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인공지능(AI) 거품 이슈에 따라 주식시장 변동성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AI 관련 기업들의 재정 문제로 인해 또 한번 거품론이 화두에 떠올랐다.
앞선 AI 거품론이 빅테크 기업들의 밸류에이션에 집중됐던 반면, 자금 조달 부담과 보험 성격의 파생금융상품 판매 증가 등이 새로운 문제로 부상했다. 빅테크 기업들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도 급락했고, 원·달러 환율은 1480원을 눈앞에 두고 있다.
15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메타와 아마존, 알파벳, 오라클 등 4개사가 올해 가을 AI 프로젝트를 위해 융통한 자금은 880억달러(한화 약 129조7000억원)에 달했다.
JP모건은 투자 적격 등급의 기업들이 조달하는 AI 관련 자금이 2030년경에는 1조5000억달러(약 2210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AI 거품론은 2022년 챗GPT 등장으로 AI 붐이 시작된 이후 꾸준히 제기됐지만, 당시 거품론은 기업의 매출과 주가 고평가 등이 주도했다. AI 관련 투자가 실적으로 이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주가가 과도하게 오르자 주가수익비율(PER)이 과거 닷컴버블과 유사한 수준까지 상승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후 AI 관련 기업들의 실적이 개선되고, 수익 역시 급증하며 일단락되는 듯 했지만 최근 발표된 오라클의 잉여현금흐름과 신용부도스와프(CDS) 등이 부각됐다.
한지영 키움증권 연구원은 "오라클 컨퍼런스콜에서 잔여계약의무가 증가했다고 언급하는 등 긍정적인 코멘트가 있었지만 이들의 CDS 프리미엄 급등과 같은 재정 및 수익성 우려를 완전히 해소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CDS는 기업이 부도를 냈을 때 돈을 지급하는 금융 상품이다. 업황 악화 위험에 대한 보험 역할을 한다.
오라클은 2026회계연도 2분기 실적 중 클라우드 인프라 매출과 클라우드 판매 매출이 모두 시장 예상치를 밑돌았고, 회사채 매도 수요도 급증했다. 이에 오라클 리스크에 대비하려는 헤지 수요가 증가하며 오라클의 CDS 가격은 2009년 이래 역대 최고치로 치솟았다.
AI 칩 업체 브로드컴 주가도 향후 제품 수주 잔고가 실망스럽다는 평가에 지난 12일 약 11.4% 급락했다. AI 칩 대장주 엔비디아 주가도 AI 거품론이 부각하자 지난주에만 주가가 5% 넘게 빠졌다.
이 같은 우려에 오라클뿐 아니라 AI 관련 기업들의 CDS 거래량이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AI를 주도하는 미국 테크그룹과 연계된 CDS의 거래량이 올해 9월 초부터 최근까지 약 90% 늘었다.
이들 기업과 연계된 CDS는 AI 낙관론이 대세로 자리잡았던 올해 초엔 수요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주요 업체들이 AI 연산용 반도체 구입에 대규모 자금을 투입하고, 데이터센터 증설을 단행하면서 신용 위험 우려가 커진 것으로 풀이된다.
AI 기술주의 성장세가 둔화세를 보이는 점도 AI 거품론을 부추기고 있다. 여전히 AI 산업의 주가 상승은 폭발적 성장세에 대한 기대감이지만, 이 믿음이 흔들리고 있는 셈이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애플과 엔비디아, 테슬라 등 미국 7대 기술주의 내년 순이익 증가율이 18%에 머물 것으로 봤다. 최근 4년 사이 최저치다.
특히 메타와 마이크로소프트는 주주환원 조처로 내년 잉여현금흐름이 '마이너스'(-)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다. 알파벳도 손익분기점 수준을 유지하는데 그칠 것으로 봤다.
이 같은 글로벌 AI 기업들에 대한 평가가 악화하면서 코스피 역시 영향을 받았다. 이날 코스피는 전장 대비 1.84% 내린 4090.59에 장을 마쳤다. 특히 전체 시총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각각 3.76%, 2.98% 하락하며 지수를 끌어내렸다.
환율도 휘청였다.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장보다 2.7원 내린 1471원으로 오후장을 마쳤지만, 당국의 개입에도 1470원 아래로 내려오지 못하는 등 불안한 매크로 환경에 원화 약세가 이어지고 있는 모양새다.
다만 AI 거품론의 반론도 여전한 상황이다. 1990년대 후반 닷컴 버블과 비교했을 때 AI 종목들의 밸류에이션이 과도하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블룸버그는 "테크 종목 중심의 증시 지표인 나스닥100은 현재 예상 수익 대비 26배 수준에서 거래된다"며 "닷컴버블 때는 80배 이상으로 치솟았다"고 평가했다. 이어 "엔비디아, 알파벳 등 개별 대표 종목의 주가 역시 예상 수익 대비 30배 이하로 지금의 AI 주목도를 고려하면 비교적 합리적이라는 것이 시장의 평가"라고 덧붙였다.
김남석 기자 kns@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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