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정부 불법 외환거래 대응반’ 출범… 자금 흐름 추적·적발 주력

환율 올라 원재료 구매 환차손 불가피… “기업 자산 개입, 시장 위배”

“사실상 ‘달러 셔틀’하라는 말 아닙니까. 괜히 정상 거래를 하는 기업들까지 정부의 레이더망에 걸려들까 걱정됩니다.”(A부품사 고위 관계자)

천정부지로 치솟는 원·달러 환율을 잡기 위해 정부가 작년 말 7대 수출기업을 대상으로 원화 환전을 요구한 데 이어, 이번엔 중견·중소기업에도 칼을 내밀었다.

정부는 최근 해외에 달러를 쌓아둔 수출기업을 찾아내는 외환검사에 나서기로 했다. 재정경제부는 15일 국가정보원, 국세청, 관세청, 한국은행, 금융감독원 등과 함께 ‘범정부 불법 외환거래 대응반’을 출범했다고 밝혔다.

정부는 관계기관 역량을 결집해 각 분야의 전문성을 살려 국경을 넘나드는 불법 자금 흐름을 추적·적발하는 데 주력한다는 방침이다.

불법 행위를 저지른 기업들이 대상이라지만, 정작 수출기업들은 원재료 매입이나 현지 투자를 위해 해외에 달러를 보유한 것 자체만으로 정부의 단속에 걸리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현장에서는 특히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와 약속한 3500억달러(약 512조원)에 이르는 대미투자를 비롯해 글로벌 보호무역에 대응하기도 버거운 기업들이 외국 법인이 보유한 달러까지 모두 국내에 들여오라는 것은 억지 아니냐는 볼멘 소리도 나왔다.

수출로 벌어들인 달러를 원화로 환전한 뒤 원자재 구매나 해외 투자를 위해 다시 달러로 환전하면 기업들은 대규모 환차손의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 이윤을 추구해야 하는 기업에 손해를 강요하는 정부의 이번 환율 대책이 ‘무리수’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이날 원·달러 환율은 전일보다 7.8원 내린 1469.7원에 마감했다. 전날 1470원 선을 돌파했던 환율은 이날 소폭 내렸지만 여전히 고점에서 머물고 있다.

정부는 고환율을 잡기 위한 특단의 조치를 이어가고 있다. 작년 12월엔 대통령실이 삼성전자, SK, 현대차, LG, 롯데, 한화, HD현대 등 7대 대기업 관계자를 긴급 소집해 고환율 상황을 점검하고 달러의 원화 환전을 독려했다.

최근에는 관세청이 ‘고환율 대응 불법 무역·외환거래 단속 전담조직 TF’를 구성하고, 수출 기업 1138곳을 대상으로 외환 검사에 착수했다. 대상은 대기업 62곳, 중견기업 424곳, 중소기업 652곳 등으로 환율 안정화 시점까지 이어가기로 방침을 세웠다.

환율 안정을 저해할 우려가 있는 불법적인 외환거래 단속이 주목적이다. 법령을 위반한 무역대금 미회수부터 가상자산 등 대체수단을 악용한 변칙적 무역결제, 무역악용 외화자산 해외도피 등 3가지 무역·외환 불법행위가 포함된다.

관세청은 지난해 무역업계를 대상으로 외환검사를 실시한 결과, 조사 대상 업체의 97%에서 이 같은 불법 외환거래가 발견됐다고 밝힌 바 있다. 불법 거래 규모는 2조2049억원에 달했다.

기업들은 불안한 심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신고만 제대로 했다면 문제가 없다고 했으나, 필요에 의해서일지라도 해외 법인에 보유하고 있는 달러의 규모가 크다면 괜히 눈치가 보일 수 있다.

예를 들어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으로 미국을 포함해 글로벌 공급망 다변화가 중요해진 만큼, 현지 투자부터 원자재 구매 전략이 중요해졌다. 이는 대부분 달러로 결제가 되는 만큼 달러를 얼마나 보유하고 있는지가 핵심인데, 이를 굳이 국내로 다시 들여와 원화로 환전하게 되면 그만큼 해외 투자에 차질이 생길 수 밖에 없다.

지금처럼 원·달러 환율이 가파르게 치솟고 있는 상황이면, 기업들은 달러로 받은 수출대금을 원화로 바꾼 뒤 다시 원재료 매입을 위해 달러로 바꾸는 자체가 손실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해외 법인이 일정 수준의 외화를 보유해야 하는데, 정부가 그 규모가 과도하다고 인식할 경우 정상거래라도 눈치를 안볼 수는 없다”며 “정부가 조사를 한다는 자체만으로도 부담”이라고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법령을 위반한 무역대금 불법 행위를 잡는 것은 필요하지만, 과도한 단속은 기업들의 해외 전략을 위축시킬 수 있는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시장자본주의를 무시한 기업 옥죄기 식 단속보다는 경제성장을 유도하고 신뢰성 있는 통화 정책을 펼치는 등의 근본적인 해법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대 명예교수는 “일반 투자자, 기업은 물론 정부도 해외에 많이 투자해야 하는 구조적 변화가 생긴 상황에서 단기간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활용하다 보니 무리수가 나온 게 아닌가 한다”며 “기업의 달러 재산도 엄연한 자산인 데 정부가 달러 자산을 마음대로 써라, 말아라 할 권리가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의 ‘원화강세’ 전략에 대해 기업들이 신뢰를 하지 못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며 “환율이 내려갈 것이라고 기업들이 믿는다면 정부가 시키지 않더라도 원화로 바꿔놓는 게 낫지 않겠느냐”고 덧붙였다.

장우진·임재섭 기자 jwj17@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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