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에르메스
수식어가 필요없다. 그냥 명품을 칭하는 대명사 그 자체다.
1837년 마구 용품을 파는 가게에서 출발한 에르메스는 대를 이어 장인(匠人)의 철학을 계승하면서 명품 위상을 지켜오고 있다. 가방 하나를 장인 한 명 이 전담해 제작하는 방식을 고집하며 지켜 온 희소성이란 가치에 명품 제국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마저 탐을 냈던 브랜드다.
에르메스의 독보적 가치는 희소성에서 나오는데, 이는 대량생산이 아닌 장인의 손을 통한 한 땀의 바느질이 모여 완성됐다. 에르메스의 장인정신은 독일 태생의 창업주 티에리 에르메스가 파리에 첫 가게를 연 그때부터 지금까지 200년 가까이 고수해 온 가문의 철학이다.
1837년 티에리 에르메스가 차린 가게는 마구 용품을 파는 곳이었다. 당시 에르메스는 왕가와 귀족사회라는 당시 핵심 판로를 확보했다.
에르메스 가방의 원조는 1892년 티에리의 아들인 샤를 에밀 에르메스가 그의 아들들과 함께 마구 주머니에서 착안해 만들며 시작됐다. ‘새들 스티치’(saddle stitch), 즉 안장에 바느질을 하는 기법으로 만들었는데 그 전통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지금의 파리 포부르 생토노레 거리의 에르메스 본점도 샤를-에밀 시대에 마련됐다.
1920년대 경영권이 창업자의 손자 에밀 모리스 에르메스에게 넘어오면서 사업은 벨트, 의류, 넥타이, 스카프로 확장됐다. 지퍼 시스템에 대한 독점권도 확보해 처음으로 남성용 의류와 골프 재킷을 만들어냈다. 1927년에는 쥬얼리, 1928년엔 시계도 출시했다.
딸 넷을 둔 에밀 모리스 에르메스는 사위 로버트 뒤마와 협업하는데, 이를 통해 에르메스의 ‘뒤마 가문’ 시대가 열린다. 1930년대 신생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로 도약하게 된 것도 이 때다. 1950년대 유행이 시작된 ‘켈리백’의 원조 형태의 가방이 만들어진 시기다.
사위인 로버트 뒤마는 장인과 협업하면서 본인의 이름 뒤에 에르메스를 붙였고, 쥬얼리 라인 확장에 특히 공들였다. 에밀은 또 다른 사위인 장-르네 게랑과도 협업해 향수로 브랜드를 확장했다.
시간이 흘러 1950년대 초, 에르메스의 상징이 된 오렌지 박스가 등장한다. 유명한 마차 로고도 탄생했다. 브랜드 정체성을 확고히 한 에르메스는 1967년엔 여성복 컬렉션 시장에도 뛰어들었다.
명품 애호가의 소유욕을 자극하는 ‘버킨백’은 1984년 등장한다. 로베르 뒤마의 아들 장 루이 뒤마 시대에 이르러서다. 이후 장 루이 뒤마의 아들인 피에르 알렉시 뒤마가 2005년 총괄 디렉터로 선임되는데, 이 때 경영체제에 큰 변화를 맞는다. 에르메스의 처음이자 마지막 전문 경영인인 패트릭 토마스 최고경영자(CEO)가 선임된 것이다.
전문 경영인 체제는 오래가지 못했다. 명품 재벌 LVMH의 적대적 인수합병 시도가 오너 경영 회귀의 계기가 됐다. 2010년, ‘에르메스 지분 14.2% 보유’ 사실을 발표한 것이다. LVMH는 이후 지분을 23%까지 늘렸다.
당시 뒤마 가문 200여명에게 분산돼 있던 에르메스 지분 73.4% 중 지분 50.2%를 모아 지주회사를 만들고 오너 경영으로 회귀하는 작업이 이뤄졌는데, 이를 주도한 이가 2013년 취임한 악셀 뒤마 현 CEO다. 장 루이 뒤마의 조카다. 2014년 LVMH는 결국 에르메스 인수를 포기했다.
악셀 뒤마는 에르메스 가문의 철학인 장인정신을 명품 ‘대량생산’의 대명사인 LVMH로부터 지켜낸 인물이다.
김수연 기자 newsnews@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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