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현철 논설실장
어쩔 수가 없다. 내년부터 지급되는 농어촌 기본소득을 둘러싼 ‘소동’을 보고 있노라면 박찬욱 감독이 자신의 블랙 코미디 영화에 붙인 이 제목이 떠오른다. 봇물이 터진 정부의 무상 포퓰리즘이 이제는 어쩔 수 없는 단계에까지 접어들었다.
이재명 정부의 ‘농어촌 기본소득 사업’은 농촌에 거주하는 주민들 1인당 월 15만원씩 2년간 지급하는 것이다. 4인 가구라면 월 60만원씩 연 720만원, 2년간 무려 1440만원을 정부가 지역사랑상품권으로 준다. 당초 경기 연천, 강원 정선, 충남 청양, 전북 순창, 전남 신안, 경북 영양, 경남 남해 등 7곳이 시범사업 대상으로 선정됐지만 국회의 내년 예산 심의 과정에서 충북 옥천, 전북 장수, 전남 곡성 등이 추가돼 10곳으로 늘었다.
이에 따라 관련 총 예산은 정부가 당초 제출한 예산안(1703억원)의 두배인 3409억원 규모다. 이가운데 중앙정부가 40%, 지자체가 도비 30%, 군비 30% 등 나머지 60%를 부담한다. 신안군과 영양군은 여기에 군비를 추가, 월 20만원씩을 지급할 계획이다.
혈세로 ‘공짜 돈’을 뿌리는 전형적인 재정 포퓰리즘이다. 사상 최대로 짠 내년 예산안을 국회가 심의할때 최소한 국민의힘은 반대해 상당부분 감액할 줄 알았다. 그런데 야당은 정부 예산안 728조원을 거의 깍지 않고 727조 9000억원으로 합의해줬다. 허구헌날 말로는 이재명 정부의 포퓰리즘을 비난하더니, 막상 예산안 심의때는 지역구 예산 늘리기에 바빴던 것이다. ‘도긴개긴’이다.
내년 예산은 올해 본예산 대비 무려 8.1% 늘어난 것으로, 1.8% 수준인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훌쩍 넘어선다. 빚을 내 나라살림을 하겠다는 뜻을 천명한 것이다. 지방선거를 염두에 둔 것임을 삼척동자도 안다.
국회 논의 과정에서 농어촌 기본소득 분담률이 30%로 뛴 광역자치단체는 ‘멘붕’이다. 박완수 경남지사는 “농어촌 기본소득 사업을 전면 시행하면 경남에서만 연간 2000억원이 넘게 든다”고 했다. 전체 광역자치단체 중 도비 지원 비율 30%를 맞춘 곳은 경기 뿐이다.
재정자립도가 하위인 군도 돈이 없어 난리다. 농어촌 기본소득 지급에만 순창군은 486억2000만원, 장수군은 368억8600만원이 들어간다. 기본소득을 주기 위해 농민수당이나 아동수당 등 복지수당을 줄이고, SOC(사회간접자본) 예산도 깎고 있다.
기본소득에서 탈락한 전국 72개 군도 아우성이다. “도대체 군수는 뭐했느냐”는 항의가 넘쳐난다. 말도 안되는 ‘동학농민운동 수당’으로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정읍시는 내년 1월 전 시민에 1인당 30만원을 민생회복지원금 명목으로 지급한다. 4인 가구라면 120만원이다. 무상소득 광풍이 번지는 ‘스필 오버’ 효과다.
이재명 대통령이 ‘기본 사회’를 외쳐온 만큼 앞으로 기본소득 지급 대상은 꾸준히 확대될 것이다. 이미 정부는 대통령 소속 자문위원회인 ‘기본사회위원회’ 구성도 추진 중이다. 소득, 주택, 노후 생활, 건강 등을 정부가 모두 보장해준다면 그야말로 ‘유토피아’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유토피아를 내세운 나라는 결국은 국가 파산이나, 개인의 자유와 자율이 사라진 전체주의 국가의 ‘디스토피아’로 이른다는 건 역사가 증명해주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이 향후 5년 동안 전 세계 비기축통화 국가 중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늘어 과도한 복지를 개혁하지 않으면 2050년 부채비율 130%에 이를 것이란 경고를 내놨다. 국가 파산 수준이다. 이런 경고조차 정부는 귓등으로 넘기고 있다. 세수를 초과해 나랏돈을 펑펑 쓰는 건 미래세대의 수입을 앞당겨 쓰는 ‘착취’다.
보수를 내걸은 국민의힘까지 이에 동조하는 마당에 최후로 남은 것은 재정적자 폭을 GDP의 일정 비율 이내로 제한하는 재정준칙을 법제화하고, 정부가 새로운 지출 사업을 추진할 때 그에 상응하는 재원 조달 방안을 의무화하는 페이고(Pay-As-You-GO, PAYGO) 원칙을 도입하는 길뿐이다. 이게 정부와 국회가 미래세대를 위해 해야 할 최소한도의 도리다.
강현철 논설실장 hckang@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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