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부, '노동자추정제' 추진
사용자, 비노동자성 입증해야
870만 '권리 밖 노동자' 적용
5월 노동절 맞춰 '패키지 입법'
정부가 임금이나 고용 관련 분쟁 발생 시 '노동자성'에 대한 입증 책임을 사업주에게 지우는 '노동자추정제' 도입을 추진한다. 그동안 특수고용·플랫폼종사자나 택배기사 등은 임금체불 또는 부당해고 등의 분쟁이 생기면 스스로 노동자성을 입증해야 했다. 앞으로는 사용자가 이들이 노동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
재계는 소송대란과 경영 불확실성에 따른 고용 위축을 우려했다. 이른바 '노란봉투법' 입법, 정년 연장, 근로시간 단축 추진 등 현 정부의 친노동 기조가 이어지면서 기업들의 글로벌 경쟁력이 약화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고용노동부는 20일 이 같은 내용의 '노동자추정제' 포함 관련 입법을 노동절인 오는 5월 1일을 목표로 추진한다고 밝혔다.
노동자추정제는 민사상 분쟁에서 다른 사람의 사업을 위해 노무를 제공하는 사람을 노동자로 추정하고, 사용자가 노동자가 아니라는 점을 입증하게 하는 제도다.
대표적으로 특수고용·플랫폼종사자, 택배기사 등이 최저임금, 퇴직금, 해고 관련 분쟁에 나설 때 노무제공 사실을 증명하고, 사용자가 이를 반증하지 못 하면 노동자로 인정된다. 이 경우 노동자성 인정이 수월해져 최저임금, 4대보험, 퇴직금, 주휴수당 등을 적용받게 된다.
현재 특수고용·플랫폼종사자 등 비정규직으로 분류되는 노동자는 2023년 기준 862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고용부 관계자는 "민사 분쟁에서 노동자는 노무 정보를 갖기 어려워 입증이 쉽지 않다"며 "사용자는 노무 정보를 갖고 있어 반증 책임을 지워 정보 불균형을 없애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또 노동자 권리 밖 사각지대를 없애기 위해 '일하는 사람의 권리에 관한 기본법' 제정도 추진한다. 이 법은 계`약 형식과 관계 없이 다른 사람의 사업을 위해 노무를 제공하고 보수 등을 받으면 모두 일하는 사람으로 규정한다. 개인 사업자 등 자영업자를 뺀 비정규직 등이 모두 포함된다.
정부의 이 같은 입법 추진을 두고 노동계와 재계의 반응은 엇갈렸다.
노동계는 정부의 제도 취지에 공감하면서도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의 정의가 모호하다는 입장이다. 한국노총은 "(법안이) 근로기준법의 정의 규정에 근로자성 판단기준과 추정 제도를 명시하지 않아 분쟁 단계에서 제한적 추정에 그칠 수 있다"며 "근로자성 판단이 분쟁뿐 아니라 노동관계 전반에서 적용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재계는 노동자추정제 도입 시 기업들의 입증 책임을 어디까지 물을 지 모호한데다 노동과 고용 사안별로 분쟁이 달라 잇따른 소송에 휘말릴 수 있다고 우려한다. 특수고용자의 경우 배달·택배기사, 대리운전 기사, 보험설계사 등 업종별로 다양하고, 플랫폼 노동자처럼 업무형태나 소속 여부가 달라 노동자성 판단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재계 관계자는 "이번 법안은 다양한 업종에서 노동자성에 대한 입증 책임을 기업에 물어 예측 불가능한 비용 등 상당한 부담이 될 수 있다"며 "업종별 예외 조항 등 명확한 노동자성 판단 기준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재계 관계자는 "입법 취지에 공감하지만 산업별·직무별 특성을 반영하지 않은 획일적 제도 도입은 고용과 해당 산업을 위축시키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부 교수는 "모호한 상태에서 추정에 의존하는 방식은 논란의 소지가 크고, 사용자와 노동자 모두에게 불완전한 상태가 이어질 수 있다"며 "인력 수급이 원활하지 않을 수도 있어 명확한 근거로 근로관계를 설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세종=원승일 기자 won@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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