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우진 산업부 재계팀장
“파두 사태 이후 기업공개(IPO) 문턱이 대폭 높아졌습니다. 내년에는 상장을 꼭 해야하는데 걱정이 앞섭니다.”
최근 사석에서 만난 한 모빌리티 스타트업 최고경영자(CEO)의 말이다. 이 스타트업은 당초 작년에서 올해로 상장을 연기했지만, 내년으로 다시 한 번 미뤘다. 이처런 상장 시점을 1~2년 뒤로 연기하면서 내년을 기약하는 스타트업들이 적지 않다.
코스피 지수는 상승세이지만 스타트업들에게는 남 얘기다. 가장 큰 요인으로는 2023년 데이터센터 반도체 기업 파두의 ‘뻥튀기 상장’ 이후 까다로워진 상장 심사기준이 꼽힌다. 이전 기술특례상장에서는 기술력 검증이 핵심이었다면 이제는 확실한 기술력과 함께 사업성과, 매출 규모 등 재무 기준이 엄격해졌다.
높아진 IPO 문턱은 스타트업의 성장을 저해하는 가장 큰 요인으로 꼽힌다. 단순히 스타트업들이 상장을 통해 자금을 더 조달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엑시트(투자금 회수)가 멀어질수록 투자를 꺼리게 되고, 이는 곧 스타트업의 생존과 직결된다. 국내 투자자들은 물론 해외 자본들의 유치도 제한한다.
그렇지 않아도 스타트업들은 자금 조달에 목말라 있다. 설상가상으로 테크 기업의 경우 엔지니어가 창업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들은 투자자관계(IR)에 대한 노하우가 부족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전문 인력을 영입하려고 해도 믿을 수 있는 인력풀이 제한적이고, 비용도 부담이다. 정부나 대기업의 금융지원 프로그램에 참여하려 해도 경쟁이 만만찮다. 이런 가운데 IPO 문턱까지 높아지면 투자자들을 모집하는데 어려움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스타트업 육성 미비는 이재명 정부가 제시한 ‘인공지능(AI) 3강’의 반대편에 서 있다. AI 분야가 워낙 방대한 만큼 대기업들의 천문학적 자금은 물론, 기술력을 가진 스타트업들과의 성장 사다리가 필수다. 미국·중국 등 주요국과의 경쟁에서 뒤쳐질 수 있다는 얘기다.
최근 대한상공회의소가 발표한 글로벌 유니콘 기업(자산가치 1조원)을 살펴보면 미국은 717개, 중국 151개, 인도는 64개를 보유했지만 한국은 고작 13개에 그쳤다. 13개 중에서도 AI 관련 스타트업은 리벨리온, 메가존클라우드 2곳뿐이다. 전 세계 유니콘 중 AI·IT 솔루션 관련이 36%인 점을 감안하면 한국은 AI 스타트업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방증한다.
투자유치 규모도 글로벌 기업과 큰 차이를 보인다. 한국은 라운드별 1000억원대 조달 사례가 손으로 꼽을 수 있는 정도다. 시리즈A 단계에서 1000억원 이상 모집한 사례는 현대차그룹이 인수한 스타트업 포티투닷(2021년, 1040억원)이 유일하며, 시리즈B 단계서도 1000억원대 모집 사례는 극히 드물다.
글로벌로 눈을 돌리면 그 규모가 달리진다. 유니콘까지 2.02년이 걸린 앤트로픽은 시리즈A서 1억2400만달러(약 1800억원)를, 시리즈B에선 5억8000만달러(약 8500억원)를 유치했다. 설립된 후 1.22년 만에 유니콘에 등극한 xAI는 시리즈B에서 60억달러(약 8조8500억원)를 조달했다. 핀란드 양자컴퓨터 기업인 ‘IQM 퀀텀 컴퓨터’도 시리즈B에서 3억2000만달러(약 4700억원) 등 모두 6억달러(약 8800억원)의 자금을 모집했다.
경제계에서도 IPO 완화의 필요성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무턱대고 IPO 규제를 풀자는 것이 아니다. 파두 사태를 겪은 만큼 더욱 세밀하고 꼼꼼한 심사는 필수이지만, 그렇다고 현재와 같이 옥죄는 것만이 정답은 아니다. 금산분리의 경우 최근 반도체 기업 지주사에 한해 규제를 완화하기로 했고, 2021년엔 공정거래법 개정으로 기업형 벤처캐피탈(CVC)이 도입됐다. IPO 규제 완화도 분명 ‘묘수’를 찾을 수 있다.
장우진 기자 jwj17@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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