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최악’ 경북 산불 실화자들, 1심서 집행유예

축구장 14만 배 산림 태우고 26명 사망했는데… 재판부 “외부 요인 참작”

주민 2000여 명 여전히 컨테이너 생활, 정부 상대 손해배상 소송 추진

경북 의성군 산불 발생 나흘째인 지난해 3월 25일 의성군 단촌면 하화1리에 강풍에 날아온 산불 불씨로 인한 화재가 발생해 있다. [연합뉴스]
경북 의성군 산불 발생 나흘째인 지난해 3월 25일 의성군 단촌면 하화1리에 강풍에 날아온 산불 불씨로 인한 화재가 발생해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경북 일대를 잿더미로 만든 역대 최악의 산불을 낸 실화자들에게 법원이 1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27명의 사망자와 수천 명의 이재민이 발생한 대참사였던 만큼,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피해 주민들의 비판이 거세다.

16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구지법 의성지원 형사1단독 문혁 판사는 이날 산림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성묘객 신모씨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하고, 사회봉사 120시간을 명령했다.

재판부는 같은 혐의로 기소된 과수원 임차인 정모씨에게는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이와 함께 보호관찰 및 사회봉사 120시간을 명했다.

신씨는 지난해 3월 22일 의성군 안평면 괴산리 한 야산에서 조부모 묘에 자라난 어린나무를 태우려고 나무에 불을 붙였다가 대형 산불로 확산하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정씨는 같은 날 의성군 안계면 용기리 한 과수원에서 영농 부산물을 태우다가 대형 산불로 확산하게 한 혐의로 기소됐다.

이들은 지난해 3월, 경북 의성에서 성묘 중 부주의로 불을 내거나 농산 부산물을 태우다 인근 산으로 불씨를 옮겨붙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당시 불은 강풍을 타고 안동과 영덕까지 확산하며 축구장 14만 배 면적에 달하는 산림 10만 헥타르를 집어삼켰다. 이 과정에서 26명이 목숨을 잃고 부상 31명 등 57명의 사상자와 3500여 명의 이재민이 발생하는 등 막대한 인명·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검찰은 법정 최고형인 징역 3년을 구형했으나,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당시 기후가 극도로 건조했고, 다른 산불과 결합하는 등 실화자가 통제하기 어려운 외부적 요인이 컸다”며 “피해 규모는 막대하지만 실형을 선고하는 것은 지나치게 가혹하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판결 소식이 전해지자 피해 주민들은 허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산불 발생 후 10개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2000명이 넘는 주민들은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임시 조립주택(컨테이너)에서 겨울을 나고 있기 때문이다.

의성군 산불 피해 주민 김모 씨는 “수많은 사람이 목숨과 재산을 잃었는데 이런 가벼운 처벌이 내려진다면 누가 불에 대한 경각심을 갖겠느냐”며 울분을 토했다.

주민들은 실화자에 대한 처벌뿐만 아니라 정부의 대응 체계에도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산불 확산 당시 초기 진화 실패와 사고 후 부실한 보상 대책에 대해 책임을 묻겠다는 입장이다. 현재 피해 주민들은 변호인단을 구성해 정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 민사소송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소정 변호사(김소정 변호사 법률사무소)는 “예전부터 산불 관련 처벌 수위가 낮다는 지적이 많았다”라며 “사상자를 발생하게 한 경우 형량을 최소 두 배로 올리는 등으로 법이 개정될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산불 실화에 대한 법원의 온정주의적 판결 논란이 확산하는 가운데, 이번 판결이 향후 진행될 민사 재판과 사회적 경각심 제고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귀추가 주목된다.

정용석 기자(kudljang@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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