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순위 임대차 정보는 100% 개인정보라 집주인이 보여주지 않으면 확인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런데 공인중개사가 그 정보를 스스로 찾아내지 못했다고 법적 책임까지 지우면, 앞으로 누가 위험을 감수하고 다가구 주택 중개를 하겠어요."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서 공인중개사로 활동 중인 전명희 씨는 최근 인근 다가구주택 전세 중개를 포기했다.
정부의 전세사기 예방 강화 기조에 맞춰 집주인에게 확정일자 열람원과 동일 건물 안의 모든 임대차 계약서 제출을 요청하고, 이를 비교·검토해 중개대상물확인설명서에 기재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집주인이 자료 제출을 거부하면서 전씨는 중개를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전씨는 "세입자를 보호하려면 위험요인을 확인해야 하는데, 정작 확인할 방법이 없으면 차후 사고 시 중개사가 법적 책임을 떠안게 된다"며 "위험을 감수하면서 다가구주택을 중개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최근 대법원이 다가구주택 임대차 중개 과정에서 선순위 권리관계를 충분히 조사·설명하지 않은 공인중개사에게 주의의무 위반 책임이 있다고 판단함에 따라 다가구 중개를 둘러싼 혼란이 지속될 전망이다.
집주인이 자료 제출을 거부해 선순위 임대차 현황을 구두로만 안내했더라도, 실제 보증금 액수나 위험성을 구체적으로 확인·설명하지 않았다면 책임을 피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전세사기 피해를 막기 위해 중개사의 역할을 강화하겠다는 것인데, 현장에서는 현실을 외면한 판결이라는 반발이 나온다.
정부는 전세사기 사태 이후 전세금 반환보증 강화, 임대인 정보 제출 확대 등을 추진해 왔다.
하지만 정작 다가구주택의 핵심 위험요소인 선순위 임대차 정보는 여전히 사적 계약 영역에 머물러 있다.
다가구주택은 등기부등본만으로 건물 전체의 선순위 임대차 보증금 총액이나 계약 구조를 알 수 없다.
각 세대 임대차계약서는 임차인 개인정보에 해당해 제3자인 중개사가 임의로 열람할 수 없고, 임대인이 제공을 거부하면 확인 절차가 막히는 구조다.
전문가들은 전세보증금 미반환 문제를 근본적으로 줄이기 위해서는 임차인과 중개사 모두가 객관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위험을 판단할 수 있는 공적 정보 검증 체계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박합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는 "다가구주택은 임차인의 보증금 규모와 계약 시기, 전입 여부 등 핵심 정보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채 임대차 계약이 이뤄질 경우 과거 전세사기 문제가 그대로 재연될 수 있다"며 "이에 따른 정보를 임대인에게 명확히 제출하도록 요구할 수 있는 제도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보연 세종대 부동산AI학과 교수는 "신규 임차인의 보증금을 안전하게 보호하려면 등기부등본에 표시되는 담보권 정보만으로는 부족하고, 특히 다가구 주택에서 건물 전체를 기준으로 한 선순위 임대차 보증금 총액 정보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다가구주택 등 비아파트 시장에서 반복되는 정보 비대칭을 줄이기 위해 같은 건물 안의 임대차 보증금 규모와 계약 기간 등 위험 판단에 필요한 핵심 정보를 표준화해 이해 관계인이 쉽게 열람할 수 있도록 제도가 개선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박상길 기자 sweatsk@dt.co.kr
실시간 주요뉴스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