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환 KAIST 경영공학부 교수

누구든 살면서 한 번쯤은 “내가 태어나는 나라를 선택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하는 상상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인종, 성별, 외모와 같은 생득적 특성이야 자연의 섭리라 쳐도, 국가는 순전히 인위적인 산물임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국적이 부여되기 때문이다.

물론 귀화나 이중국적이라는 선택지가 있지만 이는 극소수에게 해당하는 예외적인 경로다. 인간 사회에서 개인을 규정짓는 가장 강력한 틀인 ‘국가’에 대한 반발은 소설 홍길동전에 나오는 ‘율도국’처럼 현실 탈피와 유토피아를 향한 열망을 끊임없이 자극해 왔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 보면 강력한 국가주의(statism)를 기반으로 가열되는 패권 전쟁은 내 뜻에 맞는 국가를 동경할 여유를 좀처럼 주지 않았다. 오히려 힘 있는 나라에 속하거나 최소한 빌붙기라도 하지 않으면 생존조차 담보할 수 없다는 위기감이 고조되기도 한다.

하지만 20세기 후반부터 급속히 확산된 인터넷과 블록체인 등 디지털 기술은 특정 영토에서 출생했다는 물리적 사실이 아니라, 태어나 살아가며 정립한 가치와 신념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시공간의 제약을 넘어 결집할 수 있는 토대를 구축해왔다. 미국 가상화폐 거래소 코인베이스의 전 CTO(최고기술책임자) 발라지 스리니바산이 제시한 ‘네트워크 국가’(Network State) 개념이 대표적이다.

한때 테크 엘리트들의 공허한 정치 철학 유희쯤으로 치부되기도 했던 이 개념은, 이제 막대한 자본과 인재를 빨아들이며 국제 사회에 실질적인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네트워크 국가’란 집단 행동 능력을 갖춘 고도의 정렬된 온라인 커뮤니티로서, 예컨대 크라우드펀딩으로 물리적 영토를 확보하고 나아가 기존 국가들로부터 외교적 인정을 받는 것까지도 목표로 삼는 새로운 형태의 공동체다.

이미 실리콘밸리의 거물들인 피터 틸, 샘 앨트먼 등이 초기 투자자로 참여하며 5억달러를 훌쩍 넘는 자금을 확보한 ‘프락시스’(Praxis)는 이러한 흐름의 선봉에 서있다. 이들은 미래 도시의 영토와 인프라 가치를 디지털 자산으로 변환해 유동성을 확보하고 새로운 자치 도시 건설을 추진한다.

스리니바산이 주도하는 ‘네트워크 스쿨’ 프로젝트에서는 월 1500달러부터 시작하는 회비를 내는 테크엘리트들이 전 세계를 이동하며 공동 생활을 한다. 이들은 원격으로 본업을 이어가는 동시에, 국가 시스템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새로운 사회 구조를 구축하는 법을 학습하고 실천한다.

특히 빅테크 성장의 터전 가운데 하나였던 샌프란시스코가 순식간에 노숙과 범죄의 도시로 전락한 현실은 이들에게 강한 동기 부여가 되었을 것이다. 국가라는 울타리 안에서 미래를 설계하기 어려워진 시대, 민주주의의 보루라 믿었던 미국 정부조차 권위주의적 행태로 자유와 질서를 흔드는 암담한 현실로부터 ‘탈출’하겠다는 이들의 의지는 일견 공감을 산다.

그러나 우려의 시선도 만만치 않다. 암울한 현실과 답답한 규제를 벗어난다는 명분 아래 추구하는 ‘활력주의’(vitalism)가 자칫 기득권층만을 위한 폐쇄적 커뮤니티나 조세 피난처로 귀결될 수도 있다. 특히 이들이 데이터센터 냉각이나 핵심 광물 자원 확보를 위해 특정 지역의 부지 확보에까지 나서는 모습은, 결국 기존 지배세력을 포함한 거대한 이너 서클이 자신들만의 영리한 이익 공동체를 만들려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자아낸다.

‘네트워크 국가’가 인류의 새로운 대안일지 아니면 좋은 빛깔로 위장한 신기루일지는 단언하기 이르지만, 분명한 사실은 기존 시스템을 옹호하는 세력들이 국가주의를 앞세워 정략적 이익에 몰두하고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상황에 대한 대중의 반발이 임계점에 달했다는 점이다.

지난 2008년 설립된 ‘시스테딩 연구소’(Seasteading Institute)처럼 공해상에 독립적 거주지를 만들려는 시도는 이제 더 이상 공상에 머물지 않는다. 알고 보면 ‘시스테딩’이라는 용어는 ‘바다’(sea)와 ‘자급자족 정착지’(homesteading)가 결합되어 일찍이 1960년대에 등장했고, 유례없는 기술과 자본이라는 지렛대를 만나 그 개념이 이제 본격적으로 구현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와 같은 실험들은 전통적인 국가 패러다임을 벗어나는 현실적 대안들을 속속 등장시킬 것이다. 소정의 비용만 지불하면 한 나라의 법·행정 인프라를 이용하고 유럽연합(EU) 내 무관세 혜택까지 누릴 수 있게 해주는 에스토니아의 ‘전자시민권’(e-Residency) 제도처럼, 영토를 넘어선 국가 기능의 수출이 가능함을 보여주는 사례가 이미 있지 않은가.

중앙집권적 관료제의 비효율과 부조리가 만연하고 국가 구성원인 개인이나 기업이 세금은 점점 더 내면서도 정치나 행정의 효능감보다는 (규제와 불공정에 따른) 좌절감을 더 크게 인식할수록 ‘서비스로서의 국가’(state as a service)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는 시스템을 찾아 (세금 대신 이용료를 내고) ‘구독’하려는 인류의 욕구는 증폭될 것이다.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