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헌 영산대 관광컨벤션학과 교수

1984년 한국관광공사 입사 시험을 준비하던 시절, 전철에서 우연히 집어든 잡지 한 권이 내 인생의 항로를 바꾸었다. 외국 관광객이 한국에서 느끼는 가장 큰 불편이 무엇인지 다룬 글이었는데, 첫 번째가 바로 화장실이었다.

당시 한국의 공중화장실은 ‘푸세식’이 많았고, 악취와 위생 문제는 관광객들에게 거의 공포에 가까웠다. 관광객이 호텔에서 나온 뒤 하루 종일 화장실을 참고 여행해야 했다는 외국인 경험담은 한국 관광의 부끄러운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놀랍게도 다음날 공사 논문시험 주제는 외국인 관광 불편과 해결 방안. 전날 읽은 10대 불편 항목을 바탕으로 나는 문제점과 대책을 일필휘지로 써 내려갔고, 그 인연이 결국 40년 관광 인생의 출발점이 되었다.

1994년 한국방문의 해를 맞아 나는 국민관광계도 과장으로 외국인 불편 해소의 최전선에 서게 되었다. 사장의 첫 지시는 단호했다. “화장실과 관광 수용 태세를 바꿔라.” 당시 수세식이 보급되던 시기였지만 화장지는 비치되지 않았고, 비치해도 금방 사라져 변기가 막히고 화장실이 폐쇄되는 일이 반복됐다.

나는 대형 롤 화장지를 도입하면 문제의 상당 부분이 해결될 것으로 판단했지만, 관련 기업의 거절로 결국 실행되지 못한 채 과제는 잠시 멈춰서야 했다.

전환점은 1998년이었다. 홍두표 사장 취임 후, 그는 화장실 문제를 관광 혁신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전국 공공화장실 조사를 지시했고, 결과에 따라 ‘Worst 5’를 언론에 공개하라는 과감한 결정이 내려졌다.

발표 직후 전국이 술렁였다. 지자체들의 항의가 빗발쳤지만 사장의 한마디는 분명했다. 우리에게 항의하기 보다는 내년에 다시 지적되지 않도록 개선하라는 것이었다.

그 순간, 언론의 힘과 전략적 실행의 중요성을 절실히 깨달았다. 전국 지자체는 발빠르게 움직였고, 고속도로 휴게소와 터미널, 기차역이 경쟁하듯 개선에 나섰다.

이후 민간에서 아름다운 화장실 경연까지 생겨나며 화장실 문화는 단기간에 선진국 수준으로 도약했다. 외국인들이 호텔 밖에서는 화장실을 회피하던 불편은 사라졌고, 한국관광 만족도는 눈에 띄게 향상되었다.

이는 단순한 위생 개선이 아니라 관광의 기본을 바로 세운 혁신 사례였다. 관광공사는 이후 친절, 질서, 기념품, 국내관광 활성화 등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었고, 화장실문화협회는 세계 각국에 한국의 모델을 전수하며 국제적 벤치마킹 사례로 부상하게 되었다.

돌아보면, 관광공사 64년 역사 중 단기간에 국민문화를 바꾼 가장 상징적인 성공이었다. 전략적 목표 설정, 언론을 통한 공감대 형성, 책임있는 실행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무엇보다 작은 불편을 해결하는 일이 관광 경쟁력의 핵심임을 여실히 보여준 사례였다.

오늘의 한국 관광도 여전히 바가지 요금, 음식과 서비스 불만, 호객 행위 등 반복되는 문제를 안고 있다. 매년 같은 대책을 되풀이해서는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과거 화장실 혁신처럼 정확한 문제 진단, 전략적 접근, 창의적 기획, 강력한 실행력이다. 여기에 관광인·정부·지역사회가 함께 참여할 때 한국 관광은 다시 도약할 수 있다.

외국인과 국내 관광객이 한국에서 더 편안하고, 안전하고, 행복한 여행을 경험하게 된다면, 그 만족이 자연스럽게 한국 관광의 최고의 홍보가 될 것이다. K콘텐츠로 대한민국이 부상하는 지금이야말로 관광 수용 태세 전반을 다시 혁신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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