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비통 모노그램 캔버스 컬렉션. [루이비통 홈페이지 캡처]
루이비통 모노그램 캔버스 컬렉션. [루이비통 홈페이지 캡처]

<13> 루이비통

“그냥 좋아.” 특별한 이유나 조건 없이 대상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될 때가 있다. 그냥 좋았던 사람이나 공간, 시간처럼. 오래 지속된 애정사 대부분은 이런 감정에서 비롯되곤 한다. 브랜드도 마찬가지. 그냥 들고 싶고, 입고 싶게 만드는 ‘마력’을 장장 170여년간 뻗치고 있는 브랜드, 루이비통이다.

‘LV’ 로고와 연속되는 꽃·별 무늬로 이뤄진 모노그램이 들어간 제품이면 소유욕이 돋게 만드는 루이비통의 이상한 매력은 프랑스의 작고 누추한 공방에서 시작됐다.

여정의 시작은 1821년 프랑스 앙쉐에서 태어나 14세 때 파리로 상경한 목수의 아들인 루이 비통의 패커(짐꾸리는 사람)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소년 루이 비통은 황후의 전담 패커였다. 그는 파리로 올라와 가방 제조공의 견습공으로서 일을 배우면서 귀족의 여행가방을 싸주는 일도 했는데, 짐을 너무 잘 싸 ‘최고의 패커’라는 명성을 얻었고, 나폴레옹 3세의 부인, 유제니 황후의 신임까지 얻는다.

그는 이 경험을 살려 1854년 파리 까푸신느 4번가에 아틀리에를 연다. 주력 제품은 왕족과 귀족들의 여행용 가방(트렁크)이다. 독자적 브랜드로서의 루이비통은 그렇게 시작됐다.

브랜드를 상징하는 직육면체 여행용 트렁크도 이 시기에 나왔다. 1858년 여행가방 최초로 평평한 사각형 바닥을 가진 직육면체 트렁크를 내놓고 대박을 쳤다. 당대 대문호 어니스트 헤밍웨이도 ‘픽’(pick) 했을 정도다.

1892년부터는 스티머 백, 키폴 백, 스피디 백, 노에 백 등을 고품질의 실용적인 가방들을 만들며 가방 전문 브랜드로서 입지를 구축해 나갔다.

짝퉁의 범람도 이 때부터였다. 1896년 창업자의 아들인 조르주 비통이 짝퉁 퇴치책으로 내놓은 것이 바로 모노그램이었다. 130년 후 이 모노그램이 가장 많은 짝퉁을 빚어낸 아이콘이 되리라고는 상상치 못했을 일이다.

사업 번창과 함께 루이비통은 장인 정신을 브랜드의 사명처럼 지켜왔다. 이는 고집스런 수작업 공정을 통해 제품으로 전해지고 있다. 가죽 무두질에서부터 가방 바느질, 트렁크에 징을 박는 작업까지 장인의 손을 거친다. 특별 주문 트렁크의 경우 현재도 6~8개월을 들여 제작한다.

창의적 발상은 브랜드의 장인정신을 늙지 않게 만드는 ‘불로초’다.

처음엔 고개를 갸웃거리게 해도 결과적으론 대히트를 치는 콜라보가 대표적이다. 2003년 무라카미 다카시와 협업해 모노그램 트렁크에 화려한 꽃과 판다 인형 무늬를 더한 제품을 내놓았고, 2025년 협업 20주년 기념 리에디션 제품도 나왔다. 2012년, 2023년 쿠사마 야요이와 협업해 땡땡이 문양을 입힌 제품을 선보이기도 했다.

현재 루이비통은 루이비통 모엣 헤네시(LVMH)에 경영을 맡기고 있다. LVMH는 1987년 루이비통이 주류회사 모엣 헤네시를 합병해 설립한 회사로, 크리스찬 디올, 지방시, 셀린느 등이 여기 속해 있다. 루이비통은 그룹 전체 매출의 4분의 1, 영업이익의 절반 이상을 책임지고 있다.

김수연 기자(newsnews@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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