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가 세계 최초로 16세 미만 청소년의 소셜미디어(SNS) 사용을 전면 금지했다. 오는 10일(현지시간) 시행되는 이 법안은 청소년의 정신 건강을 위협하는 알고리즘 중독을 막겠다는 취지다.
‘디지털 도파민’과의 전쟁을 선포한 호주의 이번 실험이 글로벌 스탠다드로 자리 잡을지, 기술적 구현 가능성과 실효성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 처벌은 ‘기업’ 몫…계정 로그인만 막아
이번 조치의 핵심은 ‘이용자’가 아닌 ‘플랫폼’을 겨냥했다는 점이다. 법을 어겨도 청소년이나 부모는 처벌받지 않는다. 대신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유튜브, 틱톡, 엑스(X) 등 10개 주요 플랫폼 기업이 16세 미만 가입자의 계정을 차단하지 못할 경우, 최대 4950만 호주달러(약 485억원)라는 천문학적인 벌금을 물게 된다.
엄밀히 말하면 ‘접속 차단’보다는 ‘로그인 차단’에 가깝다. 로그인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영상을 보거나 검색하는 것은 가능하다.
호주 정부와 e세이프티(온라인 안전규제 기관)는 로그인을 통해 개인 맞춤형 알고리즘에 노출되고, 끊임없이 푸시 알림을 받는 과정이 청소년을 ‘중독’시킨다고 판단했다. 즉, 무한 스크롤과 확증 편향을 유발하는 ‘알고리즘의 고리’를 끊어내는 것이 이번 규제의 본질이다.
이용자나 부모는 처벌 대상이 아니다. 그럼에도 호주 정부는 16세 미만의 계정 보유를 막으면 소셜미디어의 가장 해로운 요소인 알고리즘이나 푸시 알림 같은 중독성 있는 기능으로부터 그들을 보호할 수 있다고 본다.
e세이프티는 홈페이지에 올린 관련 일문일답에서 “청소년은 계정에 로그인한 상태일 때 감당하기 어려운 압박과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런 위험은 소셜미디어 플랫폼의 설계 방식에서 비롯되며, 사용자들이 화면 앞에서 보내는 시간을 늘리게 하고, 부정적이거나 불안감을 유발하거나 심리를 조종하는 콘텐츠를 접하게 될 가능성을 높인다”고 설명했다.
해당 소셜미디어는 16세 미만의 기존 계정을 삭제하거나 16세가 될 때까지 비활성화시키고 신규 계정 개설은 막아야 한다. e세이프티에 따르면 호주 내 16세 미만 청소년의 약 96%인 100만여명이 소셜미디어 계정을 갖고 있다.
신분증 없는 아이들, AI가 얼굴 보고 나이 맞춘다
16세 미만 이용자를 어떻게 가려낼까. 이게 관건이다. 한국처럼 전 국민 주민등록제도가 없는 나라에서 이를 식별하기가 쉽지 않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 ‘안면 인식 AI’ 기술이다.
영국 스타트업 요티(Yoti) 등이 개발한 이 기술은 이용자가 셀카를 올리면 AI가 얼굴 특징을 분석해 나이를 추정한다. 메타 등 빅테크 기업들도 음성, 위치정보, 이용 패턴 등을 종합 분석하는 연령 추정 기술을 도입하고 있다.
메타의 경우 다양한 기법을 활용해 16세 미만을 가려내고 있다고 밝혔지만, 구체적인 방식은 공개하지 않았다. 이는 해당 이용자들이 차단 조치를 우회하는 방법을 알아내지 못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개인정보 침해 논란과 기술적 한계는 여전하다. 오차 범위 내에서 성인이 차단되거나, 반대로 청소년이 뚫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호주 당국은 “청소년의 술·담배 구매를 100% 막지 못한다고 해서 규제가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라며 완벽한 차단보다는 ‘사회적 제동 장치’를 마련했다는 데 의의를 두고 있다. 호주 정부는 처음부터 규제가 완벽하게 시행되지는 않을 것이라면서 소셜미디어들이 차단 조치를 계속 보완하도록 시간을 갖고 살펴보겠다는 입장이다.
‘풍선 효과’ 우려에도… 전 세계는 ‘규제 도미노’
이번 규제에 대한 찬방양론이 엇갈리면서 실효성에 대한 우려도 뜨겁다.
애니카 웰스 호주 통신부 장관은 최근 영국 BBC 방송에 “하나의 법으로 우리는 알파세대(2010년 이후 태어난 세대)가 약탈적인 알고리즘에 의해 지옥으로 빨려 들어가지 않도록 보호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스콧 그리피스 멜버른대 심리학과 교수도 “이처럼 강력한 입법 조치가 시행되는 것을 보고 주요 소셜미디어 기업들이 마침내 더 많은 청소년의 건강과 웰빙을 의미 있게 보호할 것으로 기대한다”면서 이번 규제가 시도해볼 가치가 있다고 AFP 통신에 밝혔다.
규제 대상에서 빠진 중소 플랫폼으로 이용자가 몰리는 ‘풍선 효과’나, VPN(가상사설망)을 이용한 우회 접속이 기승을 부릴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유튜브 등 빅테크 기업들은 “오히려 아이들을 음지로 내몰아 더 위험하게 만들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시드니대 캐서린 페이지 제프리 박사는 “우리는 전면적인 금지가 효과가 없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서 아이들이 오히려 더 안전하지 않은 온라인 공간을 찾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의 심리학자 에이미 오번은 엄청난 양의 관찰 연구를 통해 10대의 정보기술(IT) 사용과 정신건강 악화 사이에 상관관계가 발견됐다면서 “호주의 (소셜미디어) 금지 조치를 평가하는 것은 현 상황을 살펴볼 단서를 제공한다는 면에서 극히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규제 대상인 소셜미디어들은 이번 규제에 반발하면서도 대부분은 일단 법에 따라 차단 조치에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메타는 최근 성명에서 호주 법을 따르겠다면서도 “우리는 안전하고 연령에 맞는 온라인 경험을 제공하려는 호주 정부의 목표에 공감하지만, 청소년들을 친구·공동체로부터 단절시키는 것은 해결책이 아니다”라며 불만을 나타냈다.
유튜브도 이달 초 성명에서 “이 법은 온라인에서 아동을 더 안전하게 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할 것”이라며 “오히려 호주 아동들은 유튜브에서 더 위험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법에 따라 10일부터 16세 미만의 유튜브 로그인을 막기로 했다.
그럼에도 ‘호주발 나비효과’는 이미 시작됐다.
덴마크와 말레이시아가 유사한 법안을 준비 중이며, 유럽연합(EU)도 호주의 사례를 주시하고 있다. 유럽의회는 지난 달 유럽연합(EU) 차원에서 16세 이상만 부모 동의와 상관 없이 소셜미디어·AI 챗봇에 접속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줄리 인먼 그랜트 e세이프티 위원장은 최근 한 행사에서 “우리는 전환점에 도달했다”면서 호주의 조치가 빅테크(거대 정보기술기업)를 규제하려는 전 세계적 움직임에서 ‘첫 번째 도미노’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김광태 기자(ktkim@dt.co.kr)실시간 주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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