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 장중 1480원 돌파

이창용 "위기라 할 수 있고 걱정 심하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7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점검 기자설명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한국은행 제공]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7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점검 기자설명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한국은행 제공]

"(지금 환율 수준은) 위기라고 말할 수 있고 걱정이 심하다. 금융기관 붕괴나 국가 부도 위험으로 이어지는 전통적인 금융위기는 아니지만, 환율이 물가와 성장 양극화를 자극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안심할 수는 없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17일 한국은행 별관에서 열린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 기자설명회에서 이같이 속내를 털어놨다. 그는 이날 심각한 표정으로 "환율이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고, 내부에서 이익을 보는 사람과 손해를 보는 사람이 극명히 나뉜다"고 말했다. 최근 고환율 흐름이 물가와 경제 전반에 미칠 영향을 우려한 발언이다.

이날 설명회는 한국은행이 하반기 물가 흐름과 전망을 점검하고 이를 시장과 설명하기 위해 마련됐다. 다만 최근 원·달러 환율이 1400원 대 후반 수준에서 움직이면서 설명회 현안 역시 물가보다 환율에 더 집중되는 모습이었다.

실제 외환시장에서는 고환율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원·달러 환율은 이날 장중 1480원을 넘어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전방위적 관세 인상으로 글로벌 불확실성이 확대됐던 지난 4월 이후 8개월 만이다. 주간 종가 기준으로도 지난 4월 9일 이후 처음으로 1480원선을 넘었다. 이날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2.8원 오른 1479.8원에 마감했다.

정부는 환율 안정을 위해 대응에 나섰다. 지난 15일 한국은행과 국민연금 간 650억달러 규모 외환스와프 계약을 1년 연장했고, 16일에는 주요 수출기업을 대상으로 환 헤지 확대를 요청했다. 하지만 환율 오름세는 꺾이지 않고 있다. 백약이 무효다. 일각에서는 연내 1500원 돌파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이 총재는 "환율 수준이 1400원대 초반부터 시작해 미국 달러화가 안정되는데도 한동안 계속 오른 데는 내부적 요인이 컸다"며 "12월에는 시장이 얇아 수급에 따라 환율이 과도하게 움직일 수 있다. 환율이 불필요하게 올라간 부분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변동성뿐 아니라 레벨(수준)에서도 조율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원화값 급락과 관련, 한은이 가장 우려하는 지점은 서민 생활과 직결되는 물가다. 한은은 현재와 비슷한 환율 수준이 이어질 경우 내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기존 전망치(2.1%)보다 0.2%포인트(p) 높은 2.3% 수준까지 올라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최근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다시 2%를 웃돌고 있는 상황에서 환율이 상방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다만 환율 상승이 곧바로 근원물가 전반으로 확산될 가능성은 제한적이라는 설명도 함께 내놨다. 수입 비중이 낮은 서비스 부문이 근원물가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구조상, 환율 전가 효과는 시차를 두고 일부 품목에 국한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지호 한국은행 조사국장은 "환율이 10% 오를 경우 평균적으로 물가를 0.3%p 끌어올리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이는 평균치일 뿐"이라고 말했다.

이날 이 총재는 환율 변동성을 키울 수 있는 요인으로 국민연금의 해외 투자 운용 방식도 언급했다. 그는 "국민연금의 해외 투자 규모와 환 헤지 개시·중단 시점이 시장에 너무 명확히 알려져 있다"며 "현재 해외 투자와 환 헤지 방식이 지나치게 투명해 시장의 기대를 왜곡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런 구조가 지속되면 환율이 한 방향으로 쏠리는 요인이 될 수 있다"며 "환 헤지 전략을 보다 덜 투명하고 전략적으로 운영할 필요가 있다는 문제를 제기해왔다"고 설명했다.

이 총재는 전날 관계 부처 및 국민연금과의 논의 결과도 언급했다. 그는 "환 헤지 방식의 유연화 필요성에 공감대가 형성됐고, 전략적 환 헤지로 전환하겠다는 논의가 이뤄진 것은 의미 있는 진전"이라고 평가했다.

국민연금의 환율 방어 동원에 대한 발언도 나왔다. 이 총재는 "국민연금도 중장기적으로 환율과 거시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함께 고려하는 자산 운용 체계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며 "이미 국민연금은 거시경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큰 손'이 된 만큼, 단순한 포트폴리오 다변화를 넘어 해외 투자가 국내 금융시장과 성장, 고용에 미치는 파급 효과까지 함께 고민해야 할 단계에 있다"고 말했다.

유진아 기자 gnyu4@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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