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준호 부국장 겸 IT바이오부장

지난 2021년 5월 18일 미국 미시간주 디어본의 포드 자동차 공장 내 시운전 도로. 선글라스를 낀 조 바이든 당시 미 대통령은 포드의 전기 픽업트럭 ‘F-150 라이트닝’을 직접 테스트 드라이브했다. 이 차는 수십년 간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차인 F-150의 전기차 버전이다. 신차발표회가 바로 다음날이어서 이 날은 위장막에 덮여 있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몰아보니 어땠냐’고 묻는 취재진에게 “빠르다. 가속력이 뛰어나다”고 답했다.

바이든이 미공개 신차를 직접 생산현장까지 찾아가 시운전한 것은 전기차를 중심에 둔 자신의 산업정책을 홍보하기 위한 행보였다. 전기차 붐을 일으켜 미국의 제조업을 부흥시키고, 미시간과 같은 쇠락한 공업지역 유권자들을 다시 중산층으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재확인했다.

그 때로부터 5년 가까이 지난 현재, F-150 라이트닝은 어떻게 됐을까. 포드는 이 차를 단종시키고 내연기관과 하이브리드차 중심으로 생산 전략을 변경하기로 최근 결정했다. 이런 전기차 전략 ‘후진’으로 떠안게 된 손실은 무려 195억달러(약 28조7000억원)에 달한다.

이런 사례는 F-150 뿐만이 아니다. 바이든 행정부 초기 미 자동차 업계는 전기차 신모델을 대거 개발하고 미래엔 내연기관차를 아예 없애겠다고 앞다퉈 선언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GM의 경우 2025년에 연간 전기차 100만대를 팔고 2035년까지 전 차량을 전기차로 전환하겠다고 했었다. 그러나 GM은 지난해 고작 17만대의 전기차를 판매했고 이미 5500명을 임시 휴직 조치했다. 최근엔 전기차·배터리 사업 손실 60억달러(약 8조8000억원)를 회계에 반영한다고 밝혔다.

유럽 대륙의 사정도 좋지 않다. 오는 2035년까지 전기차만 판매한다는 정책을 전격 철회하고 내연기관 차를 살리기로 했다.

미국과 유럽의 전기차 정책 변경의 배경으로 보조금·세제 혜택 축소, 소비자 관심 저하 등이 거론되지만 이는 표면적인 이유일 뿐이다. 미국과 유럽의 자동차 업계가 제대로 된 전기차도, 좋은 배터리도 만들 실력이 없다는 게 근본적인 실체다.

이 사이 중국 전기차는 그야말로 질주했다. 2025년 자동차 판매 대수에서 중국 메이커들이 일본을 제친 것이 확실시된다. 중국 메이커들은 전년 대비 약 17% 증가한 2700만대를 팔았다. 2023년 자동차 수출 1위를 차지한데 이어 전체 판매 대수도 ‘자동차 대국’ 일본을 이기게 된 것이다.

이 힘은 물론 전기차다. ‘중국 전기차의 아버지’로 불리는 완강(萬鋼) 중국과학기술협회 주석은 이미 수십년 전 “자동차 선진국의 내연기관 기술을 따라잡기 어려우니 중국은 그 단계를 건너뛰고 전기차로 직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결과 중국 전기차 산업은 BYD 같은 자체 브랜드 차를 세계 각국에 대량 수출하는 수준까지 발전했다. 가성비 높은 중국 전기차는 현재 각국의 자동차 시장을 흔들고 있다.

미국과 유럽의 전기차 정책이 후퇴하는 것을 두고 한국도 따라해야 한다는 주장이 일각에서 나온다. 그러나 오히려 이를 기회로 활용하겠다는 역발상이 필요하다.

한국은 미국·유럽과 달리 세계 최고 수준의 배터리 산업을 보유하고 있고, 현대자동차와 기아가 품질과 디자인·가격이 우수한 전기차를 생산한다. 중국 차가 못 들어간 미국에선 소비자들이 적당한 가격에 살 수 있는 대중 전기차가 테슬라 외엔 현대차·기아 제품 뿐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좋은 평가를 받는다. 한국은 전기차 시장을 이끌어 보겠다고 하다가 실패한 국가와 기업을 참고할 필요가 없다.

지금 세계 자동차 산업은 자율주행차와 소프트웨어 중심차(SDV) 시대로 빠르게 전환하고 있다. 이들 차는 전자 제어가 기본이어서 소프트웨어와의 통합이 쉬운 전기차를 기본으로 한다. 미래차를 구현하려면 우선 전기차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전기차 시대에는 더 이상 일본도 자동차 대국이 아니다. 테슬라와 중국차가 주인공이 될 공산이 크다. 한국은 이들과 세계 전기차 시장을 전략적으로 나눠 가질 ‘천하 삼분지계’를 구상해야 한다.

맹준호 부국장 겸 IT바이오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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