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인프라 수요 폭증에 공급망서 中 배제 효과 무력
데이터센터 기업들 독자 분산형 전력망에 ESS 필요
저렴한 가격으로 中 배터리업체들 ESS 공급선 선점
한국 배터리 3사 LFP 배터리 늘리면 ‘中 호시절 끝’
불공정한 거래와 기술 탈취 등을 들어 미국 등 서방이 중국을 공급망에서 배제하려 하고 있지만 인공지능(AI) 인프라 구축 붐은 이 같은 노력을 방해하고 있다.
특히 AI 데이터센터 가동에 필요한 배터리 에너지저장장치(ESS)와 각종 전력기기 수요가 폭증하면서 중국 업체들이 저렴한 가격으로 공급시장을 지배하며 수혜를 누리고 있다.
미국의 고율 관세에도 CATL, 선그로우(Sungrow)를 비롯한 중국의 배터리·전력기기 업체들이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서방 선진국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1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세계 최대 이차전지 제조사인 CATL과 테슬라에 이어 세계 2위 통합 에너지 저장 시스템 공급 업체인 선그로우의 올해 이익은 중국 및 해외 시장 수요를 바탕으로 급증했다.
그 덕분에 CATL과 선그로우 주가는 올해 각각 45%, 130% 상승했다.
이들 기업의 호황에는 세계적으로 활발해진 AI 데이터 센터 구축 확대의 영향이 컸던 것으로 분석된다.
번스타인의 에너지 저장 분야 애널리스트 브라이언 호는 FT에 “갑자기 전력 장비들을 둘러싼 쟁탈전이 벌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AI 데이터센터를 건설해 운영하려는 기업들은 이제 취약한 기존 전력망에 의존하는 대신 독자적 분산형 전력망을 적극적으로 구축하는 방향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이에 전기를 저장해 두었다가 필요할 때 원하는 만큼 꺼내 쓸 수 있는 ‘전기 저수지’인 ESS 구축 필요성이 커졌다.
아울러 독립적인 전력망을 구축하기 위한 변압기, 직류-교류 변환기 같은 전력기기들도 들어가야 한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세계 데이터센터가 2030년 945TWh(테라와트시)의 전력을 소모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2024년 415TWh의 배에 달하는 규모이자 현재 미국의 연간 전력 생산량의 5분의 1을 넘는 수준이다.
주목할 점은 미국이 이미 높은 관세율로 강하게 견제하고 있는데도 미국의 중국산 배터리와 전력기기 의존도가 유의미하게 줄어들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은 현재 중국산 ESS용 배터리에 30.9%의 높은 관세를 부과한다.
그럼에도 미국이 수입하는 배터리 및 에너지 저장 시스템의 대부분은 여전히 중국산이다. 미국 통계국 자료에 따르면 올해 1∼9월 미국의 수입 리튬이온 배터리 중 60%를 중국산이 차지했다. 2020년의 43%보다 크게 늘었다.
같은 기간 수입액도 150억달러로 2020년 한해 전체 수입액의 세 배를 넘었다.
중국 업체들은 이런 높은 미국의 관세 부담에도 경쟁이 극심한 자국 시장에서보다는 미국 시장에서 더 높은 수익률을 올리고 있다.
뱅크오브아메리카 글로벌 주식전략 공동 부문장인 매티 자오는 배터리와, 직류-교류 변환기로 등으로 구성된 ESS의 경우 수출용 이익률이 내수보다 3∼5배 높은 것으로 추산하면서 “관세를 감수해도 수출을 계속하는 편을 선택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중국 기업들이 ‘트럼프 관세’를 뚫고 미국 시장에서 계속 팔리는 이유는 가격 대비 성능(가성비)이 높은 데서 나온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중국 업체들의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는 에너지 밀도가 낮지만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한국 배터리 3사가 경쟁력을 갖고 있는 니켈코발트망간(NCM 삼원계) 배터리보다 가격이 저렴하다. 이 때문에 미국과 유럽의 데이터센터 기업들이 싼 중국산 LFP 배터리를 선호한다.
호주뉴질랜드은행(ANZ)의 중화권 수석 이코노미스트 레이먼드 영은 CATL 등 중국 기업들이 안전하고 수명이 긴 LFP 배터리 분야에서 ‘구조적 우위’를 갖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관세와 탈동조화 논의에도 불구하고 LFP 배터리에 대한 수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은 전략 경쟁 상대인 중국에 배터리를 과도하게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확고하게 갖고 있어 이 같은 중국산 배터리 전성시대가 오래 계속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트럼프 행정부는 당장 내년 중국산 배터리 관세를 30.9%에서 48.4%로 인상할 계획이다. 또 중국산 부품 비중이 높은 에너지 저장 시스템을 구축했을 때는 연방정부의 세액공제를 받기 어렵게 된다.
중국산 ESS의 가장 현실적 대안이 될 수 있는 한국산 ESS의 대량 투입 시기가 점차 가까워지고 있다는 점도 미국 시장에서 중국산 비중이 유의미하게 낮아질 수 있는 요인으로 꼽힌다.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 한국 배터리 3사는 그동안 에너지 밀도가 높고 저온 날씨에 강해 고급 배터리로 평가받는 NCM 배터리에 치중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LFP 배터리 생산도 시작했고 내년에는 비중이 큰폭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한국업체들은 기가와트(GW) 단위의 초대형 주문을 잇달아 따내면서 이르면 내년 말부터 양산 공급 체계를 갖추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규화 대기자(david@dt.co.kr)실시간 주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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