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경제에 큰 짐 되고 사회적 합의 필요하다는 것” 강조
대국민 홍보 강화·이행시점 불확실성 해소 등 개선안 제안
이창용 한은 총재
“고령화로 인해 우리 사회가 더 이상 회피할 수 없게 된 연명의료 문제가 초래할 거시경제적 문제들을 모른 척할 수만은 없었다는 문제의식이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연구는 큰 의미가 있습니다. 연구를 어머니께 드리는 마음이 있습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1일 서울 중구 한은 별관에서 열린 ‘초고령사회 어떻게 대비할 것인가: 생애말기 의료를 중심으로’ 한은-국민건강보험공단 공동 심포지엄 환영사에서 가슴 아픈 개인사를 털어놨다.
이 총재는 “제 어머니가 이번 8월에 타계했는데, 돌아가시기 전에 가족들과도 이 문제(연명의료)를 많이 논의했다”고 말했다. 연명의료 문제가 우리 경제에 큰 짐이 될 수 있고, 공론화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이 총재의 어머니인 고(故) 윤양호 여사는 지난 8월말 별세했다. 장남인 이 총재와 윤 여사 사이의 각별한 애정은 주변에서도 잘 알려져 있었던 만큼 이날 발언은 그동안 개인사를 거의 공개하지 않았던 이 총재에게서 이례적으로 나온 것으로 평가된다.
이 총재는 이날 어머니의 생애말기 치료 과정을 직접 언급하며 연명의료 문제의 구조적 개선 필요성을 강조했다. 준비된 환영사 원고에는 없었던 내용이다. 초고령사회로의 진입이 빨라지는 가운데 환자의 의사가 충분히 반영되지 않는 연명의료 관행이 개인과 가족, 그리고 사회 전체의 부담으로 이어진다는 문제의식이 담겨 있다.
이 총재는 “어머니께서 영양제는 너무 넣지 말고 통증만 치료해달라고 하셨다”며 “지나고 보니 어머니에게도 좋은 선택이었고 사회적으로도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한은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고령층의 연명의료 중단 건수는 늘었지만 실제 사망자 중 연명의료를 받은 비율은 오히려 증가했다. 연구진이 2013~2023년 65세 이상 사망자 259만명의 의료기록을 분석한 결과 2013~2017년 사망자의 약 55%가 평균 19일간 연명의료를 받은 것으로 추정됐다. 그러나 연명의료결정법 시행 이후인 2023년에는 연명의료를 받은 비율이 67%로 증가했고 평균 기간도 21일로 늘었다. 이 같은 흐름은 환자의 의사가 제도적 여건 속에서 충분히 구현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총재가 강조한 문제의식과 맞닿아 있다.
제도 참여 확대도 현실을 충분히 바꾸지 못했다. 연명의료 중단 건수는 2018년 3만1000건에서 지난해 7만건으로 두 배 이상 늘었고,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자도 300만명을 돌파했다. 그러나 65세 이상 응답자의 84.1%가 회복 불가능한 경우 연명의료를 거부하겠다고 답했음에도 실제 유보·중단 비율은 16.7%에 그쳤다. 환자의 선호가 임종기 의료결정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연명의료 결정 과정 전반에서도 구조적 제약이 확인됐다. 연구는 사전 논의 단계에서 ‘죽음 논의 회피’ 문화가 환자의 구체적 의사 표현을 어렵게 하고, 현행 사전연명의료의향서가 개별 시술 선호를 반영하기 어렵다는 점을 지적했다. 의료기관 선택 단계에서도 연명의료 결정을 담당하는 의료기관윤리위원회 설치 비율이 상급종합병원에 집중돼 접근성 격차가 크며, 공용윤리위원회는 전국 13곳에 불과해 행정 부담이 과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임종기 판정 역시 불확실성이 크다. 법은 ‘회생 불가능하고 임종이 임박한 상태’를 기준으로 삼고 있지만, 임종 시점을 정확히 예측하기 어려워 연명의료 의사가 명확한 환자에게도 시술이 이어지는 사례가 발생한다. 중단 이후 돌봄 체계도 미흡해 호스피스·완화의료 인프라가 수도권에 집중돼 있는 점이 병목으로 지적됐다.
환자가 겪는 부담은 신체적·경제적으로 모두 막중하다. 한은이 산출한 ‘연명의료 고통지수’에 따르면 연명의료 환자의 평균 신체적 고통은 단일 시술 최대 통증의 3.5배 수준이며, 고통지수 상위 20%는 12.7배에 달했다. 생애말기 의료비(본인부담 기준)는 2013년 547만원에서 2023년 1088만원으로 늘어 65세 이상 가구 중위소득의 40%에 해당한다. 건강보험 지출에서도 연명의료 환자 비중은 2014년 3.6%에서 2022년 15%로 증가해 의료자원의 불균형을 심화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이 총재는 “생명의 존엄성과 같이 민감한 주제를 한은이 건강보험·재정 등 경제적 관점에서 접근하면 오해의 소지가 크지 않을까 걱정도 많았다”며 “한은이 전문 지식을 갖지 않은 분야더라도 통계 분석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전문가들과 협업해 좋은 결실을 보여준다는 교훈을 줬다”고 강조했다.
보고서는 이를 개선하기 위한 방안으로 △대국민 홍보 강화 및 참여 경로 확대 △개인화된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도입 △연명의료 이행 시점의 불확실성 해소 △중단 이후 돌봄 연속성 강화 등을 제안했다. 생애말기 의료가 개인의 가치와 선호에 기반해 결정될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을 재정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총재는 “이번에 건강보험공단과 한은이 공동연구를 수행한 것 역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것이고 두 기관이 공동으로 연구했기 때문에 현장의 목소리가 연구결과에 제대로 담길 수 있었다”면서 “앞으로도 고령화·의료·재정 등 구조적 과제에 대한 연구를 심화시키겠다”고 당부했다.
유진아 기자 gnyu4@dt.co.kr
실시간 주요뉴스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