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수지 보다 자본이동·해외 금융 투자 증가가 환율에 더 영향

환율, 고공행진 불가피… 달러당 1200원 시대로 돌아가긴 어려워

한국경제, ‘빚’·‘저출산·고령화’·‘사회 분열’이라는 ‘3D’에 발목

“李정부 6대개혁 옳은 방향… 독일 슈뢰더 정부의 길 가야 성공”

관세협상, 트럼프가 美진입 하이웨이 깔아준 것… 경쟁력 높여야

전광우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 박동욱기자 fufus@
전광우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 박동욱기자 fufus@

[]에게 고견을 듣는다

전광우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

“원·달러 환율이 1470원대로 치솟은 것은 무역수지가 아닌 국제 자본이동과 해외 금융투자가 환율에 더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환율의 고공행진은 당분간 불가피하며, 과거 달러당 1100원이나 1200원대 환율은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11일 서울 삼성동 무역센터 집무실에서 만난 전광우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은 최근 우리 경제의 최대 이슈인 환율 문제부터 꺼냈다. 그는 환율 안정을 위해 국민연금이 해외에서 직접 채권을 발행, 달러를 확보하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으나 이는 ‘환율 조작국’이라는 미국의 의심을 살 수 있어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전했다.

이어 우리 경제는 빚(Debt)·저출산·고령화(Demographic)·사회적 분열(Division)이라는 ‘3D’에 발목이 잡힌 상태라며 이런 상황에서도 절박감이나 위기의식이 부족한 게 올해 7% 이상 성장이 예상되는 대만과의 성장률 격차를 낳았다고 진단했다. 또 이재명 정부가 내걸은 노동·공공·연금 등 6대 개혁은 옳은 방향이라며 구조개혁에 성공하려면 진보 정부이면서도 노동과 연금 개혁을 이뤘던 독일 슈뢰더 총리의 길을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한미 관세 협상과 관련해선 트럼프가 세계 최대인 미국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하이웨이를 깔아준 것이라며 방어적이고 소극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일본처럼 경제와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 제고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전 이사장은 ‘국제 경제금융통’으로 통한다.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재임 중 투자 다변화를 통해 기금운용 패러다임의 선진화를 이뤘다. 외교통상부 국제금융대사에 이어 이명박 정부 시절 제1대 금융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면서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의 성공적 조기 극복에 핵심 역할을 담당했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와 미국 인디애나대에서 경제학 석사와 경영학 석·박사를 취득 후 미시간 주립대 경영학 교수를 지냈다. 세계은행에서 금융 담당 수석 이코노미스트로 15년간 활동했다. 1998년 귀국해 경제부총리 특보와 국제금융센터 원장으로 활동하며 외환위기 극복에 힘을 보탰다. 우리금융그룹 부회장, 딜로이트 코리아 회장, 포스코 이사회 의장도 역임했다. 현재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과 K-정책플랫폼 이사장으로 재임 중이다. .

대담 = 강현철 논설실장

- 먼저 우리 경제의 최대 이슈인 원·달러 환율에 대해 여쭙겠습니다. 최근 달러당 1470원대를 오르내리는 원화 환율은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연평균 환율보다 높은 상태입니다. 이런 환율 수준이 일각에서 말하는 ‘뉴노멀’이 될까요 아니면 일시적인 현상일까요?

“뉴노멀, 새로운 구조적 장기적 추세로 자리를 잡는 거냐 아니면 일시적 수급 불균형으로 생기는 문제냐의 중간쯤 되지 않나 싶어요. 최근 수급 측면에서 달러 수요가 여러 요인으로 급속도로 늘고 있습니다. ‘서학개미’처럼 민간 투자자들이 미국 증시나 해외로 나갑니다. 또한 세계 굴지의 기관투자자인 국민연금도 1조달러에 달하는 전체 자산의 50% 이상을 해외 자산으로 갖고 있습니다. 국민연금이 해외 투자를 확대하는 건 가입자들의 노후를 지원하기 위해 바른 선택이라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절반을 투자했더라도 시가를 반영하는거니 투자 수익이 나면 해외 비중이 올라갈 수 있습니다. 또 하나는 이런저런 형태로 자본의 유출, 이탈이 있습니다. 중장기적으로 볼 때 달러가 더 강세로 가고 원화가 약세가 된다면 이런 유출은 이어질 겁니다. 그런데 이런 상태가 잠시 있다 사그러질 상황은 아닙니다. 특히 자산운용 측면에서 해외 자산 투자가 늘어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종합적으로 보면 달러당 1500원을 깨고 한 방향으로 간다는 것보다는 과거의 1100원, 1200원으로 돌아가기 쉬운 상황은 아닙니다. 지정학적 불안 문제도 있고. 원화의 약세 기조는 좀 이어질 가능성이 더 커 보입니다.”

- 수출도 잘되고 경상수지도 흑자인데 왜 이런 고환율 현상이 벌어지는 겁니까?

“환율에 무역수지, 경상수지가 큰 영향을 미치는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근자로 오면서 또 앞으로의 추세를 보면 무역수지와 관련된 트레이드, 통상 관련 이슈보다 금융 투자와 자본이동 이슈에 따라 환율이 더 많이 움직이는 상황이 됐습니다. 각국의 금리 차이때문에 자금이 이동합니다. 예를 들어 일본이 금리를 올리면 다른 조건이 같다면 일본에 투자를 하게 되는 겁니다. 달러가 강세인 이유 중 하나는 미국의 기준금리가 주요국 중 가장 높기 때문입니다. 또 지정학적 상황 등도 종합적으로 봐서 국제적으로 자본이동이 이뤄지기 때문에 전통적인 무역 통상 요인만 갖고 환율을 봐서는 안됩니다. 따라서 달러 수급을 개선하려면 국내 시장을 선진화하는 노력을 더 적극적으로 해야 합니다.”

- 정부는 기재부를 중심으로 TF를 구성하는 등 환율 안정을 위한 총력전에 나서고 있습니다. 국민연금을 동원하는 방안도 강구 중인데 어떻게 해야 환율을 안정시킬 수 있을까요?

“크게 구조적 장기적 방법과 단기적 방안이 있을 수 있습니다. 다만 신중하게 접근을 해야 될 것은 정부가 인위적으로 시장에 간여한다는 신호를 줘서는 안됩니다. 최근 국민연금으로 하여금 외화채권을 발행하게 해 확보한 달러를 해외에 투자하는 방안이 강구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습니다. 국민연금이 국내 시장에서 달러를 사 달러 가격을 부추기고 원화 환율을 올리는 걸 막자는 것이죠. 듣기에는 상당히 의미가 있어 보이지만 자칫 오해의 소지가 있으며, 부담 요인들을 미리 감안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합니다. 미국 재무부는 한국을 환율 조작국 렌즈로 보고 있는 상황입니다. 기재부가 나서 환율을 매니지(관리)한다는 느낌을 준다면 부작용이 있을 겁니다. 국민연금이 자율적으로 자산 운용 차원에서 달러를 기채(起債)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바람직합니다. 국민연금이 해외에서 기채하는 것은 대체로 캐시 플로, 자금 흐름에 어려움이 있을 때입니다. 캐나다의 CPPIB나 일본의 GPIF 연기금도 기채 경험이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이는 예외적인 상황입니다. 또한 기채를 하더라도 나중에 달러 가격이라든지 금리 상황이 달라지면 상환할 때 부담이 더 생길 수 있습니다. 국민들도 환율 안정을 위해 국민연금을 끌어들이는데 대해 불편하게 생각할 수 있어 제한적이어야 합니다.”

- 최근 KDI 등은 한국 경제가 소비 중심으로 완만한 회복세를 보인다는 진단을 내놓고 있습니다. 한국 경제의 현 상황은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3분기 성장이 1.3%로, 연간으로는 1%는 될 걸로 보입니다. 회복의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은 다행스럽지만 본격적인 회복이라고 얘기하기는 조심스럽습니다. 쿠폰을 통해 현금을 지원한 게 소비 진작 효과가 조금 있었지만 상당히 미미했습니다. 4분기 성장률 예측은 제로 퍼센트 근처입니다. 미국이나 대만, 베트남 등의 성장률에 비교하면 본격적 회복을 위해 노력을 배가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 우리보다 경제 규모가 훨씬 큰 미국은 올해 3%의 성장이 예상됩니다. 반면 한국은 그 3분의 1인 1%에 그칠 전망입니다. 올해 우리 성장률은 같은 ‘아시아의 네마리 용’이었던 대만의 7%보다도 훨씬 낮은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잠재성장률 저하와 관계가 있습니다. 인플레 자극 없이 성장할 수 있는 지속가능 성장을 뜻하는 잠재성장률은 경제의 기본 체력입니다. 성장률은 소비와 투자, 순수출 등이 핵심입니다. 이가운데 순수출은 플러스이지만 소비는 아주 위축돼 있습니다. 가계부채가 심각해 소비할 여력이 없는 겁니다. 국가부채 못지않게 가계부채가 우리 경제의 아킬레스 건입니다. 소비를 제대로 못하니까 제조업이든 서비스업이든 돌아가지 않는 겁니다. 중국이 대표적이죠. 중국은 금년 들어 사상 처음 1조달러의 무역흑자를 냈습니다. 그런데도 중국 경제는 디플레 경제로 침체를 못 벗어나고 있는데 소비가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가로 해외에 팔아대는 거죠. 그 피해를 다른 나라들이 보고 있고, 국내에서 민간 투자가 기대만큼 충분히 이뤄지지 않는 것도 문제입니다. 대만과 비교할 때 지난 10년간 우리는 첨단 기술로의 발전 과정에서 신속하지 못했습니다. 예를 들어 증시 대표주자인 TSMC와 삼성전자를 비교해보죠. 10년 전 삼성전자의 기업가치(시가총액)가 TSMC의 3배였는데 5년 전에 비슷해졌습니다. 지금 TSMC가 거의 3배예요. 굉장히 심볼릭(상징적)한 겁니다. 얼마 전 서울에서 대만의 경제 장관을 지낸 분을 만나 대만이 어떻게 이렇게 빠른 속도로 성장하게 됐느냐고 물으니 ‘한마디로 하라면 우리의 절박감 때문’이라고 답하더군요. 중국이 저렇게 위협하는데 하루인들 다리 뻗고 자겠습니까? 저는 이 말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우리는 3년 연속 1%대 저성장이 이어지는데 위기의식이 필요합니다.”

- 한국 경제의 위험 요인과 기회 요인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위험 요인은 대내적인인 것과 대외적인 것으로 나눠볼 수 있습니다. 대외적인 요인은 미중 간의 갈등 같은 문제죠. 동북아의 지정학적 구도 변화, 지금 대만 사태로 일본과 중국이 맞붙는 모양새이지만 남의 이슈가 아닙니다. 우리의 역할에 대해 미국이 주시하고 있죠. 동북아 안정을 위해 한국이 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게 미국의 시각입니다. 글로벌 공급망의 재편도 우리에겐 도전적 요소입니다. 대내적으로는 아까 말씀드린 대로 성장 잠재력이 급속도로 추락했다는 겁니다. 한국은행이 2040년 되면 잠재성장률 제로를 얘기합니다. 인구 구조의 악화, 고령화 저출산 문제는 노동력 공급 및 복지 지출과 관련돼 다양한 사회 경제적 문제를 유발하고 있습니다. 저는 위험 요인으로 ‘3D’를 꼽습니다. 첫째는 국가와 가계의 ‘데트’(Debt, 빚)입니다. 가계부채는 전 세계적으로 제일 빨리 늘은 나라입니다. 둘째는 세계 최저 출산율과 급속한 고령화(데모그래픽·Demographic)는 경제가 자칫 역동성을 잃을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마지막 D는 ‘디비전’(Division·분열)입니다. 정치 경제 사회적 균열, 분열이 너무 심합니다. 이념적으로나 가치관이 극단적으로 가고 있지 않습니까? 이런 갈라진 사회가 우리가 당면한 큰 도전 요인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합니다. 이런 게 위험 요인이라면 기회는 한미 통상 협상 가운데 한국에 대한 필요성이 분명해진 측면이 있습니다. 조선이나 방산업이 대표적이죠. 미중 갈등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미국뿐만 아니라 자유 진영에서 국방비 지출이 늘고 있습니다. 미국의 해군력 보강이 시급하다는 얘기는 몇 년 전부터 나왔죠. 그런데 조선업은 한국 중국 일본이 석권하고 있습니다. 기회가 많은 거죠. 문제는 우리에 대한 자유 우방 국가들의 신뢰를 더 굳건히 해야 된다는 점입니다. 가령 핵추진 잠수함을 만들려 해도 미국이 우리 정부를 신뢰해야 할 수 있는 거죠. 만약 한국에서 정보가 샌다면 일본이 더 기회를 가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밖에 디지털 인프라가 상당히 돼있다는 점에서 AI(인공지능)도 기회 요인일 겁니다. 국제적인 평판이 높아진 K브랜드를 산업 영역에서 활용할 수 있는 것도 기회일 겁니다.”

- 이재명 대통령은 2026년을 잠재성장률 반등의 원년으로 만들겠다며 잠재성장률 제고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잠재성장률을 올리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요?

“잠재성장률은 노동 생산성, 기술 혁신, 투자 금융이 좌우합니다. 금융 투자가 경제 성장을 촉진할 수 있는 분야에 잘 들어갈 수 있게 해주고, 그렇게 해서 기술 혁신이 더 가속화되고 노동 분야는 개혁을 통해 생산성을 높여 나가야 합니다. 이 중 제일 떨어지는 게 노동 생산성입니다. OECD 국가 평균보다도 뒤쳐집니다. 생산적 금융으로 가자는 정부 정책은 바람직합니다. 미국 JP모건이 얼마 전 ‘미국의 경제 안보가 국가 안보다’는 캐치 프레이즈로 절대적으로 필요한 산업 분야에 집중적으로 투자하기 위해 1.5조 달러 패키지를 얘기를 했습니다. 금융은 이런 역할을 해야 합니다.”

- 이 대통령은 규제·금융·공공·연금·교육·노동 등 6대 분야를 구조개혁의 중심축으로 제시했습니다. 구조개혁은 쉽지 않은데 어떻게 해야 성공할 수 있겠습니까?

“제일 강조하고 싶은 게 노동개혁입니다. 이재명 정부가 친노동인 것은 다 알고 있죠. 하지만 노동자들이 살려면 기업이 살아야 합니다. 정부가 독일의 슈뢰더 총리를 꼭 기억했으면 좋겠어요. 독일 진보당 당수였던 슈뢰더 총리는 진보이면서도 역사적인 노동과 연금 개혁을 동시에 이뤄냈습니다. 후임 메르켈 총리가 슈뢰더 총리에 굉장히 찬사를 보내기도 했죠. 노동개혁은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얽혀있어 평소 노동계와 대화가 많은 정부에서 오히려 잘 할 수 있습니다. 단기적 이해관계를 떠나 국가 미래에 중요한 개혁을 진보 쪽에서 한다면 노동계를 궁극적으로 더 위해서 하는 것이라는 명분을 내세울 수 있습니다. 구조개혁에 성공한 나라들의 공통된 특징은 정부의 신뢰입니다. 구조개혁은 희생을 요구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연금개혁은 세대 간 갈등, 노동개혁은 노사 간 갈등이 없을 수 없죠. 그 사이를 중재하려면 믿을 수 있는 정부여야 합니다. 또한 일관성도 중요합니다. 문재인 정부든 윤석열 정부든 구조개혁을 내세우지 않은 정부는 없었습니다. 문제는 실천이죠. 국가 명운이 달린 개혁은 디비전, 분열의 문제를 넘어야 가능합니다. 이밖에 규제개혁은 돈이 안 들어가는 경기부양 정책입니다.규제를 풀어 기업이 뛸 수 있도록 해줘야 합니다. 여섯 번째 중에 제일 뒤인 노동을 맨 앞으로 앞당겨야 우리 경제가 활력을 되찾을 수 있다고 봅니다.”

- 기업들은 내년으로 다가온 노란봉투법 시행에 대해 큰 우려를 표명하고 있습니다. 노란봉투법의 부작용을 막을 수 있는 방안은 없겠습니까?

“기업에 부담되는 큰 이유 중 하나가 책임 범위가 명확치가 않다는 점입니다. 기업에는 굉장히 큰 부담이죠. 불법 행위가 무얼 의미하느냐는 명확한 규정도 없고. 노동자의 노동권 보호도 중요하지만 사전 조정 절차를 강화해 불확실성을 최소화해줘야 합니다. 기업이 제대로 뛰어 기업가치가 높아져야 코스피 5000 시대도 되는 거지 주가지수가 정책 목표가 될 수는 없는 거 아니에요. 노란봉투법이 실행에 옮겨지는 과정에서 업계의 의견들이 많이 수렴돼야 됩니다. 권리에는 책임이 부여됩니다. 기업인은 당연히 그렇지만 노동자들도 권리만 주장할 게 아니라 국가 경제, 우리 사회가 발전하는 데 책임을 느껴야 합니다.”

- 중국의 추격이 거셉니다. 반도체도 5년 후엔 중국에 추월당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는데 경쟁력 제고를 위해 어떤 것이 필요할까요?

“국제적인 시각으로 보면 지금도 상당 부분 중국에 추월당한 상황입니다. AI만 하더라도 미국을 추월하려고 대드는 입장이니까. 세계 경제질서는 G2 미국 중국이 압도하는 와중에 그 근처에서 한국 일본 대만 등이 글로벌 공급망 관계를 유지하고 공동 발전을 추구하는 구도입니다. 저는 실용주의적 관점에서 이들 두 나라와 서로 도움이 될 부분들은 협력 관계를 이어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그리고 중국 못지않게 한 단계 앞서가는 혁신이 필요합니다. 그럴러면 민간 기업들이 새로운 환경에서 치고 나갈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 줘야 됩니다. 정부가 AI 강국 만들고, 인프라를 깔아주는 게 맞죠. 그런데 정부가 혁신 첨단 기업을 이끌고 나간다고 생각하면 착각입니다. 산업 변혁의 시대, 대전환의 시대 정부는 민간이 제대로 뛸 수 있도록, 정부가 디딤돌을 놔주겠다는 생각을 하지 말고 걸림돌을 치워줄 생각부터 하는 게 중요합니다.”

- 우여곡절 끝에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관세 협상이 타결됐습니다. 하지만 국내 투자 여력 감소에 따른 산업 공동화 와 일자리 영향 등의 우려 또한 적지 않습니다. 한미 관세협상을 기회로 활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 일본의 통상 협상 과정을 살펴보면 큰 차이가 있습니다. NHK나 닛케이(일본경제신문)에 따르면 기업인이나 정부의 자세가 우리하고 완전히 차이가 납니다. 우리는 통상 협상 과정에서 15%로 관세를 낮추면서 매년 200억달러로 막았다고 생각합니다. 기본적인 접근 방법이 부담을 줄인다는 식이죠. 반면 일본은 완전히 좋은 기회가 왔다고 여깁니다. 산업 생태계를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으로 확대해 나갈 수 있는 기회라는 거죠. 일본제철이 US스틸을 인수하려고 얼마나 애를 먹었습니까? 그런데 트럼프와의 딜에서 미국에 자유롭게 투자하는 걸 다 챙긴 겁니다. 규제 문제라든지 승인이라든지 트럼프 정부가 다 챙겨주니 이럴 때 좋은 데를 선점하자는 전략이죠. 일본의 주요 기업들은 1, 2년내 10년동안 할 것을 다 선점한다는 전략입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에겐 투자 매력도가 떨어지는 곳들만 남을 수 있습니다. 미국은 평소 같으면 안보 리스크 등을 감안해 외국의 직접 투자 승인은 까다롭게 해왔는데 이제 그런 절차를 다 미국 정부가 해주고 다만 수익을 나눈다는 계획이죠. 이에 대해 우리 입장에선 반발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조금 전문적인 얘기긴 한데 사모펀드에 돈을 넣으면 GP가 있고 LP가 있습니다. GP는 전체 프로젝트를 관리하고, LP는 돈을 낸 사람입니다. 보통 프로젝트를 관리하고 승인도 받아오는 GP가 수익의 상당 부분을 가져가요. LP도 수익을 나누지만 50%가 맞느냐는 건 문제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GP의 역할이 미미한 건 아닙니다. GP가 무턱대고 수익을 뺏어간다고 생각 안하는 거죠. 미국 정부의 역할이 바로 GP입니다. 어쩔 수 없이 우리가 투자하는 거라면 지금이라도 마인드셋을 바꿔 하는 김에 우리 기업들이 글로벌 차원에서 더 발전해 나가고, 국내에서도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드는 게 중요합니다.”

- 미중 갈등 심화, 보호무역주의 강화 등 세계질서가 급변하면서 미국이냐 중국이냐는 선택을 강요받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이런 상황을 어떻게 돌파할 수 있겠습니까?

“이분법적인 접근 방법으로 ‘안미경중’(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얘기를 많이 했는데 더 이상 통하지 않습니다. 물론 가치 기반으로 동맹의 근간은 유지돼야죠. 가치 동맹에서 믿을 수 있는 파트너여야지 조선, 방산 등에서 해외 진출을 늘릴 수 있습니다. 자유 민주주의 국가로서 확고한 국가의 정체성은 지켜야 하며, 미국과의 관계는 흔들림 없이 가야 합니다. 일본과의 관계도 그렇고. 다만 실용주의적으로 중국과의 관계도 굉장히 중요합니다. 미국의 일방주의적 기조에 정면으로 부딪힐 일은 아니지만 현명하게 다각화하는 노력은 해야 합니다. 인도의 최근 행보가 대표적 사례입니다. 국익 관점에서 실용주의적 노선을 걸으려면 조금 전 얘기한 우리의 정체성 하나는 분명하게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 정부는 재정의 경기 마중물 역할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내년 예산도 사상 최대로 늘렸는데 국가부채 급증이 우려되는 게 사실입니다. 어떻게 균형점을 잡아야 할까요?

“경제가 어려울 때 재정의 마중물 얘기를 합니다. 저는 그건 의미가 있다고 봐요. 다만 마중물을 너무 많이 붓거나 너무 적게 부으면 물이 안올라 옵니다. 절제된 마중물 전략을 써야 하는 거죠. 경기를 활성화시킬 수 있는 모멘텀을 준다, 계기를 만들어준다는 꼭 필요한 정도의 것이지 돈을 왕창 풀어가지고 경기를 살린다는 것은 안됩니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30년은 국가부채로 경제를 살리려고 한 결과입니다. 남은 것은 지금 주요국 중 최악의 부채 구조입니다. 우리도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이 급속도로 상승하고 있습니다. 가계부채나 기업 PF 부실도 국가부채화 할 가능성이 있죠. 그리고 진짜 중요한 건 어느 나라 경험으로 보더라도 국가부채는 늘리기는 쉬우나 줄이기는 어렵다는 겁니다. 남유럽 재정 위기가 있었지만 지금은 프랑스 영국 등이 다 안 좋습니다. 가계부채는 계속 늘어나고 있고, 기업 PF 부실 같은 것도 몇 년째 끌고 있는데 자율적인 금융사 중심으로 구조조정을 촉진하되 필요하다면 PF 부실 같은 건 빨리 좀 떨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새로운 생명들이 살아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재정을 절제있게 쓰는 것 못지 않게 효율적으로 쓰는 것도 중요합니다. 현금을 지출하기 보다는 건설업처럼 재정 지출의 승수 효과가 높은, 재정 지출 대비 경기부양 효과가 큰 쪽에 재정을 써야 합니다.”

- 정부 전망에 따르면 2029년 국가부채가 GDP(국내총생산)의 58%에 달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 정도 수준이면 현재 AA인 국가신용등급을 강등시키지 않을까요?

“걱정은 되는 부분이지만 사실 신용평가기관이 그것이 50%든 60%든 어떤 분명한 선을 가지고 넘으면 위험하다라고는 하지 않습니다, 하나의 고려 대상이지. 다만 지속적으로 늘어 58% , 60%에 근접하는 식으로 악화되는 트렌드를 쉽게 넘겨보지는 않을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가 경제 운용에 있어 재정 건전성 회복을 비중있게 생각하고, 재정 지출은 경제 활성화를 통한 재정 건전성 회복에 도움되는 방향으로 쓰고 있다는 신뢰를 준다면 수치상 악화되는 것은 극복할 수도 있을 겁니다.”

- 정부는 세계 경제 패러다임의 대전환 시대, AI 3대 강국을 목표로 세우고 있습니다. 세계 각국도 마찬가지이긴 합니다만 AI가 실질적으로 경제를 이끌 수 있게 하려면 어떤 정책이 필요할까요?

“얼마전 만났던 세계 금융위기와 국가부채 연구의 ‘대가(大家)’로 꼽히는 카르멘 라인하트 미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석좌교수를 만났는데 AI가 시대적 패러다임 전환에 큰 이벤트가 되는 건 맞다고 인정하지만 AI에 쏠리고 있는 투자들을보면 승자 독식하는 구도로 가지 않겠냐고 보고 있더군요. AI 시대에 진정한 산업 경쟁력을 높이려고 한다면 AI 확산을 통해 기대되는 생산성 향상이 실제화될 수 있는 다양한 노력이 수반되어야 합니다. AI는 기술 정책이 아니라 산업 정책이자 인재 정책이라는 말을 들었는데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AI도 결국 인재들이 발전시키고 활용할 수 있는 인력이 확보돼야 기업과 사회 전반에 걸친 생산성이 높아질 수 있습니다. 결국은 핵심 인재들이 K-AI 시대를 여는 주축의 역할을 해줘야 되는데 교육 시스템은 그렇게 돼 있지 않아 안타깝습니다.”

- 국민연금 요율이 내년부터 인상되지만 기금 고갈 우려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감이 여전합니다. 공무원 연금, 군인 연금 등도 이미 대규모 적자 상태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연금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과 불안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시급한 과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어렵게 근 20년 만인 지난해 연말에 모수개혁을 했죠. 세계 주요국 중에 유일하게 지난 20년 동안 모수개혁을 안 한 나라가 우리밖에 없었어요. OECD 평균 보험료율이 18%인데 우리는 9%입니다. 13% 올리는 것도 단계적으로 올립니다. 안한 것보다는 나은데 단발성으로 끝낼 문제가 아닙니다. 연금 상황에 따라 보험료율과 연금액, 수급 연령을 자동으로 조정하는 자동조정장치를 도입하면 신뢰 확보에 단초를 제공할 수 있는데 반발도 만만치 않습니다. 연금개혁을 장기적으로 지속적으로 해나가야 되는 것은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나눠서 고통 분담을 하고 미래 세대들이 또 안심하고 연금을 받을 수 있는 환경도 보장할 수 있도록 계속 대화해야 합니다.또 연금기금 운용의 전문성, 독립성 강화도 시급합니다. 캐나다 네덜란드 일본 등은 독립적으로 연금 기금을 운용합니다. 국민연금기금은 1조달러, 1500조원이 넘은 상태입니다. 2050년이면 3600조까지 커질 것으로 예측됩니다. 세계 최대 연금이 되는데 거기에 걸맞은 거버넌스, 지배구조를 차제에 만드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강현철 논설실장 hckang@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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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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