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식자(識子)들 사이에는 “대화를 할때 ‘홍루몽’을 말하지 못하면 아무리 많은 시서(詩書)를 읽었더라도 헛 읽은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시와 글을 많이 읽었다 하더라도 홍루몽을 보지 못했다면 헛수고하는 뜻이다. 그만큼 홍루몽이 주옥같은 시(詩)와 문(文)을 담고 있다는 얘기다.

‘홍루몽’(紅樓夢)은 중국 4대 고전 소설 중 하나로, 중국 고전 문학의 최고 걸작으로 꼽힌다. 18세기 중반 청나라 건륭제 시기 조설근(曹雪芹)이 저자다. 조설근의 본명은 조점(曹霑)이다. 조설근이 80회까지 썼으며, 후대에 고악(高鶚)이 40회를 덧붙여 총 120회의 장편 소설로 완성됐다. 도교와 불교, 유교를 넘나들며 700명이 넘는 방대한 등장인물과 세밀한 묘사를 통해 당시 사회상을 깊이있게 담아내고 있다. 17세기 조선 숙종 시대 김만중이 지은 소설 ‘구운몽’(九雲夢)이 홍루몽을 참고로 했다.

홍루몽은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다. 명문 대귀족 가문인 가(賈)씨 집안의 번영과 몰락 과정을 다루고 있다. 주인공 가보옥(賈寶玉)과 그의 사촌 누이들인 임대옥(林黛玉), 설보차(薛寶釵) 사이의 비극적인 삼각관계가 주된 줄거리다. 가보옥은 임대옥을 사랑했으나, 봉건적 가족제도 아래 집안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힌다. 집안의 어른들은 가보옥을 설보차와 억지로 결혼시키며, 임대옥은 비통히 죽고 가보옥 또한 집을 나가 중이 된다. ‘붉은 누각의 꿈’이라는 소설의 뜻처럼, 인생은 일장춘몽(一場春夢·한바탕 봄밤의 꿈)이라는 허무함이 짙게 배어 있다. 붉은 누각은 아녀자들이 사는 규방이다.

홍루몽이 유명한 것은 청나라 귀족들의 화려한 생활 양식, 가구, 의복, 음식, 예절 등에 대한 사실적이고 섬세한 묘사 뿐만 아니라 소설 속에 담겨있는 시구들 덕분이다.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다. 그래서 중국에선 홍루몽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홍학’(紅學)이라는 학문도 생겨났다. ‘홍미’(紅迷)라고 해 홍루몽의 속작(續作)을 저술하는 애호가들도 속출했다. 중국인들은 홍루몽을 ‘만리장성과도 바꿀 수 없는 자존심’이라 부른다. 수차례 영화와 드라마로도 제작됐다.

조설근은 강희 54년(1715년) 한 귀족 집안에서 태어났다. 증조모는 순치 황제의 아들 현엽의 유모로, 현업이 황제(강희제)가 되자 자손 삼대에 이르기까지 ‘강녕직조’라는 관직을 세습했다. 강희의 치세 기간 승승장구하던 조씨 집안은 강희가 죽고 옹정이 황제에 오른후 집안 어른들이 공금횡령 등으로 처벌받아 가산이 몰수되면서 하루아침에 몰락한다. 이때 조설근의 나이는 13세였다. 기름진 음식에 좋은 옷을 입고 자랐던 조설근은 죄인이 돼버린 아버지를 따라 베이징으로 이사해 하루에 죽 한끼로 연명할 만큼 궁핍한 생활을 이어가야 했다. 이런 인생의 굴곡이 홍루몽에 짙게 배인 허무주의에 반영돼 있다.

‘중국문화산책’(김해명 엮음, 백산서당)에 따르면 조설근은 시와 서, 화(畵) 모두에 능했다. 시의 풍격은 만당(晩唐) 시인 이하(李賀)와 닮았다. 그의 친구 곽상은 조설근의 시를 평해 “시에 담긴 기개는 강철과 같아, 칼끝의 차디찬 빛과 가히 겨룰만 하다”고 했다. 그림 또한 잘 그렸는데 특히 돌을 그리길 좋아했다. 기괴하게 우뚝 솟은 암석을 그린 것은 가슴속에 담긴 울분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다.

조설근은 무려 10년동안 퇴고를 거듭하며 문장과 단어 하나에 머리가 하애질 정도로 고심했다. “글자 하나하나에 모두 심혈을 기울였으며, 10년이라는 세월을 거쳐 완성할 때까지 이루 형언할 수 없는 고생을 겪었다”고 토로했을 정도다.

시와 그림을 팔아 생활하던 조설근은 건륭 28년(1763) 애지중지하던 외아들이 병으로 죽자 날마다 아들의 무덤에 통곡하던 중 병으로 쓰러진다. 그해 섣달 그믐날 사람들이 폭죽을 터트리며 새해를 맞이할때 홍루몽 80편을 남기고 48세의 나이로 요절한다.

인생의 허무함, 현실과 꿈의 경계를 상징하는 “가짜가 진짜처럼 되었을 때 그 진짜 또한 가짜요, 무(無)가 유(有)로 변하는 곳엔 유 또한 무가 된다”(假作眞時眞亦假, 無爲有處有還無), 가보옥과 임대옥의 운명을 암시한 “하나는 산중의 고결한 선비요, 하나는 속세 밖의 외로운 신선이라…. 헛되이 눈썹만 찌푸리며 탄식하누나. 하나는 거울 속의 꽃이요, 하나는 물속의 달이로다”(一个是閬苑仙葩, 一个是美玉無瑕… 鏡中花, 水中月) 구절들은 지금도 회자되는 명구(名句)다.

중국인들은 “홍루몽을 읽어야 정치를 안다”고 말한다. 여기서 정치는 중국인들이 무엇보다 중시하는 ‘관계성’이다. 일본의 저명 중국문학 연구자인 이나미 리쓰코(井波律子)는 “삼국지연의, 서유기, 수호지, 금병매, 홍루몽 등 중국의 5대 고전 소설 가운데 신화나 설화에서 탈피해 진정한 소설로 볼 수 있는 것은 홍루몽”이라며 “홍루몽에는 시대를 초월해 살아있는 위대한 고전 특유의 영원히 예리함으로 잃지 않는 불멸의 가시가 감춰져 있다”고 평가했다.

강현철 논설실장(hckang@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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