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현철 논설실장
요즘 어디서나 화제는 단연 주식이다. 주식 투자를 안한다고 하면 시대에 뒤떨어진 ‘바보’쯤으로 취급받기 십상이다. 코스피지수가 최근 세계 최고 상승률을 기록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주식 투자가 각광받는 건 이재명 정부의 상법 개정과 소액주주 우대정책 , 그리고 주식 투자에 대한 세제 혜택 등 증시 친화적 정책이 한 요인일 것이다. 여기에 AI(인공지능) 시대 D램 반도체 품귀 현상에 따른 반도체 수출 급증이 가세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뜨거운 투자 열기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정상적인 경제에서 주가 상승은 생산성 향상, 기술 혁신, 고용 확대, 실질임금 상승이라는 실물경제가 뒷받침 돼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코스피 상승은 이 공식과는 어긋나 있다. 우리 경제의 기초체력(펀더멘털)을 반영한 것이라면 좋겠지만 ‘오버 슈팅’(과도 평가)된 것 아니냐는 것이다.
사상 최고가로 뛴 서울 아파트 값도 그렇다. 1%대 저성장과 일할 사람이 줄어드는 저출산·초고령화 상황에서 국민평형 아파트 한채가 수십억원에 거래되는 건 분명 문제가 있다.
왜 이렇게 자산가격이 거품 우려를 낳을 정도로 뛰는 걸까. 그 배경엔 정부와 한은이 도사리고 있다. 정부의 의도적인 자산 부양 정책과 한은의 ‘통화량 팽창 방기’가 자산가격이 계속 뛸 것이란 투자자들의 기대심리를 부추기고, 넘쳐나는 시중 유동성이 증시와 부동산에 쏠리면서 자산가격 급등 현상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일각에선 정부가 저금리·유동성 확대·연기금 동원·정책 신호 관리 등으로 자산시장을 떠받치고, 이를 ‘경제 성과’로 포장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혹평도 나온다.
이런 주장에는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 첫째 정부가 ‘경기부양’이라는 명분으로 빚을 내가면서까지 돈을 너무 많이 푼다. 지난해 하반기 민생쿠폰 지급 명목으로 추경을 통해 31조8000억원을 풀었던 정부는 사상 최대 규모인 본예산이 본격 집행에 들어가기도 전인 최근 또다시 추경을 언급했다. 농어촌에 현금을 살포하는 기본소득 정책을 시행하고, 지방자치단체 통합엔 20조원을 지원하겠다고 한다. 경기 마중물이나 행정 비용 절감 목적보다는 표를 의식한 포퓰리즘적 현금 살포 성격이 더 짙다. 이러니 나랏빚은 가히 빛의 속도로 쌓인다. 국가, 공공, 민간을 모두 합한 총부채는 GDP(국내총생산) 대비 무려 248%(3월말 기준)다. 부채공화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둘째 한은도 ‘공범’이다. 이창용 총재는 통화량 산출기준까지 바꿔가며 우리의 통화량 증가율이 선진국에 비해 높은 수준이 아니라고 강변하지만, GDP 대비 통화량은 미국의 무려 두배다. 넘치는 통화량이 부동산과 주식으로 흘러 ‘거품’을 만들어내고, 외국돈에 비교한 원화의 가치를 추락(원·달러 환율 급등)시키고 있는 것이다.
셋째 ‘코스피 오천’으로 대표되는 정부의 주가 부양책이다. 소수 대주주만이 아닌, 서민들도 주식 투자로 돈을 벌 수 있게 하겠다는 정부 철학은 옳은 방향이다. 하지만 주가 부양이 경제정책의 최우선 순위가 되는 건 문제가 있다. 증시 역사에서 보여지듯 주가의 인위적 부양은 꼭 뒤탈을 낳는다. 주가는 개별 기업의 실적, 주가지수는 한국 경제의 기초체력을 반영한다. 실적이 좋을수록, 체력이 튼튼할수록 증시는 강세를 띤다. 그런데 지금 우리 경제와 증시는 반도체 방산 등 일부 업종과 종목이 이끌고 있다. 철강 석유화학 건설 등 전통 업종은 경쟁력을 잃으면서 맥을 못춘다. 증시 시가총액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하는 반도체 특수가 사라질때 증시도 맥없이 추락할 위험이 있다는 뜻이다.
증시는 늘 변동한다. 인위적으로 끌어올릴 경우 반드시 ‘시장의 복수’가 뒤따른다.코스피지수가 과도하게 오버 슈팅됐다가 고꾸라질 경우 정부가 책임질 건가. 게다가 주식이나 부동산의 상승은 서민층이 아닌 자산 보유층 부의 확대라는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있다. 경제 지표는 좋은데 민생은 팍팍해지는, 정책이 만든 착시다.
정부가 할 일은 경제를 건전하게 관리하고, 잠재성장률을 높이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구조조정이 시급하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기업들엔 상시 구조조정 체제가 자리잡았다. 한국 경제가 그나마 버티는 건 기업들의 이런 눈물겨운 노력 덕분이다. 하지만 거시경제 전반에 대한 구조조정은 외환위기 당시 김대중 정부의 4대 구조조정 이후 이렇다할 만한 게 없다. 윤석열 정부도 말로는 구조개혁을 내세웠지만 흐지부지됐다. 부실 건설사를 퇴출시키지 않은 까닭에 부동산 PF (프로젝트 파이낸싱) 부실은 여전히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 부실해진 자영업도 이런 저런 지원책으로 겨우 연명하고 있는 형편이다.
이재명 정부도 규제·금융·공공·연금·교육·노동 등 6대 개혁을 표방하고 있지만 그 방향이 시장경제와 맞지 않은 게 있고, 실천 또한 제대로 될지 의문이다. 올 지방선거와 내년 총선, 2030년 대선 일정을 감안하면 고통을 요구하는 구조개혁은 윤 정부때처럼 수사修辭)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거품은 언젠간 터지기 마련이다. 코스피지수 5000 대 환율 1500, 우리 경제의 실상을 보여주는 상징적 숫자다. 코스피지수가 5000을 향해 질주하지만 원화 가치는 1500원을 향해 추락하고 있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부채 주도 성장’이라는 환상에서 벗어나 허투로 쓰는 돈을 줄여 재정을 건전하게 하고, 자산시장 버블을 부추기는 정책은 자제할 필요가 있다. 또한 노란봉투법, 경직된 주 52시간제, ‘노동자 추정제’ 입법 등 기업을 옥죄는 규제를 풀어줘야 한다. 고통스럽더라도 경제의 체질을 튼튼히 하는 것, 그게 민생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다.
강현철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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