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서 논설위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베네수엘라를 향해 ‘전면적 압박 전략’을 가동하고 있다. 카리브해에 군함과 항공모함 타격단을 보냈고, 베네수엘라에서 가까운 푸에르토리코에는 F-35 전투기를 파견했다. 현재 해병대를 포함한 1만5000 병력이 카라브 주변 해역에 모여 있다. 트럼프는 베네수엘라 마약 선박을 격침하면서 지상군 투입을 준비하고 있다.

공세의 바탕에는 트럼프의 야심이 깔려 있다. 그는 미국이 냉전 종식 이후 잘못된 세계화와 무기력한 외교로 스스로를 약하게 만들었다고 믿는다. 형편없는 세계화 전략이 중산층을 무너뜨리고, 방위산업을 약화시켰으며, 중국의 부상을 부추겼다는 것이다. 워싱턴의 좌파 엘리트들은 현실을 무시한 유토피아적 목표에 매달리느라 미국 국민을 소외시켰고, 외교 정책 입안자들은 전쟁에서 이기지도 못하고 평화도 만들어내지 못했다고 그는 비난한다.

이런 배경에서 보면 베네수엘라는 우연히 등장한 분쟁 지역이 아니라, 트럼프에게는 딱 맞는 ‘전장’(戰場)이다. 겉으로는 ‘마약과 불법 이민 차단’이란 명분을 내세우지만, 실제 목표는 훨씬 크고 깊다. 중국·러시아·이란이 동시에 영향력을 넓히고 있는 베네수엘라를 미국의 ‘뒤뜰’(backyard)로 되돌려 놓겠다는 계산이다.

우선 트럼프의 지지층이 두려워하는 위협, 즉 ‘마약과 불법 이민’이 베네수엘라와 직접 연관되어 있다는 점에서 군사적 압박은 정치적으로 효과가 크다. 베네수엘라는 미국 내 마약 유입 경로의 중심에 있어 보수층의 분노를 자극하는 데 적합한 대상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군사 조치는 ‘마약과 이민 문제를 뿌리뽑겠다’는 공약을 수행하고 있다는 분명한 신호로 작용한다.

베네수엘라가 미국의 지역 영향력을 정면으로 위협하는 ‘문제 국가’란 점도 빼놓을 수 없다. 마두로 정권은 반미 노선을 고수하며 중국·러시아·이란과 밀착해 왔다. 특히 중국의 일대일로 전략에서 베네수엘라는 라틴 아메리카 핵심 거점이다. 트럼프는 이 상황을 좌시할 수 없다. 그렇기에 이번 군사 압박에는 단순한 마약 소탕을 넘어 반미·친중 정권을 전복시킴으로써 미중 패권 구도까지 재편하려는 전략적 의도가 깔려 있다.

여기에 ‘세계 최대 석유 매장량’이라는 요소가 더해진다. 비록 품질 좋은 석유는 아니지만 베네수엘라는 확인된 매장량만으로도 사우디아라비아를 앞선다. 이를 통제하는 세력이 누구냐에 따라 글로벌 에너지 시장의 흐름과 가격 구도, 나아가 지정학적 동맹 구조까지 달라질 수 있다. 마두로 정권이 이 전략자원을 쥔 채 중국 등과 에너지 협력을 강화하는 것은 미국의 이익에 반한다. 반대로 정권 교체를 통해 베네수엘라를 친미 축으로 끌어당긴다면, 미국은 장기적으로 에너지 우위를 가질 수 있게 된다.

트럼프는 절제주의자도, 고립주의자도 아니다. 그는 자신의 생각대로 세상을 다시 짜려 하는 인물이다. 대공황과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비상시국을 헤쳐 나간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 이후로 트럼프만큼 강력하고 바쁜 대통령은 없을 것이다.

그는 미국의 국익을 재배열하고 국제 정치의 축을 다시 세우려는 데 주저함이 없다. 그래서 마두로 정권은 자연스럽게 ‘정리를 해야 할’ 우선 순위가 됐다. 이에 마두로 정권은 신병 5000여 명을 확충하고 강력한 대응 의지를 밝혔다. 지난 6일(현지시간) 대규모 입대 선서식이 열렸고 베네수엘라군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제국주의 세력의 침략을 용납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공식 통계에 따르면, 베네수엘라는 각각 20만명의 군인과 경찰을 보유 중이다. 미국이 쳐들어오면 게릴라 방식으로 저항을 벌인다는방침이다.

이처럼 긴장이 고조되고, 결국 전쟁이 터진다면 단숨에 글로벌 에너지·안보·금융이 동시에 흔들리는 지정학적 균열이 생길 것이다. 균열이 커지기 시작하면 한국은 더 이상 관찰자가 될 수 없다. 충격파는 곧바로 원유 가격, 해상 물류, 외환시장, 외교 지형을 타고 한국으로 밀려올 것이다.

베네수엘라에서 시작된 불씨가 국제질서의 방향을 바꾸는 순간, 대응이 늦은 국가는 흐름에 휩쓸릴 뿐이다. 그 흐름을 미리 읽고 대비하는 나라만이 충격을 기회로 바꾼다. 지금 한국이 해야 할 일도 다르지 않다. 변화를 직시해 대비하는 것만이 국익을 지키는 첫 조건이다.

박영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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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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