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부터 본격적인 재개발에 들어갈 예정인 서울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의 주민 이주대책 문제가 좀처럼 해결되지 않고 있다.

사업 일정은 카운트다운에 들어간 셈이지만 아직 이주하지 못한 주민은 수백가구에 달한다. 설상가상 남은 주민들 가운데 절반 가량은 최근 대형 화재로 주거지까지 잃었다.

주민들은 단순한 임시 거처 제공이 아니라, 삶의 기반을 유지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해 달라고 촉구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강제수용된 토지를 적정 조성원가 수준으로 다시 판매해 재정착할 수 있도록 하고, 현재 거주 중인 주택을 간이공작물이 아닌 무허가건축물로 인정하여 사실상 주거시설로 인정해 보상과 이주 기준에 반영해 달라는 것이다.

구룡마을 주민들은 비닐 천막과 합판 벽으로 지어진 집에서 생활하고 있다. 공동 화장실, 노후 전기 배선, 비좁은 골목길은 오래전부터 안전 사각지대로 지적돼 왔다. 화재 위험이 반복적으로 제기됐지만 근본적인 주거 개선은 이뤄지지 않았다.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들어선 새 아파트와의 주거 수준 격차는 구룡마을의 현실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구룡마을 건너편에는 2023년 11월 입주한 고급 아파트 단지 '디에이치 퍼스티어 아이파크'가 들어서 있다. 전용면적 34㎡ 기준 임대 조건은 보증금 4억원에 월세 100만원 수준으로 높다.

월세 100만원을 감당하기 어려운 주민들은 서울시가 제공하는 같은 주택 평형의 임대주택을 선택해야 한다. 그러나 해당 임대주택은 방 1개와 작은 거실, 화장실이 전부인 최소한의 주거공간으로, 장기 거주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서울시는 임대아파트로 1차 이주를 마친 뒤 구룡마을 도시개발이 완료되면 재입주를 보장하겠다는 방침을 밝혔지만, 주민들은 이 약속을 신뢰하지 못하고 있다.

도시개발 사업 기간이 장기화할 가능성이 크고, 그 사이 주민들이 외부로 흩어질 경우 공동체 유지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다. 재입주 시점이 도래하더라도 실제로 돌아올 수 있는 주민이 얼마나 될지도 불투명하다.

비용 문제도 걸림돌이다. 개발 이후 공급될 주택의 임대보증금과 임대료가 시세 수준으로 책정될 경우, 현재의 소득 구조로는 재정착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구룡마을 주민 상당수는 강남 일대에서 목욕탕 청소, 건물 계단 청소, 폐지 수거 등에 이른바 3D 업종에 종사하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재개발 과정이 길어질수록 주거 기반뿐 아니라 생계 기반도 흔들릴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임시 거처가 기존 일터와 멀어질 경우 교통비 부담이 늘어나고, 고령 주민들은 이동 자체가 어려운 상황에 놓일 수 있다. 일부 주민들은 일을 포기해야 할 수도 있다는 현실적 고민을 털어놓는다.

신보연 세종대 부동산AI학과 교수는 "구룡마을은 일반적인 재개발 사업지와 달리 오랜 기간 형성된 비정형 주거지라는 특수성이 있다"며 "획일적인 이주 방식으로는 주민 불안을 해소하기 어렵기 때문에, 지자체가 주민들과 지속적으로 소통하며 보다 세밀하고 현실적인 이주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글·사진=박상길 기자 sweatsk@dt.co.kr

구룡마을 건너편으로 새 아파트가 들어서 있다. [박상길 기자]
구룡마을 건너편으로 새 아파트가 들어서 있다. [박상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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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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