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숙소는 안 돼…숙소 잘 챙겨보라”
사후 활용 계획은 아직
“우리야 아무데서나 자도 되지만 상대 정상은 그렇게 할 수 없다. 시설을 보완할 수 있으면 하든지 하자”
이재명 대통령의 이 한마디가 다시금 ‘즉흥 지시 정치’ 논란을 불러오고 있다. 일본 총리를 고향 안동으로 초청하는 셔틀외교 구상을 언급하는 과정에서 나온 발언이지만, 지역에는 곧바로 정책 신호로 읽힐 수밖에 없어서다.
이 대통령은 20일 국무회의에서 일본과의 셔틀 외교 일환으로 안동 방문을 검토 중이라며 “한일 정상회담이 급박하게 진행됐는데 준비를 아주 잘했다”며 외교부를 칭찬했다. 그러면서도 “일본 총리와 셔틀 외교 일환으로 안동을 가고 싶은데 회의장이나 숙소가 마땅치 않다”고 했다.
이에 조현 외교부 장관은 “그래서 대구에 들르고 안동에서 하는 것으로 (진행 중)”이라고 답했고, 권오을 보훈부 장관은 “안동에 숙소가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은 “그냥 숙소는 안 된다”며 “시설을 보완할 수 있으면 하든지 하자. 숙소를 잘 챙겨보라”고 했다. 외교적 예우 차원의 언급이었지만, ‘시설 보완’이라는 표현은 추가 투자 가능성을 열어두는 신호로 해석될 여지가 충분하다.
안동에는 이미 4성급 호텔과 한옥 숙소가 존재한다. 권 장관도 이를 설명했다. 그럼에도 정상회담을 이유로 별도의 고급 숙박·회의 시설을 새로 조성한다면, 이는 외교 이벤트를 명분으로 한 과잉 투자 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단발성 방문 이후 해당 시설을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한 구상은 현재로선 보이지 않는다.
이런 우려는 과거 사례를 떠올리면 더 선명해진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은 ‘성공적인 대회’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이후 강원도는 남은 경기장 관리에 매년 100억원에 육박하는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올림픽 유산 보존이라는 명분은 충분했지만, 사후 활용 계획이 뒷받침되지 못하면서 재정 부담은 고스란히 지방의 몫이 됐다. 국가적 행사 이후 남는 시설을 누가,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라는 질문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안동 역시 다르지 않다. 지속 가능한 사업 모델 없이 ‘정상 초청’이라는 이유로 숙박시설을 새로 짓는다면, 유지·관리 비용은 결국 지역사회가 떠안게 된다. 생중계된 국무회의를 보며 ‘알권리가 충족됐다’고 느끼는 국민은 많을지 몰라도, 재정 책임의 주체는 분명하지 않다.
최근 다른 사례도 비슷한 논란을 낳았다. 지난달 약 7조 8000억원 규모의 한국형 차기 이지스 구축함(KDDX) 사업자 선정 과정이 수의계약에서 경쟁입찰로 전환됐다. 이 대통령의 업무보고 발언 이후였다. 방사청은 이 대통령의 발언과 관련없다고 해명했지만 대통령의 말 한마디가 국가 시스템을 좌우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일부 제기되기도 했다.
물론 대통령의 발언은 정책 방향을 제시하는 정치적 행위다. 그러나 즉흥적 언급이 곧바로 행정 판단과 재정 결정으로 이어지는 인상을 준다면, 정책의 예측 가능성과 신뢰도는 흔들릴 수밖에 없다. 외교적 상징과 실질적 책임 사이에서 균형을 어떻게 잡을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안소현 기자(ashright@dt.co.kr)실시간 주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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