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신용 세종본부장
과거 북한 체제 비판의 단골 메뉴가 된 게 5호 담당제다. 북한 다섯 가구마다 한 명의 5호 담당 선전원을 배치해 가족생활 전반에 걸쳐 당적 지도라는 명목으로 간섭하고 통제, 감시하는 제도다. 조선시대의 조세 징수를 위한 오가작통법을 본뜬 것이다. 5호 담당 선전원이 다섯 가구의 주민 감시·통제와 세뇌교육을 담당한다. 가구들이 경쟁적으로 다른 가구를 고자질한다고 학교에서 교육 받았다.
권위주의 시절 우리도 비슷한 방식으로 국민 통제에 나선 적이 있다. 5공화국 사회정화위원회다. 활동 가운데 대표적인 게 공직사회의 기강을 세우는 일이었다. 사회기강 확립 차원에서는 학교 주변의 폭력·유해환경 및 불법과외 단속 등을 추진했다. 기억을 끄집어내니 학교마다 설치돼 학생끼리 감시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학교 전체가 뜨악해할만 했다. 살벌한 분위기 속에 출발했으나 유야무야되다가 노태우 정부 들어 바르게살기운동협의회로 탈바꿈하면서 과거 속으로 사라졌다
출범 때의 ‘으름장’과 다르게 12·3 비상계엄에 가담한 공무원을 조사하는 ‘헌법존중 정부혁신 태스크포스(TF)’의 활동이 외형적으로는 잠잠하다. 구상 단계에서부터 비판이 적지 않았던 기구다. 국무총리실과 49개 각 중앙행정기관에 적게는 10여명으로 구성된 TF는 비상계엄 당시 공무원들의 내란 가담 여부를 조사 중이다. 헌정 질서를 짓밟은 내란 잔재를 청산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공무원에 대한 휴대폰 제출 요구 등과 관련해선 검열 비판이 제기된 바 있다.
내란 청산 TF 가동에 대해 편향성과 과도한 실적 경쟁 우려가 있었는데 현재 특별한 결과물이 나오지 않고 있다. 실제로 국방부는 조사 전 내란 가담 여부를 자진 신고하는 사람은 징계하지 않겠다고 밝혀 한 발 물러나는 듯한 인상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2일 국무회의에서 자발적 신고자에 대해 감면, 면책 원칙을 세우라고 지시한 데 따른 것이다. 내란 가담자가 TF 조사 전에 스스로 신고하면 TF는 징계 요구를 하지 않는다. 필요할 경우 인사 조치 대신 주의·경고할 예정이다. 국방부는 또 조사 대상이 된 이후 적극 협조하면 징계를 감경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다른 곳도 마찬가지다.
‘서로가 서로를 고발하라는 것이냐’라며 부글부글하던 공직사회의 반발을 감안한 숨고르기 모양새다. TF가 내년 2월까지 한시적으로 운영되는 만큼 헌정질서 회복 이상으로 중요한 건 공직사회의 통합과 안정이다. 어느 조직이든 한번 탄생하면 존재감을 입증해야 한다는 환상과 욕심에 빠진다. 장관을 비롯한 조직의 최고책임자가 TF 단장에 이름을 올리고 있어 실적과 성과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는 시선도 설득력 있다.
걱정스런 대목은 또 있다. ‘내란 행위 제보센터’는 대면이나 우편, 전화, 이메일 등으로 공무원의 내란 참여 또는 협조 행위 제보를 받는다. 공직자의 정치적 견해에 대한 ‘단죄’도 반민주적이지만, 누군가를 찍어내려는 악의적 무고의 ‘창구’가 될 수도 있다. 더구나 총괄 TF는 제보자에 불이익이 없다고 강조했다.
공익 신고가 아닌 투서의 채널로 기능한다면 공직사회에 크나큰 후유증을 남기고 만다. 음해성 투서가 난무하고, ‘별건 수사’식의 조사와 처벌이 이뤄질 경우 공직사회 내 불신과 갈등은 명약관화하다. 공무원 줄 세우기를 통한 충성 강요도 안 될 일이다. 절도 있되 신중하게 접근해야 맞다. 무리수로 희생양이 나온다면 내란 청산이라는 명분마저 빛을 잃는다.
송신용 세종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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