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 미화’로 내부 동요 차단 나섰나
러시아 쿠르스크 지역에 파병돼 지뢰 제거 임무를 수행했던 북한 공병부대가 귀국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성대한 환영을 받았다. 북한 매체는 ‘승리의 귀환’과 ‘혁혁한 전과’를 강조했지만, 군 안팎에서 제기되는 파병의 정당성과 병력 희생에 대한 불만을 차단하려는 정치적 행보라는 분석이 나온다.
조선중앙통신은 13일 “해외 작전지역에 출병하였던 조선인민군 공병부대 지휘관들과 전투원들이 부과된 군사 임무를 성과적으로 완수하고 귀국했다”며, 전날 평양 4·25문화회관 광장에서 제528공병연대 환영식이 열렸다고 보도했다. 행사에는 노동당 전원회의 참석자, 군 수뇌부, 장병과 평양 시민, 파병 부대 가족들이 대거 동원됐다.
김 위원장은 연설에서 이 부대가 “전우들이 목숨 바쳐 해방한 러시아 연방 쿠르스크주에서 공병 전투 임무를 수행해 방대한 위험 지대를 단기간에 안전지대로 전변시켰다”고 치하했다. 이어 “고귀한 피와 땀, 값비싼 희생은 영원히 헛되지 않을 것”이라며 전사자 9명을 공식 언급했다.
북한이 러시아 파병 과정에서 구체적인 전사자 수와 파병 기간을 공개한 것은 이례적이다. 이는 파병 사실이 이미 내부에 광범위하게 알려진 상황에서, 오히려 최고지도자가 직접 나서 희생을 ‘영광’으로 규정하지 않으면 군과 주민 사이의 동요를 수습하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김 위원장은 특히 “조국에 바쳐지는 생을 희생이 아니라 영광으로 간주하는 사상적 무장이 우리 군의 가장 위력한 무기”라고 강조하며, 첨단 무기를 갖춘 서방 군대와의 비교까지 꺼냈다. 군사적 성과보다 사상적 충성심을 반복적으로 부각한 대목은, 파병의 실질적 이득에 대한 의문이 내부에서 제기되고 있음을 방증한다는 분석도 있다.
실제로 북한은 우크라이나 전쟁과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는 러시아 쿠르스크 지역에 병력을 파병해 지뢰 제거 임무를 수행했고, 이 과정에서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주민들 사이에서는 “왜 남의 나라 전쟁에 우리 군인이 목숨을 바쳐야 하느냐”는 불만이 확산됐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이 같은 분위기 속에서 북한은 귀국 환영식과 함께 공병연대에 자유독립훈장 제1급을 수여하고, 전사자들에게는 ‘공화국영웅’ 칭호를 추서했다. 김 위원장은 직접 ‘추모의 벽’에 헌화하고 유가족을 만나는 모습도 연출했다. 최근에는 러시아 파병 전사자들을 기리는 추모관을 평양에 착공한 사실도 공개됐다.
전문가들은 이번 행사가 군인들의 희생을 ‘영웅 서사’로 포장해 체제 결속을 유지하려는 전형적인 내부 관리용 이벤트라고 평가한다. 한 대북 전문가는 “파병 성과를 대대적으로 선전하지 않으면, 의미 없는 희생이라는 인식이 확산될 수 있다”며 “주민들의 분노와 허탈감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목적이 강하다”고 말했다.
아울러 러시아를 향해선 북한군의 공헌과 희생을 공개적으로 부각함으로써, 향후 군사·경제적 보상을 요구하는 무언의 압박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김정은 정권이 전장의 성과보다 ‘희생 관리’에 더욱 신경 쓰는 모습은, 이번 파병이 북한 내부에서도 결코 부담 없는 선택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박양수 기자(yspark@dt.co.kr)실시간 주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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