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화성 동탄의 쓰리엠(3M) 기술연구소 지하층. 연구실 문을 열자 정적을 깨는 기계음이 울렸다. 두 사람 키보다 큰 로봇이 유연하게 움직이며 손바닥보다 작은 블록에 테이프를 짜고 끊어내는 동작을 반복했다. 손끝 감각이 필요한 정밀한 부착 작업이 더 이상 사람 몫이 아니라는 사실이 눈앞에서 확인된 순간이었다.
지난 8일 열린 ‘3M 테크브리핑’에선 3M이 개발 중인 첨단 접착 소재와 로봇 자동화 기술, 실제 적용 예시가 공개됐다. 연구소 내부는 촬영이 제한될 정도로 보안이 철저히 유지됐고 지정 동선에 따라 전시·연구실을 차례로 둘러보며 설명 들었다.
“접착제와 테이프는 단순한 소모품이 아니라 이제는 자동화의 핵심 소재가 되고 있습니다. 3M이 가진 소재 기술과 공정 자동화 역량을 결합해 차세대 제조 솔루션을 제공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현장에서 만난 김정민 3M 이사는 회사를 ‘고객과 동반 성장을 추구하는 혁신 기업’이라고 소개했다. 3M은 광학필름, 전자·전기, 자동차, 제조, 건설, 전력, 통신 등 폭넓은 산업군에 제품과 기술을 공급하고 있다. 국내에선 경기 동탄 기술연구소를 비롯해 전남 나주와 경기 화성에 제조 시설을 운영하고, 부산과 평택 물류센터를 활용해 연구·생산·영업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통합 시스템을 구축했다. 현장 중심 운영 체계 덕분에 고객사의 기술 니즈에 즉각 대응할 수 있는 구조가 마련됐고 이는 3M의 R&D 방식과 맞물려 선순환을 이루고 있다.
이날 주목 받은 기술은 기존 테이프의 개념을 근본적으로 바꾼 ‘VHB™ 익스트루더블(Extrudable)’이다. 이 제품은 기존 양면 폼 테이프가 가지는 ‘시트 형태’의 한계를 벗어나 압출기를 통해 원하는 형태로 도포할 수 있는 점착 솔루션이다.
기존 VHB™ 테이프가 강력한 접착력과 내구성으로 자동차, 가전, 건축 등 다양한 곳에 널리 활용돼 왔다면 익스트루더블은 한 단계 나아가 자동화 공정과 결합할 수 있도록 설계된 점이 특징이다.
테이프는 노드슨(Nordson)의 프로본드 시스템을 활용해 로봇에 의해 토출되고 즉각 부착력이 발현된다. 곡면이나 요철, 복잡한 조립 구조처럼 기존 테이프가 적용하기 어려웠던 영역에도 안정적으로 부착할 수 있고 깨끗히 제거할 수 있어 재작업이 용이하다. 회사에 따르면 별도의 경화나 클램핑 과정 없이 즉각적으로 핸들링 할 수 있고 보관상 온도조건이 없어 보관과 사용이 편리하다.
연구실에 들어서니 진귀한 장면이 펼쳐졌다. 로봇팔이 어플리케이터 팁을 통해 테이프를 짜내며 일정한 속도로 곡면을 따라 움직였다. 바로 ‘3M™ 로보테이프 시스템(ROBO Tape System)’이다. 테이프를 ‘뽑아내는’ 방식에서 벗어나 ‘정밀 도포’ 기반의 자동화 솔루션으로 진화한 형태다.
최보경 산업용 접착제 및 테이프 사업팀 수석연구원은 “굴곡이 있는 부품에 테이프를 오차 없이 부착하는 작업은 사람의 손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수백 번 이상의 테스트 끝에 로봇이 정밀한 패턴을 구현할 수 있도록 개발했다”고 말했다.
로보테이프 시스템은 복잡한 형상·내측 표면 등 기존 테이프 자동화가 어려웠던 구간에서도 높은 정확성을 유지한다. 모듈형 구조로 설계돼 기존 제조라인에 쉽게 통합할 수 있고 신규 라인 구축이나 셀(Cell) 개조 상황에도 비교적 쉽게 적용할 수 있다.
정지시간 없이 테이프 스풀을 변경할 수 있는 기능과 원격 기계 관리, 초당 최대 300mm의 적용 속도, 실시간 부착 상태와 스풀 잔량 모니터링도 장점으로 꼽힌다. 3M은 이 시스템을 통해 제조 인력 부담은 줄고 반복 작업 품질도 개선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자동차 전동화 흐름을 겨냥한 첨단 접착·실링 기술도 소개됐다. ‘3M 실란트(Sealant) SZ1000’은 전기차 배터리 케이스 실링용으로 개발된 혼합액형 폼 실란트다. 자동화 장비로 정밀 도포할 수 있고 난연·방수 성능이 우수하다. 특히 배터리 케이스의 반복 개폐가 가능한 설계로 유지 보수가 용이한 점도 특징이다. 장기 압축 복원력이 뛰어나 배터리 환경 특성인 온도 변화와 진동에도 안정적인 성능을 유지하며 재실링이 가능해 EV 제조 현장의 효율성을 높이는 솔루션으로 평가받는다.
이와 함께 ‘3M 구조용 접착제 SA9820’은 금속·알루미늄·복합재 등 다양한 소재를 고강도로 접합할 수 있는 접착제다. 약 80도 저온에서도 경화될 수 있고 작업 가능 시간이 길어 생산 공정 유연성이 확보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차체·섀시 등 고강도 구조 부품 접합에 적합한 성능으로 경량화 트렌드가 이어지는 자동차 산업에서 활용도가 높아지고 있다.
이날 행사 후반부에는 3M이 자동차 산업과 함께 걸어온 100년의 기술 혁신도 소개됐다. 1914년 자동자 제조사에 연마제를 처음 공급한 이후, 1925년 스카치 마스킹 테이프로 페인트 마스킹 공정을 혁신한 사례 등은 3M이 현장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하는 방식으로 성장해왔음을 보여준다.
주형석 자동차사업부 상무는 “3M은 소비재 브랜드라는 인식과 달리 글로벌 자동차 산업의 성장과 함께 100년 넘게 기술 혁신을 이어온 소재 기업”이라며 “자동차 전장화·전동화·경량화의 흐름 속에서 고객사의 난제를 해결하는 것이 3M 기술 개발의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3M은 미국 외에도 50개국에서 사업을 운영하고 있으며, 제조 시설과 연구소는 각각 40개, 110개를 운영 중이다. 이 중 한국법인은 글로벌 전체 매출 상위권에 포함될 정도로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현재 동탄연구소에는 150명 정도의 연구개발 인력이 상주하며 새로운 기술 개발을 이어가는 중이다.
주 상무는 “한국 제조업 위상이 갈수록 높아지는 만큼 책임있는 기업 시민으로서의 사회적 역할도 지속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소재 기술과 자동화 기술이 결합한 제조 혁신은 더 이상 먼 미래가 아니다. 기자가 찾은 동탄 연구소의 현장 곳곳에서 로봇과 소재가 결합된 새로운 생산 방식이 현실로 구현되고, 이는 산업 현장 변화의 순간처럼 보였다. 3M은 접착제·테이프·실링 소재를 단순한 소모품이 아닌 ‘자동화 공정의 핵심 기술’로 재정의하며 제조업 혁신의 속도를 높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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