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이 다시 1470원대를 돌파하면서 고환율 흐름이 장기화되자 국내 은행권의 자본적정성과 외화조달 부담이 동시에 확대되고 있다. 환율 상승이 지속되면서 위험가중자산(RWA)을 끌어올려 자본비율을 떨어뜨리는 데다 외화 유동성 조달 여건까지 악화시키면서 은행권이 '이중 부담'에 직면했다는 우려가 나온다.
18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지난 16일 주간거래(오후 3시30분) 종가 기준 1473.6원에 거래를 마쳤다. 지난해 말 정부와 한국은행 등 외환당국의 달러 매도 개입 등 시장 개입 직후 일시적으로 하락했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다시 오름세로 돌아섰다. 연말 개입 이후 1430원대 초반까지 밀렸던 환율은 다시 상승 흐름을 타면서 1480원선을 넘보는 수준까지 치솟았다.
최근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의 원화 약세를 의식한 듯한 구두개입성 발언까지 나왔지만, 환율은 다시 상승세를 이어갔다.
한·미 금리 역전차 장기화와 유동성 공급에 따른 원화 가치 하락이 환율을 끌어올리는 주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달러에 대한 저가 매수 외에도 환율이 더 오를 것으로 본 수출 기업들이 달러 환전을 늦추는 레깅 현상까지 가세해 달러 공급 부족을 심화시키고 있다. 대외 돌발 변수도 달러 강세를 지지하고 있다. 베네수엘라와 그린란드를 둘러싼 지정학적 불안에 미국의 고용 지표 개선으로 인해 1월 금리 동결 가능성도 커졌다.
민경원 우리은행 이코노미스트는 "달러 약세와 당국 미세조정 경계감은 환율 상단을 제한하는 요인"이라면서도 "수급 주도권을 쥔 수입업체 결제와 거주자 해외주식투자 환전 수요가 환율 상승을 견인하고 있다"고 전망했다.
환율이 좀처럼 잡히지 않자 은행권도 비상이다. 은행이 보유한 외화자산을 원화 기준으로 환산할 때 평가규모가 커지면서 RWA가 증가하는 구조적 요인이 강화되기 때문이다. RWA가 늘면 은행의 핵심 자본지표인 보통주자본비율(CET1)이 자동으로 하락한다. 자본비율이 감독 기준에 근접하면 배당·자사주 매입 등 주주환원 정책도 제약될 수 있어 은행권의 부담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금융권 관계자는 "환율이 일정 수준을 돌파할 때마다 RWA가 민감하게 반응해 자본비율이 눌리는 효과가 반복되고 있다"며 "자본완충력을 유지하기 위해 RWA 관리와 외환 익스포저 축소 검토가 동시에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외화조달 여건도 녹록지 않다. 미국 장기금리 강세 속에 글로벌 달러 자금시장이 경색되면서 국내 은행들이 해외채 발행 비용 상승과 발행 시기 조정 압박에 직면하고 있다. 특히 중·장기물 조달 비용이 눈에 띄게 높아지면서 은행들은 외화 커버드본드(CB)나 글로벌 본드 발행 계획을 재조정하는 등 조달 전략을 다변화하는 추세다.
업계에서는 고환율 흐름이 단기간에 해소되기 어려운 만큼 은행권의 자본·유동성 기조가 보수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고환율이 장기화할 경우 은행의 조달비용 부담이 금융시장 전반의 신용 스프레드 확대로 이어질 가능성도 경고했다. 환율 안정 여부가 은행권 건전성뿐 아니라 실물경제 자금 흐름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의미다.
은행권에서는 이미 '보수적 경영 기조'에 들어간 모습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올해는 공격적인 영업보다 자본비율 안정과 유동성 확보가 우선 과제"라며 "환율 안정 여부가 연간 경영전략의 핵심 변수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은행 관계자는 "환율 변동성이 커진 상황에서 외화 조달력과 자본비율을 동시에 방어해야 하기에 리스크 관리 역량이 중요해지고 있다"며 "당분간은 자본비율 안정과 외화 유동성 확보에 무게가 실릴 전망"이라고 말했다.
주형연 기자 jhy@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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