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훤 부국장 겸 부동산유통부장
1994년 개봉한 영국 로맨틱 코미디 영화 ‘네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은 사랑을 미루고 피하는 남자 주인공 찰스(휴 그랜트)가 연인과의 관계와 사랑의 의미를 서서히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영화는 주인공이 세 차례의 지인 결혼식과 친구의 장례식, 그리고 마지막 자신의 결혼식에서 진정한 사랑이란 결혼이란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내 앞에 인연이 왔을 때 놓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30년도 더 된 영화 이야기를 꺼낸 건 얼마 전 우연찮게 집에서 본 이 영화가 설 연휴 전에는 내놓겠다는 이재명 정부의 네 번째 부동산 대책과 묘하게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사실 영화 내용을 부동산 대책과 연관 지을 거라곤 시쳇말로 ‘1도’ 없다. 다른 영역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 차례나 반복된 수요 억제의 규제와 이번엔 한 번 제대로 보여주겠다고 예고한 공급 대책을 영화 속 반복된 세 번의 지인 결혼식과, 사랑과 결혼의 의미를 돌아보게 만든 한 번의 장례식에 대입해 보면 꽤 맞아떨어진다.
정부의 세 차례 대책은 영화 속 주인공이 세 번의 결혼식에서도 진정한 사랑을 찾지 못한 것처럼 같은 결과를 반복했다. 규제의 강도만 달리했을 뿐 접근 방식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고, 시장의 기대도 그만큼 무뎌졌다.
집값이 오르면 규제가 나오고, 규제가 먹히지 않으면 더 강한 규제가 이어졌다. 결과는 늘 비슷했다. 거래는 얼어붙고, 시장은 관망에 들어가며, 불안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후 내놓겠다고 예고한 이번 대책은 영화 속 주인공이 친구의 장례식에서 그동안 사랑을 미룬 삶의 대가를 절감한 것처럼, 수요 억제만으로는 집값을 잡을 수 없다는 것을 파악한 정부가 주택공급 시그널을 주겠다는 것으로 치환된다.
집값 대책 실패의 원인이 규제 강도가 약해서가 아니라 접근 방식에도 문제가 있었음을 인정한 대목쯤 되겠다.
영화와 닮은 것은 여기까지. 스크린 속 주인공은 진정한 사랑을 찾는 것으로 마무리되지만, 이재명 정부의 네 번째 부동산 대책의 현실은 그렇지 않을 것 같아 걱정부터 앞선다.
주택공급 대책이 여러 차례 미뤄진 것에서부터 신뢰가 안 보인다. 애초 작년 연말에서 올해 초로, 다시 설 연휴 전으로 연기됐다. 발등의 불을 꺼야 하는 숙제도 미루고 주무 부처의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은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가전·IT 전시회인 ‘CES 2026’을 찾으며 안방을 비워 버렸다.
미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의 수주 지원이란 명분을 내세웠지만, ‘내집 불도 안 끄고 옆 동네 잔치에 숟가락만 얹은 부적절한 처사’란 비난 여론이 국토장관을 향해 쏟아졌다.
그 사이 추측성 대책들만 무성하게 돌며 시장 불안을 자극했다. “마땅한 공급대책이 있었으면 진작에 나왔을 것”, “이것저것 주워 담겠지만 주목할 공급은 없을 것”, “이번에도 수요 억제만 나올 것”이란 부정적 소문뿐이다.
설령 공급 대책이 나온다 해도 공급이 제대로 반응할 수 있는 구조가 보이지 않는다. 공급은 가격과 규제에 반응한다. 잦은 규제 예고와 지역·대상별 통제는 공급 결정을 늦춘다. 통제가 강할수록 공급은 위축된다.
공급이 시장에 반응할 수 있는 구조와 예측가능한 규칙, 시장의 선택과 책임이 기능적으로 작동해야 하는데, 그런 토대도 전혀 보이지 않는다. 내놓은 규제들은 많아졌지만, 대부분 시장을 믿지 못하겠다는 신호들뿐이다. 그렇다고 내놓은 규제를 거두자니 시장이 엉뚱한 시그널로 받아들일 수도 있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다.
누적된 시장경제 원칙과의 충돌이 계속된다는 것도 문제다. 가격을 교정 대상으로 보고, 수요를 차단 대상으로 인식하는 순간 정책은 통제로 흐른다. 정부의 역할은 시장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작동하게 돕는 데 있다.
집값은 통제로 잡히지 않는다. 수사(修辭)가 아닌 수십년 경험치다. 시장 자율과 예측 가능성을 회복하지 못한다면 어떤 대책이 나와도 같은 결론에 이를 뿐이다. 다섯 번째 대책을 서둘러 고민하는 것이 어찌보면 나을지도 모를 일이다.
전태훤 부국장 겸 부동산유통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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