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초반부터 먹고 살만한 시대가 열리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고기를 넉넉하게 먹을 수 있는 시절은 아니었다. 한편에선 5공 반대 시위가 불붙었지만 먹고 사는 것 만큼은 과거와 달라졌다. 3저(저유가·저달러·저금리) 덕분이었다. 따지고 보면 5공은 유신정권의 후광으로 그렇게 운이 좋았다.
대전에선 해가 질 무렵이면 대학생들이 시내로 쏟아져 나왔다. 그 중 꼭 지나가야 하는 곳이 어느 닭 집이었다. 치킨이라는 개념이 없을 때였다. 통닭 몇 마리가 지글지글 진열장 같은 곳에서 돌아가며 익어가고 있는 데 누구 하나 먹으려 들어가지 못했다. 군침만 삼켜야 했다. 어머니에게 하루 용돈 1000원을 받아 받아쓰는 시절이었다.
그게 40년 전 일이다. 당시는 잘 알지 못했다. 맛이 명불허전, 기가 막혔다고 한다. 알고 보니 김지미 영화배우와 나훈아 가수의 영업장이었다. 김 영화배우는 6·25 때 피난 와 대덕구 신탄진에서 살았다.
몇 해 뒤 그 통닭을 먹을 일이 생겼다. 번듯한 회사에 취업한 선배가 후배들을 불러 모아 제대로 쐈다. 폭풍 흡입했는 데 후유증도 있었다. 너무 먹어 다들 화장실을 들락 거렸다.
그날 김지미 선생을 먼 발치에서나마 볼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영화배우 뿐아니라 K-치킨 원조인 선생이 천국에서도 통닭을 맛있게 드시길 바란다.
세종=송신용 기자(ssysong@dt.co.kr)[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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