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푸드 글로벌 열풍 덕분에 해외로 수출하는 제품 표지에 모두 한글 표기가 그대로 붙고 있다. 예전에는 현지 소비자가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영문·중문 표기를 넣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요즘은 한글 표기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판매에 도움이 돼 생겨난 변화다.
오뚜기가 이달부터 미국에 수출하는 간식 신제품에는 '붕어빵'이라는 한글 표기가 그대로 들어갔다. 영어식 표기로는 'Fish-shaped bun' 정도가 적절하지만, 굳이 번역하지 않은 것이다. 이미 미국 현지에서 '붕어빵'이라는 단어를 하나의 브랜드로 인지하고 있어 가능한 선택이다.
한글 표기 전략은 수출 실적 개선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CJ제일제당은 지난해까지 수출용 비비고 제품 표기를 영문 'bibigo'로만 사용했으나, 올해부터는 기존 로고 옆에 한글 '비비고'를 별도로 병기하고 있다. 회사가 후원하는 미국 NBA(프로농구) LA 레이커스 선수단 유니폼에도 비비고 스폰서 로고가 한글로 들어간다.
올해 비비고의 해외 실적이 뚜렷하게 개선됐는데, 한글 표기 확대와 무관하지 않았던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오리온도 해외에서 판매하는 특정 제품에 한글 표기를 한다. 오리온 베트남법인은 2023년 '오!감자 찍먹'을 출시했는데, '찍먹'이라는 단어를 한글 그대로 표기했다. 국내에서도 이 단어를 생소하게 느끼는 세대가 많은데, 이 단어 선택은 베트남에서 히트를 쳤다.
국내에선 단순 줄임말 정도로 소비되는 단어가 베트남 소비자 사이에선 직관적인 의미로 해석되며 하나의 밈을 일으킨 것이다.
같은 해 출시한 '꼬북칩'은 현지 제품명으로 한국어 '맛있다'를 연상시키는 '마시타(Mashita)'를 사용했다. 소비자가 '한국에서 온 과자'라는 이미지를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디자인한 것이다. 한국산이라는 사실만 강조해도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맛있다'는 기대치를 높이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해외 식품 기업이 자사 제품 표지에 한글을 사용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일본 최대 라면 회사인 닛신식품은 한국의 '불닭볶음면'을 모방한 제품을 출시하고 있다.
불닭볶음면과는 전혀 다른 맛을 내지만, 포장지에 한글 글꼴을 넣는 것만으로도 제품 판매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 이런 제품을 출시한 것이다. 일본에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들 중에선 이 제품이 삼양식품 불닭볶음면인 것으로 착각하고 구입하는 사례도 심심치 않게 발생하고 있다.
중국과 베트남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늘고 있다. 중국의 한 식품기업은 삼양식품·오뚜기·CJ제일제당·대상 제품을 모방한 '사나이'라는 한글 브랜드를 붙여 제품을 출시했다. 현지 사법기관으로부터 수차례 제재를 받았지만 벌금액이 크지 않아 유사 제품은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다.
베트남에서는 홍삼 제품에 한글을 크게 인쇄해 한국산인 것처럼 둔갑한 사례도 있었다.
이 같은 한글 카피캣 현상은 한국 소비자가 봐도 진짜와 구별하기 어려울 만큼 노골적인 모방일 때가 많다. K-푸드 존재감이 커지면서 나타난 부작용이지만, 역설적으로 우리 기업 제품이 '믿고 사는 제품'의 상징이 됐다는 뜻이기도 하다.
박순원 기자 ssun@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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