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주택 정책이 '숫자'에 갇혔다. 135만호 공급 계획은 부동산 시장 안정을 향한 강력한 메시지처럼 보이지만, 실제 공급 주체들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공급되느냐"는 질문에 제대로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김이탁 신임 국토교통부 1차관에게 주어진 숙제는 이 간극을 좁히는 일이다.
시장이 요구하는 것은 135만호라는 공급 숫자가 아니다. 수요자들은 이미 과거 정부에서 주택 공급 목표 숫자가 실제 공급으로 이어지지 못 하는 과정을 지켜봤다.
이 때문에 숫자를 더 쌓는 것이 아니라, 공급이 실제로 작동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2027년 송파구에 1만5000가구 공급'처럼 자치구별·연도별 구체적 타임라인이 제시돼야 시장은 이를 정책 신호로 받아들일 수 있다.
부동산 업계에서는 단기간 공급 속도를 높일 수 있는 대안으로 3기 신도시의 용적률 상향이 거론된다. 현재 3기 신도시의 평균 용적률은 약 200% 수준으로 1기 신도시(약 300%)에 비해 낮다.
용적률을 300% 수준으로 올리고 과도하게 설정된 자족용지 비율(13.8%)을 일부 축소해 주택용지로 전환하면 상당한 물량을 확보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공급할 새 땅을 찾는 것보다 이미 확보된 땅의 활용도를 높이는 것이 속도 면에서는 가장 현실적인 선택지라는 것이다. 도심 공급의 핵심 축인 재건축 규제를 푸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 특히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는 현실과 맞지 않아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공사비는 2018년 대비 약 30% 급등했지만, 부담금 산정 기준은 이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어 사업성이 좋지 않다 보니 상당수 재건축 단지가 사업을 미루거나 중단하는 상황이다.
다세대·다가구주택 등 비아파트 공급 확대도 필요하다. 비아파트 주택 공급을 늘리기 위해서는 비아파트 주택에 대한 보증금 보증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건설·매입 임대사업자의 금융 지원을 통해 공급 진입 장벽을 낮추는 것도 방법이다.
주거용 오피스텔 역시 도심 소형 주택 공급의 중요한 축이 될 수 있다.
주거용 오피스텔 취득세를 주택 수준으로 완화하고, 일정 물량까지는 주택 수 산정에서 제외하는 등 보다 과감한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를 통해 실수요자의 선택지를 넓히고, 도심 소형 주택 공급을 실질적으로 늘릴 수 있다는 것이다.
주택 정책의 성패는 얼마나 많은 공급 목표 수치를 제시했느냐에 있지 않다. 언제 공급되고, 실제로 시장에 나올 수 있는지에 대한 시장의 신뢰가 핵심이다.
박상길 기자 sweatsk@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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