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무역 바주카포'로 불리는 제재카드 적극 검토
트럼프, 유럽 반발에도 "이제 때가 됐고 완수될 것"
이번 주 트럼프 참석하는 다보스포럼에 시선 집중
협상 불발 시 강대강 대치, 대서양 무역전쟁 발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그린란드 소유욕은 유럽의 거센 반발에도 요지부동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17일(현지시간) 그린란드 확보에 반대하는 유럽 8개국을 상대로 내달 1일부터 10%, 오는 6월 1일부터 2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히는 등 초강수 행보로 유럽 전역의 반발을 사고 있는 가운데, 18일에는 그린란드에 러시아와 중국의 위협이 점증하고 있고 덴마크가 이를 막아내지 못하기 때문에 미국이 그린란드를 소유해 막아내야 한다고 거듭 주장했다.
유럽연합(EU)은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위협에 맞서 다양한 대응책을 마련하며 '무역전쟁'에 대비하고 있다. 이번 주 트럼프 대통령이 스위스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 포럼)에 참석해 유럽 정상들과 대면하는 등 협상의 여지는 남아 있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그린란드 야심이 워낙 확고해 미국과 유럽의 80년 동맹이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일찍이 경험해보지 못한 미·유럽 간 대서양 무역전쟁으로 급속히 번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18일 밤 자신의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나토는 20년 동안 덴마크에 그린란드에서 러시아의 위협을 몰아내라고 요구했지만 덴마크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며 "이제 때가 됐고 완수될 것"이라고 밝혔다.
덴마크령 그린란드가 러시아와 중국의 전략적 위협에 노출돼 있으며, 덴마크가 이를 방어할 역량이 없기 때문에 미국이 나서야 한다는 논리다. 그린란드 병합 시도를 정당화하려는 발언이다.
올들어 베네수엘라 마두로 정권을 상대로 한 강경 조치에 이어 그린란드 문제에서도 힘의 논리를 전면에 내세우는 대외 기조를 노골화하고 있는 모양새다.
유럽의 대응 수위도 높아지고 있다. EU는 18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27개 회원국 대사가 참석한 긴급회의를 열고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위협에 대한 공동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논의의 핵심은 2023년 도입 이후 한 번도 사용되지 않은 통상위협대응조치(ACI) 발동 여부다. 이른바 '무역 바주카포'로 불리는 ACI는 제3국이 EU나 회원국을 경제적으로 압박할 경우 서비스, 외국인 직접투자, 금융시장, 공공조달, 지식재산권 등 광범위한 영역에서 제재를 가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프랑스를 중심으로 "지금이야말로 이 무기를 사용할 때"라는 강경론이 확산되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EU가 지난해 미국과의 무역 협상 과정에서 마련했다가 보류해 둔 930억유로(약 159조원) 규모의 보복 관세 패키지도 다시 꺼내 들 채비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항공기, 자동차, 버번위스키 등 미국의 주요 수출품이 대상이다.
미국과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보류 중인 맞불 관세가 이르면 2월 초 자동 발효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EU는 지난해 미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 철폐를 약속했지만, 해당 합의는 아직 유럽의회 비준을 받지 못한 상태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위협이 이어지면서 비준 절차 중단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국방 분야 역시 유럽의 대응 옵션으로 거론된다. 그린란드에서의 군사적 존재감 확대, 국방비 지출 가속화, 무기 구매처의 다변화, 나아가 미군 기지 사용 제한까지 검토 대상에 오르고 있다. 다만 이는 긴장을 극단으로 끌어올릴 수 있어 실제 선택 가능성은 제한적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국면에서 미국의 안보 지원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유럽으로서는 군사적 충돌을 감수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유럽의 선택지가 제한적이라는 점은 무역전쟁에서도 마찬가지다. EU는 대미 수출과 금융·디지털 서비스 분야에서 미국 의존도가 높아 전면 충돌 시 상당한 경제적 타격이 불가피하다.
미 뉴욕타임스는 유럽의 강경 대응이 오히려 유럽 경제와 안보에 막대한 비용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EU가 강경한 메시지를 내는 것은 다보스포럼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협상 테이블에 앉기 전, 협상력을 최대한 끌어올리기 위한 포석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EU는 오는 22일쯤 긴급 정상회의를 열어 관세 대응과 그린란드 문제를 포함한 공동 대응 방침을 최종 조율할 예정이다. 이 자리에서 ACI 발동 여부와 보복 관세 패키지 실행 시점이 결정될 경우, 미·유럽 관계는 수십 년 만의 최대 위기를 맞게 된다. 막판 타협이 이뤄질지, 아니면 2월부터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전례없는 무역전쟁이 현실화할지 세계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이규화 대기자 david@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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