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재권 더밀크 대표
이재명 대통령이 시진핑 주석의 초청으로 3박 4일 국빈 방문길에 올라 정상회담을 개최했다. 양국은 경제협력 확대와 한반도 평화를 논의했다. 9년 만의 국빈 방중이라는 상징성이 크다. 그러나 외교적 화해 무드 속에서도 한국 산업계가 직시해야 할 불편한 현실이 있다. 지금 태평양 건너 미국 라스베이거스 ‘CES 2026’ 현장이 냉정한 현실을 보여준다.
15년간 CES의 명당이던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 센트럴홀, 3368㎡ 규모의 삼성전자 상징적 공간을 올해 중국 TCL이 차지했다. 양위안칭 레노버 CEO는 CES 역사상 처음으로 중국 기업인 자격으로 기조연설 무대에 오른다. 단순한 부스 배치 변화나 기조연설 자리를 ‘한번’ 차지한 이벤트로 치부할 일이 아니다. CES 2026 휴머노이드 로봇 전시업체 38개 중 21개가 중국 기업이다. 55%를 넘는다. 휴머노이드, 피지컬 AI, 자율주행차, 양자 등 3~5년 내 주류가 될 기술에서도 양보다 질적 우수함을 내세우며 글로벌 톱2로 확실히 자리매김하고 있는 모습을 CES 2026에서도 볼 수 있다.
CES 현장에서 보는 중국 기술(제품)은 놀라움을 넘어선다. 세련됐다. 그럼에도 삼성전자. LG전자 제품에 비해 반값이다.
차이나 쇼크 2.0의 서막이 보인다. 지난 2000년대 초반 중국의 저가 제조업이 미국 중서부 제조업 지대를 황폐화시킨 것이 ‘차이나 쇼크 1.0’이었다면, 이번에는 AI와 로보틱스 분야에서 기술 우위와 가격 경쟁력을 동시에 갖춘 중국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을 재편하면서 ‘차이나 쇼크 2.0’을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차이나 쇼크 1.0은 경공업 타격에 그쳤고 선진국들은 이를 사양산업 정리의 계기로 삼았다. 그러나 2.0은 다르다. 선진국의 자동차, 에너지, 반도체 등 국가 경제의 핵심 산업을 타깃으로 삼는다.
2026년이 특별한 이유가 있다. 중국 15차 5개년 계획의 원년이기 때문이다. ‘신질생산력’(新質生産力)이 핵심 키워드다. 양적 성장이 아닌 기술 혁신을 통한 질적 도약, 세계의 공장이 아닌 글로벌 혁신 허브로의 전환 선언이다. 특히 AI, 양자컴퓨팅, 바이오, 우주항공에서 국제 표준을 중국이 주도하겠다는 의지다.
문제는 이 전략이 정확히 한국의 주력 산업을 겨냥한다는 점이다.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스마트 제조 등 모두가 한국이 강점을 가진 영역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선택지는 무엇인가? ‘중국을 이길 수 없다’는 비관도, ‘미국 편에 서면 된다’는 안일함도 답이 아니다. 중국이 설계한 무대에서 싸우면 백전백패다. 경쟁의 무대 자체를 바꿔야 한다.
첫째, ‘길목 기술’을 장악해야 한다. 전체 밸류체인을 잡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없으면 안 되는 10~15% 구간을 사수해야 한다. 초정밀 공정장비, 고신뢰 부품인 센서·모터·전력반도체·열관리시스템, 제조 공정 소프트웨어가 여기에 해당한다. 미국과 중국 양쪽의 러브콜을 받을 수 있는 기술을 전략적으로 개발해야 한다.
둘째, 프리미엄 제품이 아닌 프리미엄 시스템으로 경쟁해야 한다. 중국 제품은 외관·성능·스펙이 갈수록 한국 제품과 비슷해지거나 더 나아지고 있다. 어설픈 프리미엄은 결국 따라잡힌다. 로봇 한 대가 아닌 제어·안전·유지보수·데이터·AI를 결합한 솔루션을 팔아야 한다. 중국이 가장 취약한 영역이 문제 발생 시 책임지는 구조다. AI 성능이 아닌 AI 신뢰성과 거버넌스가 무기가 돼야 한다. 국방, 핵심 인프라, 고위험 산업에서 가격보다 파트너십과 책임이 우선한다. 여기가 한국이 유리한 영역이다.
셋째, 산업 컨소시엄으로 대응해야 한다. 중국은 국가 단위로 움직인다. 개별 기업으로 맞서면 반드시 밀린다. CES 2026의 ‘K-휴머노이드 맥스(MAX) 얼라이언스’가 좋은 사례다.
베이징 정상회담에서 한중 경제협력 강화가 논의됐지만, 진짜 승부는 회담장 밖에서 갈린다. 향후 10년의 진짜 리스크는 혁신의 부재가 아니라, 혁신을 지속 가능한 생산성 동력으로 전환하지 못하는 데 있다. CES 2026은 그 전환점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경쟁의 무대는 이미 바뀌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속도가 아닌 전략적 위치 선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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