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
속담과 격언은 삶의 지혜를 압축해 담고 있지만, 그 자체로 완결된 진리는 아니다. 오히려 서로 모순되는 표현들이 공존한다. 속담은 현실이 도식적 세계보다는 얼마나 복잡한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가령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말은 아무리 쉬운 일이라도 힘을 합하면 훨씬 수월해진다는 뜻이다. 하지만 정반대의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속담도 있다. 이는 지시하고 간섭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일이 제대로 굴러가지 않는다는 경고를 담고 있다. 협력의 가치와 과잉 개입의 위험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이야기다.
신중함을 둘러싼 격언도 마찬가지다. ‘뛰어들기 전에 백번 생각하라’는 말은 성급한 판단을 경계하지만, ‘기회는 머뭇거리는 자에게 오지 않는다’는 말 역시 익숙하다. 지나친 신중함은 안전해 보이지만, 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선택으로 귀결된다. 지식에 관한 표현 역시 이율배반적이다.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말은 지식이 힘의 원천임을 강조하지만, 동시에 ‘모르는 것이 약이다’라는 표현은 무지가 오히려 득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이처럼 속담이나 격언은 구체적인 상황에서 정확한 판단을 대신해 주지는 않는다. 결국 상황에 따라 맞는 말이 달라질 뿐이다.
문제는 우리가 이 문장들을 ‘생각의 출발점’이 아니라 ‘결론’으로 사용한다는 데 있다. 복잡한 현실 앞에서 더 고민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종종 격언에 판단을 맡긴다. 이 순간 사고는 멈추고, 선택은 단순해진다. 그리고 그 대가는 대개 시간이 지난 뒤에야 드러난다.
이러한 사고의 위험은 투자 시장에서 더욱 분명해진다. 금융시장에는 ‘연준과 싸우지 말라’(Don‘t fight the Fed)라는 유명한 격언이 있다. 연준이 금리를 올리면 주식시장은 하락하니, 그 흐름에 맞서지 말라는 뜻이다. 그러나 데이터는 이 말이 언제나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실제로 미국 주식시장은 기준금리 인상 국면에서도 상당 기간 상승을 이어간 사례가 적지 않다. 핵심은 금리라는 단일 변수만으로 시장을 단정할 수 없다는 점이다.
부동산 시장은 이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 부동산은 1차원이 아니라 고차원 방정식에 가깝다. 금리, 대출, 세금 같은 제도적 변수뿐 아니라 공급, 수요, 인구 구조, 일자리, 그리고 시장 참여자의 심리까지 동시에 작용한다. 하나의 변수만 떼어내 답을 구하려는 도식적 사고는 여기서 쉽게 무너진다. 부동산 투자에서 중요한 것은 공식을 외우는 능력이 아니라, 주어진 조건을 종합해 해석하고 응용하는 힘이다.
부동산 시장은 정부 정책에 민감하게 움직인다. 부동산 가격은 정책과 시장 간의 시소게임 결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떤 이는 정부와 맞서지 말라고 하고, 또 다른 이는 정부 정책과 반대로 가면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지나온 흐름을 돌아보면 일률적인 답은 없었던 것 같다. 규제가 나와 가격이 크게 떨어지는 경우도 많았지만, 최근에는 그렇지 않은 장면도 적지 않다. 지난해 잇따른 정부의 시장 안정대책에도 서울 핵심 지역 아파트값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정부 정책의 방향과 거꾸로 움직였던 사람이 이득을 본 셈이다. 하지만 이런 ‘성공’이 계속 이어진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정부가 6월 지방선거 이후 과감한 세제 대책을 내놓으면 시장은 생각보다 크게 흔들릴 수도 있다.
부동산 시장에서 요구되는 수요자의 태도는 분명하다. 개별 신호에 과민하게 반응하기보다 여러 변수를 함께 놓고 흐름을 읽어야 한다. 금리나 통화량의 방향만 볼 것이 아니라 변화의 속도와 강도를 봐야 하고, 공급 물량의 총량이 아니라 어느 지역에 어떤 형태로 공급되는지를 살펴야 한다. 시장이 던지는 문제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같은 정보도 전혀 다른 결론으로 이어진다.
부동산 시장은 도식적 사고를 가장 가혹하게 벌하는 공간이다. 과거에 맞았던 공식은 언제든 무력화된다. ‘이번에도 똑같을 것’이라는 믿음이야말로 가장 위험한 착각이다. 시장은 늘 질문을 던진다. 정답은 문장 속에 있지 않다. 생각을 멈추는 순간, 그 판단은 시장에서 가장 비싼 대가로 돌아온다. 필요한 것은 격언을 외우는 능력이 아니라, 고차원적인 조건 속에서 종합적으로 사고하고 유연하게 대응하는 능력이다. 그 무엇보다도 ‘생각하는 힘’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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