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경 서울과학기술대 IT정책전문대학원 교수

인공지능(AI) 규제법의 시초이자 종주국인 유럽이 최근 AI 및 개인정보에 대한 규제를 대폭 완화할 것임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EU(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지난 11월 18일 고위험 AI 규제의 시행을 16개월 유예하는 개정안을 제안했다. 이제 2026년 1월 시행될 한국의 ‘AI 기본법’이 명실공히 세계 최초의 전면 시행이 된 것이다.

AI 기본법의 주요 골자는 AI의 진흥을 위한 정책 기반을 확고히 하는 것이나, 일부 규제내용이 오히려 이 법의 취지를 몰각시킬까 우려스럽다. 특히 AI 생성물에 대하여 무조건 1회 이상 인공지능 생성 사실을 안내 문구, 음성 등으로 제공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는 정부의 시행령안은 K-콘텐츠 및 AI 산업 생태계에 혼란만을 가중시키며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

게임·드라마·영화·음악·애니메이션·웹툰 등 창작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AI가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창작자가 직접 그린 캐릭터의 다양한 이미지를 AI에 학습시켜 해당 캐릭터 전용 파일을 만든 후, 작가가 그린 스케치와 스토리를 AI에 넣고 애니메이션으로 변환하도록 명령해 어색한 부분을 AI를 통해 혹은 직접 보정한다고 가정해 보자. 이 과정에서, Gemini, Midjourney, Stable Diffusion, AI 업스케일러 등 다양한 AI를 사용하게 된다. 이러한 작품을 AI 생성물로 볼지, 아니면 AI를 이용한 인간의 작품으로 볼지는 여전히 논란 중이다.

최근 미국 저작권청이나 중국에서는 AI를 사용했다 할지라도, 인간이 반복적으로 프롬프팅을 입력하고 선택하며 후속 보정작업 등을 한 경우 AI생성물이 아닌 인간의 창작물이 될 수 있다고 하였다. 이처럼 어디까지가 AI 생성물이며 인간의 창작물인지 경계가 모호한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에 대하여 일률적으로 ‘인공지능 생성 사실을 안내 문구, 음성 등으로 제공’하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러한 AI 생성물에 대한 고지 혹은 표시 의무의 도입 이유는 딥페이크로 인한 인격권 침해, 허위정보의 범람 등을 막기 위함이다. 그런데 정부의 시행령안에 따르면 오히려 딥페이크에 대해서는 예술적, 창의적 표현물에 대한 예외를 둠으로써 그 규제 수위를 낮추고 있다. 딥페이크가 아닌 AI 생성물에 대하여 이러한 과도한 의무를 부과하면서 딥페이크보다 더 강력한 규제를 실시하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우리가 벤치마킹한 EU AI법은 딥페이크가 아닌 인공지능 합성 콘텐츠에 대해서는 기계가 판독 가능한 형식의 표시만 요구하고 있다. 또한 미국 캘리포니아 주법의 경우, 미국 콘텐츠 업계 혼란 및 글로벌 경쟁력을 고려해 ‘이용자가 생성한 것이 아닌 비디오게임, 텔레비전, 스트리밍, 영화 또는 상호작용 경험만을 제공하는 모든 제품, 서비스, 인터넷 웹사이트 또는 애플리케이션’에 대해서는 AI 투명성 의무를 적용 면제하고 있다.

결국 시장에서 소비자는 불필요한 가시적 표시를 결과물에 부착해야만 하는 한국의 AI 서비스를 이용하기 보다는 과도한 표시를 하지 않는 해외 사업자의 서비스를 이용하게 될 것이다. 한국 사업자만 EU, 미국보다도 강력한 과도한 표시 의무를 준수한다면, 앞으로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되는 AI 활용 콘텐츠 산업에서 한국의 글로벌 경쟁력은 요원해질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러한 시행령 내용은 당초 정부가 간담회 및 의견수렴에서 공개했던 내용과 전혀 다른 내용을 포함시킨 것이다. 이는 공개 토론 및 각계 의견수렴을 통해 법률의 합리적 시행을 도모하겠다는 정부의 당초 방침과 다르다.

K-콘텐츠의 경쟁력은 AI를 얼마나 잘 이용하는지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부는 이러한 과도한 표시 의무 규제가 K-콘텐츠 생태계에 미칠 부정적 영향을 엄중하게 인식하고 AI 생성 콘텐츠에 대한 불합리한 표시 규제를 재고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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