 그다음에 수권 능력이 있는 야권 세력입니다. 안티 태제, 구호만으로서는 정권 교체가 일어날 수 없습니다. 구호를 실현할 수 있는 수권 능력을 가진 저항 세력 그리고 그 구심점이 될 수 있는 리더가 필요하거든요.이란에선 이게 전무한 상태입니다. 레자 팔레비의 소환이 얘기되지만 가능성이 희박합니다. 일제 36년 후 대한민국이 건립되는데 영친왕 후손을 데려와 대통령으로 삼자라고 하면 현실성이 있겠습니까. 팔레비 왕의 마지막 손자, 미국의 망명해 50년동안 지낸 이란 내부에서 어떠한 능력도 없는 사람을 내세운다고 국민들이 결집할까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이란은 집단지도체제이기 때문에 마두로처럼 한 사람 축출하고 협상을 통해 정권을 교체하는 시나리오는 쉽지 않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 중국과 러시아가 중동 내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는 상황이 이란의 전략적 선택지를 넓혀준다고 평가하십니까?
“한계가 많습니다. 미국이 중동에서 발을 빼면 권력의 공백은 다른 권력으로 채워질 수밖에 없다는 하나의 상식이긴 하지만 이란 정세에선 좀 다릅니다. 중국과 러시아는 이란을 대할 때 상당히 조심합니다. 미국의 눈치를 많이 보는 겁니다. 군사 협력도 하고 전략적 동반자라고 해도 러시아는 이란과 상호방위조약은 절대 불가라고 얘기합니다. 조약을 맺었다가 미국에 같이 끌려 들어가면 문제가 되는 걸 아는 거죠, 그래서 항상 적당히 거리를 두고 ‘이란 지렛대’로 미국을 압박합니다. 이를 ‘소프트 밸런싱’, 그러니까 연성 균형이라고 합니다. 러시아는 모호하게 이란이라는 레버리지(지렛대)를 활용해 미국과 줄다리기를 하면서 협상력을 키운 거죠. 따라서 이란이 중국과 러시아과 케이스 바이 케이스, 어젠다 바이 어젠다별로는 협력할 수 있겠지만 과거의 냉전 체제처럼 세 나라가 하나의 축을 이룰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현 상황에서는 맞지 않다고 봅니다. 중국도 영향력 확대를 원하지 않습니다. 중국이 이란과 결속하게 되면 사우디아라비아 등 이란과 사이가 좋지 않은 다른 국가들이 문제될 수 있습니다. 지금 미국이 이란에 또다시 ‘세컨더리 보이콧’(2차 제재), 즉 이란과 거래하는 나라들엔 25% 관세를 물리겠다고 했는데 이는 중국 견제거든요. 이란이 하루 180만 배럴에서 200만 배럴의 원유를 생산하는데 그중 80%를 중국이 사갑니다. 25% 관세 부과가 중국을 겨냥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 이란 사태가 ‘저항의 축’(Axis of Resistance)으로 불리는 헤즈볼라, 후티 반군 등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요?
“어마무시하게 미칩니다. 가자 전쟁 그러니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전쟁에서 이란이 너무 손해를 많이 봤습니다. 나스랄라를 비롯한 헤즈볼라의 고위 지도부 층들은 다 형해화됐죠. ‘삐삐 폭탄’ 사건으로 중간 간부 장교들도 다 죽었습니다. 하마스 또한 궤멸된 상태죠. 소위 이란이 사용했던 ‘7면 전쟁’의 참여자 중 가장 힘이 셌던 헤즈볼라와 하마스가 다 무너진 겁니다. 시리아도 친시아파 이란 쪽 세력이었던 아사드가 지금 러시아로 망명 간 상태입니다. 저항의 축 세력 자체가 무너진 겁니다. 게다가 이란의 경제 위기가 계속되면 국민들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우리도 먹고 살지 못하는데 왜 돈을 하마스 주느냐 이러니 이란의 영향력은 상당히 약해질 수밖에 없는 수순입니다. 물론 이란이 아직 건재한 후티 반군이나 PIJ라는 팔레스타인 이슬라믹 자하드 저항 세력 등 대리전 세력을 복원하려고는 하겠죠, 이란이 가진 유일한 카드니까. 그러나 가자 전쟁 이전 수준까지 복원하기에는 상당 수준의 시간이 걸릴 겁니다.”
- 이란 핵합의(JCPOA) 복원 가능성이 사실상 희박해진 현 시점에서, 국제사회가 취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은 무엇입니까?
“저는 희박해졌다고는 보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트럼프 입장에서는 협상하기 좋은 적기가 온 거죠. 2015년에 이란과 미국·영국·프랑스·중국·러시아·독일 등 주요 6개국 간 핵 합의가 이루어지고 2018년에 해제됐던 제재를 복원한 ‘스냅 백’을 하지 않았습니까? 당시 트럼프 1기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13가지 조건을 내걸었습니다. 첫째 미사일 관련 협상, 둘째 헤즈볼라나 하마스 등에 대한 지원 금지, 셋째 미국인 인질 석방, 넷째 이스라엘에 대한 공작 금지 등을 내걸고 그랜드 바게닝 형식으로 협상을 했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헤즈볼라 등 대항 세력은 다 없어졌습니다. 이스라엘에 대한 공작 또한 사라졌구요. 유일하게 미사일 사정거리 제한이 남았는데 이란의 미사일 역량도 이스라엘과 전쟁을 하면서 많이 소진했습니다. 이란 경제 또한 트럼프 행정부의 ‘맥시멈 프레셔’ 전략이 성공해 거의 파탄 나는 수준이지 않습니까? 트럼프 입장에서는 ‘그랜드 바게닝 딜’을 하기 좋은 상황이 되는 거죠. 오히려 대타결이 될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졌습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두 국가론 합의처럼 오바마 행정부가 만들었던 ‘JCPOA’보다 더 좋은 핵 합의는 없습니다. 이란이 쓸 수 있는 카드가 다 떨어진 지금 우리가 모르는 깜짝 타결안이 만들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 됐습니다. 이란 입장에선 미국의 경제 제재 해제가 간절하고, 트럼프는 중간선거 승리를 위해서라도 협상이 타결에 이를 수 있는 상황이 된 것이죠.”
- 이란과 이스라엘 간 군사적 긴장 혹은 ‘그림자 전쟁’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이번 이란 사태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습니까?
“흐뭇하게 보고 있을 겁니다, 주적이 궁지에 몰렸으니까. 그런데 이스라엘이 개입을 안하는 건 두 가지 측면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개입하는 순간 이란 시위대의 싸움 대상이 이란 정부가 아닌 이스라엘이 될 것이라는 걸 압니다. 두 번째는 이란내의 대체 세력이 모호합니다. 하메네이를 없앤다고 해서, 하메네이 둘째 아들이 슈프림 리더(최고 지도자)가 되든 아니면 아야톨라 호메이니의 외손자가 다시 슈프림 리더가 되든 대통령만 바뀐다고 반이스라엘 정책이 바뀔 구도가 아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은 그냥 지켜보고 있는 거죠.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이란 정권이 궁지에 몰려 미사일이 확실히 통제 안에 들어오면 성공이라고 볼 겁니다. 이스라엘은 이란이 대리전 세력을 복원하는 것을 막는 데 집중하겠죠. 네타냐후 총리가 전쟁을 일으켜 하메네이를 축출한다 한들 친이스라엘 성향의 정권이 들어설 거라는 보장이 돼 있지가 않거든요.”
-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전쟁은 아직 완전히 끝나지 않았습니다. 트럼프의 휴전 노력이 성과를 거둬 평화를 되찾을 수 있겠습니까?
“쉽지는 않죠. 트럼프 행정부의 가자 평화안은 3단계입니다. 1단계는 즉각 휴전을 하고 인질과 포로를 교환하는 거예요. 2단계는 트럼프 대통령 주도로 설립된 ‘보드 오브 피스’(Board of Peace, 평화위원회)‘가 만든 임시 부대가 가자에 들어가 하마스를 완전 무장 해제하고 동시에 이스라엘은 군을 철수하는 겁니다. 3단계는 임시 정부가 자리를 잡고 국가 재건을 하는 건데 이게 치킨 게임이 또 됐습니다. 하마스 입장에서는 우리가 무기를 다 내려놓으면 이스라엘은 약속을 안 지킬 것이라고 하고, 이스라엘은 하마스가 무기를 놓기전까지는 철군을 안한다는 겁니다. 레바논에서 동명부대를 운용했던 한국군도 임시 정부에 참여해 하마스의 무장 해제를 관리 감독해줬으면 좋겠다는 얘기도 나오는데 쉽지 않을 겁니다. 가자 지구에 팔레스타인 정권이 구성될 수 있을 것인가도 또하나의 퀘스천 마크예요. 트럼프 행정부나 이스라엘이 원하는 지도자들은 온건 보수인데, ’저항 서사‘가 없는 미국에서 활동하던 사람들이 아니면 과거 팔레스타인 정부에 있었던 사람들이 수권 능력을 보여주면서 안정화를 할 수 있을까가 의문입니다. 서안 지구에 있는 아바스 행정부가 가자 지구를 통치하는 것에도 팔레스타인 인들에겐 반감이 있습니다. 트럼프의 평화안이 잘 될 것인가라는 데 대해선 회의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 향후 1~2년 내 중동 지역에서 ‘블랙 스완(예상치 못한 거대 사건)’이 발생한다면, 어떤 시나리오가 가장 가능성이 높다고 보십니까?
“전 이란일 것 같아요. 경제 위기가 임계점에 도달했다는 건 다 알았습니다. 엄청난 무력으로 찍어 눌렀고 트럼프 행정부도 개입에 큰 이득이 없어 한발 물러서면서 소요 사태는 잡힐 겁니다. 그렇더라고 경제 위기가 사라진 건 아닙니다. 중국이 유일한 생명줄인데 중국도 미국이 25% 관세를 매기면 이란내 폭탄이 터질 수도 있습니다.”
- 여전히 이런이 화약고일 가능성이 크다는 말씀이시군요. 호르무즈 해협의 긴장이 고조될 때마다 글로벌 에너지 시장이 출렁입니다. 현재 이 지역의 지정학적 리스크는 어느 정도로 평가하십니까?
“원유의 4분의 1, 25%가 호르무즈 해협으로 나오는데 병목 지대입니다. 봉쇄하면 해양 원유 물류의 25%가 막힐 수밖에 없는 거죠. 25% 중 80%가 동아시아 쪽, 그러니까 한국 일본 중국으로 갑니다. 우리나라는 전체 원유 중 62%를 중동에서 수입합니다. 한때 85%였다가 호르무즈 해협 위협이 있으니 다변화한다며 비중을 낮췄죠. 그런데 일본은 90%를 중동에서 수입합니다. 여기서 생각해 볼 점이 있습니다. 일본은 리스크가 있는데도 왜 중동에서 원유를 수입할까요?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등은 국가 재정의 85%를 석유를 판 돈에 의존합니다. 그러면 이들 중동 국가에 대한 레버리지(영향력)는 62%인 한국이 높겠습니까 아니면 90%를 사주는 일본이 높겠습니까? 우리로선 중동과 더 밀착해 얻어낼 건 얻어내야 하는데 원유 수입선 다변화를 택한 셈입니다. 저는 에너지 수급 다변화도 중요하지만 정책 우선순위(프레퍼런스)를 먼저 따져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중동에 더 밀착해 원전을 따낸다든지 방산을 따내겠다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호르무즈 병목 현상으로 위험하니 원유 수입을 다변화한다는 건 하수의 정책입니다.”
- 중동 정세의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취해야 할 ‘중동 외교 전략’은 무엇입니까?
“우리만의 이니셔티브를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예전엔 우리 중동 정책은 미국이 깔아놓은 플랫폼에서 일본이 어떻게 하는지를 보고 틈새시장에 들어가면 된다라고 했습니다. 이제는 그렇게 하면 안됩니다. 미국과의 MASGA 협상으로 일본보다 더 좋은 조선 프로젝트를 미국서 따냈던 것처럼 한국의 역량이 많이 올라왔습니다. UAE나 사우디아라비아가 우리를 끌어당기고 있는 상황이죠. UAE 의전 담당은 왕족이 각각 맡는데 우리나라를 일본 미국 중국 의전 담당을 하는 왕이 맡고 있습니다. 이는 한국에서 정권 교체가 일어나도 진보든 보수든 한국은 내 핵심 파트너로 끌고 가겠다는 뜻입니다. 원전도 그렇고 K콘텐츠도 그렇고 바이오 의료도, 방산도 그렇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원유만 보고 호르무즈가 막혀 유가가 오를 수 있는 안전 대책으로 딴 데서 원유를 수입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가진 역량을 잘 활용해 국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대중동 이니셔티브가 있어야 됩니다. 이재명 정부가 이집트에서 ‘샤인(SHINE) 이니셔티브’를 발표했는데 디테일이 약합니다. 중동 국가내에 생태계를 만들어주면서 국익을 극대화하는 방법이 필요합니다.”
- 중동 국가로의 방산 수출이 늘고 있습니다. 이런 흐름이 이어질까요?
“당연히 이어질 겁니다. 중동은 친미 국가이고 미군 무기체계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미국과 SOFA(주둔군지위협정)와 상호방위조약을 맺고 매년 연합 군사훈련을 합니다. 단순히 같은 무기를 쓰는 게 아니라 함께 테스트하고 실제 운용하고 있는 거죠. 한국은 미 무기체제와 상호 보완하며 쓸 수 있고, 운용 노하우가 있는데다 메인터넌스 그러니까 전차, 자주포 등 무기 유지 보수에도 경쟁력이 있습니다. 사우디나 UAE, 이집트 입장에서는 미군 무기와 호환도 잘 되고 부품과 탄약도 바로 공급받을 수 있고 또 이걸 현지에 공장을 설립해 생산한다고 하니 좋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 면에서 중동에서 한국 방산의 미래는 밝다고 보고 있습니다.”
- 중동 전문가로서, 중동의 복잡한 종교·정치적 갈등을 이해할 때 가장 흔히 하는 오해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중동도 국익 극대화를 위해 합리적 선택을 하는 국가라는 점입니다. 히잡, 샤리아법 등 종교나 문화적 측면에서 괴리감이나 갈등 요소가 있을 수 있지만 전체적인 국가 운영은 우리나라와 똑같이 국익 극대화 그리고 생존을 위해 하고 있다라는 사실을 항상 염두에 둬야 합니다. 우리도 이를 감안해 중동 국가들과 협력과 교류를 이어가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할랄 인증’은 한국이슬람교(KMF)라는 재단에 95%를 합니다. 이곳이 사우디아라비아 및 유엔과 교차 인증도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되면 사우디아라비아가 아프리카 등지에 할랄 음식으로 진출할 때 우리 기업들이 그 생태계에서 역할을 할 수 있게 됩니다. 결국은 중동 국가들도 지금 생존을 위해 산업 다각화를 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측면을 파고들어야 합니다.”
강현철 논설실장 hckang@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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