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일본 총리의 ‘대만 유사시 개입’ 시사 발언이 촉발한 중국과 일본 간 갈등이 오키나와(沖繩)로 향하고 있다. 오키나와는 미·일 동맹의 핵심 거점으로, 대만 사태가 발생하면 미·일 연합 전력의 출발점이 되는 전략적 요충지다. 중국이 최근 이 지역을 흔드는 것은 일본의 대만 개입 의지를 사전에 꺾고 미·일 동맹의 응집력을 흔들려는 전략적 계산과 맞닿아 있다. 긴장이 높아지는 대만해협에서 누가 주도권을 쥐느냐를 둘러싼 경쟁이 오키나와를 무대로 본격화되는 분위기다.
◆중·일 군사긴장 고조
일본 방위성에 따르면 중국 항공모함 랴오닝(遼寧)함 전단은 지난 5일 동중국해에서 출발해 오키나와 본섬 남서쪽과 미야코지마(宮古島) 사이를 지나 태평양으로 진출했다. 이후 다시 오키나와 본섬 동쪽과 미나미다이토지마(南大東島) 사이를 통과해 가고시마(鹿兒島)현 기카이지마(喜界島) 동쪽 약 190㎞ 해역까지 이동했다. 방위성이 공개한 랴오닝함 항해 경로를 보면 오키나와 본섬을 ‘ㄷ’자 형태로 에워싸듯 이동했다.
특히 오키나와섬과 미나미다이토지마가 있는 다이토(大東) 제도 사이 해역에서 중국군 함재기 이착륙이 확인됐다. 랴오닝함에서는 지난 6~7일 이틀 동안 전투기와 헬리콥터가 각각 약 50회 이착륙했다. 이에 일본은 호위함 ‘데루즈키’를 투입해 랴오닝함을 경계·감시하고, 중국 함재기 움직임에 맞춰 자위대 전투기를 긴급 발진시켰다.
앞서 지난 6일 랴오닝함에서 이륙한 J-15 전투기가 오키나와 인근 공해상에서 일본 항공자위대 F-15 전투기를 상대로 두 차례에 걸쳐 레이더 조사(照射·겨냥해서 비춤)를 했다. 레이더 조사는 미사일 발사 준비 동작으로 이해하면 된다. 따라서 단순한 기술적 행위가 아니라, ‘무력 사용 직전 단계’로 간주되는 매우 위험한 행동이다. 일본은 우장하오(吳江浩) 주일 중국대사를 초치해 매우 유감스럽다는 뜻을 전하며 강하게 항의했다. 반면 중국은 일본 전투기가 먼저 훈련 구역을 침범했다고 맞섰다.
◆“오키나와는 일본 땅이 아니다”
다카이치 총리는 “대만 유사시는 일본의 존립위기 사태가 될 수 있다”고 밝히며 사실상 자위대의 개입 가능성을 공식화했다. 이는 일본이 역내 안보 문제에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자, 미국과의 전략적 보조를 강화하겠다는 의미로 읽혔다. 중국은 이를 ‘적성국의 군사 개입 선언’으로 받아들였고, 곧바로 외교적·군사적 대응에 나섰다. 그 흐름의 정점에 있는 것이 바로 오키나와다.
오키나와를 둘러싼 논쟁의 뿌리는 19세기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오키나와는 본래 독립된 류큐(琉球) 왕국이었다. 류큐 왕국은 15세기부터 독립된 해양 왕국으로 존재하면서 중국 명·청 왕조에 조공을 바치고 책봉을 받았다. 동시에 17세기 초부터는 일본 규슈(九州) 남부 사쓰마(薩摩)번의 간섭을 받는 이중 외교 체제를 유지했다. 사쓰마는 지금의 가고시마 지역이다.
1609년 도쿠가와(德川) 막부의 승인 아래 사쓰마번은 약 3000명의 병력을 동원해 류큐를 침공했다. 이유는 임진왜란 때 군랑미 지원 협조를 거부했다는 것이었다. 한달 만에 사쓰마군은 수도 슈리성을 점령했다. 이때부터 류큐 왕국은 사쓰마에 조공을 바치고 무역·외교를 통제받는 ‘반(半)속국’ 신세가 됐다.
메이지유신 뒤 일본 정부는 중앙집권 국가 건설을 명분으로 류큐 왕국의 해체를 본격 추진하기 시작했다. 메이지 정부는 1879년 군대를 파견해 마지막 국왕 쇼타이(尙泰)를 도쿄로 압송했다. 이른바 ‘류큐 처분’이다. 왕국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오키나와현이 설치됐다. 일본의 일방적 병합이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오키나와를 실질적으로 통치하다가 1972년 일본에 반환했다.
◆중국의 일본 흔들기 전략
오늘날의 국제 질서에서 오키나와는 일본 영토다. 그럼에도 중국은 오키나와 문제를 다시 끄집어냈다. 중국의 계산은 다층적이다.
첫째, ‘대만 유사시 일본의 군사 행동에는 명분이 없다’는 프레임을 만들어 일본의 외교·안보 행동의 정당성을 약화시키려는 목적이 있다. 중국의 메시지는 이렇다. “오키나와가 실은 일본 땅이 아닌데, 어떻게 대만 문제에 끼어들 자격이 있느냐”는 것이다. 일본이 대만 사태 개입 의지를 드러내자 행동 근거 자체를 흔들기 위해 오키나와 주권 문제를 재점화한 것이다.
둘째, 대만 유사시 주도권 확보 및 해양 패권을 겨냥하고 있다. 일본이 대만을 돕기 위해 움직이려면 출발점은 바로 오키나와다. 대만에서 600km도 떨어지지 않은 오키나와는 미·일 동맹의 심장부다. 일본 전역에서 가장 큰 미군 공군기지인 가데나(嘉手納) 기지에는 F-15 전투기, 정찰기 등이 상시 배치돼 있다. 미 해병대의 지상군·항공단이 주둔하고 있는 후텐마(普天間) 기지 등은 유사시 대만해협으로 가장 빠르게 전개될 수 있는 전력으로 평가된다. 미 해군은 화이트비치 해군기지를 중심으로 오키나와 일대 해상 작전을 지원하고 있다.
일본 역시 오키나와를 자위대 운용의 최전선으로 삼고 있다. 항공자위대 부대, 지대공 미사일(패트리어트) 부대 등이 이 지역에 배치돼 있다. 따라서 일본이 대만 지원에 나선다면 중국 입장에서는 오키나와는 최대 ‘군사적 장애물’이 된다.
나아가 중국 해군은 미국의 오랜 중국 봉쇄선인 제1도련선(규슈-오키나와-대만-필리핀을 잇는 라인)을 돌파해 서태평양으로 진출하려 한다. 오키나와는 그 첫 번째 장벽이다. 중국이 이 선을 넘어오면 미군의 전역 배열은 근본적으로 달라지고, 일본의 안보 구도 역시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다.
셋째, 다카이치 내각의 정치적 부담을 높이려는 계산도 깔려 있다. 일본 국내적으로 오키나와 문제는 늘 민감한 사안이다. 오키나와에는 미군기지가 집중되어 있고 이에 대한 주민 반발이 만만치 않다. 역사적 논쟁까지 얽혀 있다. 이런 점에서 중국의 ‘오키나와 카드’는 일본 중앙정부와 오키나와 지역사회 사이에 존재해온 갈등 구조를 다시 자극하는 효과가 있는 것이다. 이런 지점을 중국이 파고들면 일본 정부는 대만 문제 대응뿐 아니라 자국 내 여론 관리에서도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
◆대만해협의 파고, 韓은 방관자 아니다
이를 보면 중국의 움직임은 단순한 외교적 공세나 역사 논쟁 차원을 넘어선다. 역내 정치·안보 판을 뒤흔들기 위한 일종의 ‘전초전’이다. 중국은 오키나와를 지렛대로 삼아 일본의 대만 개입 의지를 흔들고, 미·일 동맹 결속을 약화시키며, 동시에 동중국해·서태평양으로의 전략적 확장을 정당화하려 한다.
이는 대만해협의 긴장과 직결되고, 동북아 안보 질서 전반에 파급력을 갖는다. 결국 오키나와를 둘러싼 갈등은 과거사가 아니라 현재진행형의 전략 경쟁이다. 따라서 중국의 압박은 앞으로 더 집요하고 노골적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
이런 구조 속에서 한국은 결코 방관자가 될 수 없다. 중국이 오키나와를 흔들 때마다 그 충격은 일본만이 아니라 한국에게로 확산된다. 대비가 늦으면 한국도 흔들린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키나와’라는 지점 너머로 확장된 전략적 시야다.
박영서 논설위원(pys@dt.co.kr)실시간 주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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