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석 "담배 폐암 유발 과학적 진실… 담배 회사 뺑소니범"

법원 "치료비 지출은 보험 의무… 직접 손해 아냐"

건보, 상고 검토… 유해성·중독성 인식 정면 다툼 예고

정기석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이 15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주요 담배회사들을 상대로 제기한 대규모 손해배상 청구 소송 2심 패소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기석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이 15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주요 담배회사들을 상대로 제기한 대규모 손해배상 청구 소송 2심 패소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과학과 법의 괴리가 이렇게 클 줄 몰랐습니다."

정기석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은 15일 2심 판결이 끝나고 무거운 표정으로 기자들과 만나 "실망스럽고 아쉬운 판결이지만 언젠가는 인정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서울고등법원은 건보공단이 KT&G, 한국필립모리스, BAT코리아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항소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공단이 항소를 제기한 지 5년 만이자, 첫 소송 제기 이후 12년 만에 나온 2심 결론이다.

판결에 대해 정 이사장은 "담배를 피우면 100%는 아니지만 폐암에 걸릴 수 있다는 것은 과학적 진실이며 고혈압, 당뇨 등은 모두 담배가 유발하거나 악화시키는 병"이라며 "담배의 유해성에 대해 법원이 아직도 이렇게 유보적인 판단을 하는 것은 비통한 일"이라고 아쉬움을 내비쳤다.

재판부는 1심에 이어 항소심도 담배회사들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공단이 흡연 관련 질환 치료비를 지출한 행위가 보험법상 의무 이행에 해당한다고 봤다. 이에 따라 담배회사들의 불법행위로 공단의 법익이 직접 침해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공단은 주된 청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 환자들의 치료비를 대신 부담한 만큼 환자들을 대위해 손해배상을 청구한다는 주장도 폈다. 담배회사의 불법행위와 그에 따른 배상 책임을 인정해 달라는 취지였지만 재판부는 이 역시 받아들이지 않았다.

또 재판부는 흡연과 폐암 발병 사이 인과관계에 대해 개인별로 엄격한 입증이 필요하다고 봤다. 단순히 흡연 사실과 폐암 발병이 확인됐다는 이유만으로 양자 간 개별적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는 없다는 대법원 판례를 인용했다. 흡연 시기와 기간, 암 발생 시점, 건강 상태와 생활습관, 가족력 등 개별 사정을 종합적으로 살펴야 한다는 설명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주요 담배 회사들을 상대로 제기한 533억원대 손해배상 청구 소송의 2심 선고 재판이 열린 15일 서울 한 편의점에서 점원이 진열된 담배를 들어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주요 담배 회사들을 상대로 제기한 533억원대 손해배상 청구 소송의 2심 선고 재판이 열린 15일 서울 한 편의점에서 점원이 진열된 담배를 들어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역학적 상관관계만으로 인과관계를 추정할 수 있다는 공단 주장에 대해서도 선을 그었다. 재판부는 "역학적 연구 결과가 특정 개인의 질병에 대한 개별적 원인에 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주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정 이사장은 "공단이 가진 역학 자료에는 소세포암의 경우 98%가 담배로 인해 생겼다는 결과가 나와 있다"며 "그러면 거꾸로 폐암 환자 중 담배로 인한 환자가 단 한 명도 없다고 얘기할 수 있느냐"고 질타했다.

최근 건강보험연구원은 국립암센터 연구팀이 개발해 국제학술지에 발표한 폐암 발생 예측모형을 활용한 분석에서, 담배소송 대상자의 폐암 발생 위험 가운데 흡연 기여도가 81.8%에 달했다고 밝힌 바 있다. 1996~1997년 일반건강검진 수검자 중 암 과거력 없는 30~80세 남성을 최대 2007년까지 추적해 개발한 것으로 폐암 발생 예측력이 매우 높다고 평가됐다.

정 이사장은 판결 이후 "차가 교통사고를 내 사람들이 다치고 사망했는데 운전자가 도망가 버린 격"이라며 "담배 회사는 뺑소니범"이라고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그는 이날 재판 결과와 향후 상고 전략과 관련해 담배회사가 일부 의료계의 주장만 취사선택해 재판부를 호도해 왔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담배의 유해성·중독성 인지 여부 등 심층 면접을 해 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폐암 발생 위험 가운데 흡연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크다는 연구 결과가 다수 제시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익명을 요구한 호흡기내과 교수는 "담배를 끊으면 폐암 발생 위험이 낮아진다는 것은, 반대로 흡연이 폐암을 유발한다는 의미와 다르지 않다"며 "이 같은 점을 재판부가 다시 한 번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세종=강승구 기자 kang@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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